S는 M의 문자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무응답에는 무응답이 약’이므로 일주일간은 유예하기로 했다. 그 이후에도 다시 연락을 할지는 미지수였다. 이 꼬인 실타래 같은 관계를 계속할 수 있는지 자신의 마음을 찬찬히 돌아보고 할 결정이고 실은 새로운 만남을 찾길 바랐다.
S가 밴드 모임에 나가게 된 계기는 이러했다. 나이의 압박도 있고 편안하게 어울리면서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할 자리가 어디 있나 고민을 해봤다. 네 oo에 구체적으로 검색어를 넣었다. 4050 싱글 모임으로.
검색으로 밴드에 연결이 되었는데 밴드에는 비슷한 모임들이 꽤 많이 있었다. 다만 모임이 활발한 곳도 있고 반대로 저조한 곳도 있다. 다다익선이라. 회원 숫자가 많은 곳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일단 가입이 되어야 모임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으니 여러 곳에 가입을 해봤다.
가입 절차는 그다지 까다롭지 않다. 대부분 이름/나이/사는 곳과 프로필 사진을 올리면 가입이 된다. 가끔 자기소개를 요구하는 곳도 있는데 질문이 많지는 않다. 모임장의 의지에 따라서 정기적으로 온라인이나 오프 라인 소통을 하지 않으면 강퇴를 당하기도 하지만.
다만 가끔 황당무계한 4050 모임이 존재하므로 가입 후 회칙을 잘 읽어봐야 한다. 어느 날 S는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모 밴드에 가입하고 자기소개까지 올린 후 회칙을 읽어보고 경악을 했다.
‘이 모임에서는 기혼과 미혼인 분들이 자유롭게 어울리는 곳이며....’
대체 기혼자와 미혼자가 왜 함께 어울려 ‘벙개’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기소개에 사진까지 첨부해서 올리면서 온라인에서 당당하게 스와핑 상대를 구한다는 건지. (스와핑의 사전적 의미는 '물물 교환'이지만 속어로 '파트너 교환' 혹은 '부부 교환'의 의미로 쓰인다.)
헐헐. 이 무슨 인간 사회의 기본 규칙을 파괴하는 요지경인지 회칙을 읽자마자 불에 덴 듯 깜짝 놀라서 탈퇴를 할 수 밖에는.
자기소개를 이 주안에 올리지 않으며 강퇴를 시킨다며 종용하던 모임장에게 혹시 이 모임에서 기혼과 미혼인 분들이 만나는 거냐?라고 순진하게 물으니 정곡을 찔린 듯 묵묵 부답이어서 스스로 탈퇴를 했다.
M과의 애매한 결별 이후에 S는 두 번째 ‘벙개’모임에 참석했다. ‘벙개’ 모임은 밴드의 공지사항에 올라오는 걸 보고 참석 여부를 밝히고 가면 된다. 연말이어서인지 모임은 주말마다 계속 있었고 대부분 서울에서 열렸다.
휴우, 언제는 한적한 도시에서 여유자적하는 한량을 자처하더니 주말마다 빽빽한 지하철에 끼어서 복작거리며 서울로 향하는 삶이 시작됐다.
버스와 지하철에 시달리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가량 대장정의 길을 헤매며 가다 보면 종종 현타가 오지만 아직은 미지의 모임에 가고 싶은 에너지가 더 컸다.
두 번째 ‘벙개’ 모임은 처음 만나는 분들과 부담 없이 떠들며 놀기에는 좋았다. 나이대도 비슷하니 공감대가 있고 서로 예의도 차리고 하면서 일회성으로 끝나는 만남이다. 계속 같은 밴드의 모임에 가다 보면 몇몇과 친해지기도 하나 깊은 대화가 오간다기보다는 술을 약간 마시면서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서 정신을 놓고 노는 분위기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주말 저녁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날에 가기에는 안성맞춤의 모임. 그럭저럭 괜찮은 날이었고 다른 밴드 모임에도 한 번씩은 가보려는 마음이 생겼다.
비가 그치면 다시 해가 나듯 시간이 가면서 마음은 차차 평온해졌다. M과는 헤어졌지만 그는 달리기를 남기고 떠났다. S는 그의 영향을 받아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평생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을 남겨주셨으니 모든 만남에는 배울 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S는 매일 30분 정도 걷다가 달리기를 계속 이어갔다. 눈이 오는 날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우산을 받쳐 들고 나섰다.
비와 섞인 눈이 내리는 길을 삽 십분 정도 걷고 뛰고 했다. 달리기를 연습하는 중이지만 숨이 차고 힘들어 역부족. 달리기는 걷기와는 또 다른 점이 걷는 중에는 여유롭게 주변 풍경도 감상할 수 있지만 달릴 때는 오로지 내 숨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점점 가빠지는 숨소리가 조금씩 더 크게 증폭되어 들리고 다리 근육에 묵직한 통증을 느끼면서.
30분을 목표로 뛰고 있지만 온전한 달리기는 아니고 반은 걷고 반은 뛰고 있는 셈이다. 30분을 고스란히 뛰면 5km 정도는 뛸 수 있다고 한다. 언젠가는 그 시간을 채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숨이 차고 종아리근육에 고통이 느껴지는 순간, 멈추게 되고 만다.
인생이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면 뛰는 시간도 있고 걷는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벼운 몸과 다리로 날아오를 것처럼 힘차게 뛰어가다가도 지친 몸을 달래고 숨을 고르며 걸어야 하는 시간이 온다. S는 굳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 이를 받아들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