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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Feb 01. 2024

산천어 축제

밴드 사람들과 화천의 산천어 축제에 가는 날. 걱정했던 것보다 날씨는 많이 풀려서 영상의 기온을 보이며 포근해졌다.


W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77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는데 다행히 다른 분이 카풀을 해주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W는 S만 데리러 오게 됐다.      


약속 장소에 모여서 차량 두 대로 나눠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내내 안방마님처럼 W의 옆자리를 고수한 탓인지 77은 묘한 연애의 기운을 눈치챈 것 같았다. S는 운전하는 W에게 다정하게 귤을 까서 건네주며 견제를 계속했다.


77은 순순히 관심을 거뒀고 분위기는 싸늘한 영하에서 훈훈한 영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보니 귀엽고 재미난 동생이네.’ 인간의 마음이란 이리도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 같은 것인가.       


산천어 축제 장소에 다다르자 꽁꽁 언 강 위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 반 사람 반. 우리 일행도 챙겨 온 각종 낚시 도구를 준비하고 얼음 구멍을 찾아서 비장하게 산천어 낚기에 돌입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따뜻해서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짧은 여행을 온 기분은 좋았다.    

  

그래도 점심거리는 잡아야 하는 데 영 수확량이 시원치 않아 우리의 열정적인 리더 H 님은 치밀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멀리서 산천어를 방사하는 트럭이 도착하는 게 보이자 고기를 따라다니며 직접 잡으러 나서기로. 마침 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해서 슬슬 지쳐가던 S가 비닐봉지를 들고 동참했고.     

 

H 님은 관계자분들이 막 통 안에 든 산천어를 끌고 와서 얼음 구멍에 넣으려는 찰나를 노렸다.


“에이씨,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요.” 제지하는 직원분에게 드세게 항의하며 옆으로 떨어지는 산천어를 낚아채는 걸 보고 있으니 창피하여 일행이 아니었으면 싶었다.


S는 멀리서 실랑이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잠잠해지면 슬쩍 가서 봉지를 내밀었다. 산천어 맛은 봐야 했기에.      


산천어는 오랫동안 갇혀있고 시달려서 기력을 잃었는지 혹은 갑자기 차가운 얼음물에 들어가서 기절을 했는지 미동도 없다가 몇 분 후에야 퍼덕거리며 깨어나곤 했다. 세 군데의 구멍을 쫓아서 뛰어다니며 귀한 산천어 세 마리를 뺏듯이 얻어서 일행들에게 의기양양하게 돌아갔다.      


H 님이 여자 네 명에게 수확물을 내밀며 먼저 가서 맛을 보도록 했다. 비정상적이고 엉뚱한 구석이 있지만 이런 생활력이면 식솔들을 먹이기에는 충분한 분이라 생각한다.


축제장에는 구이나 회로 요리를 해주는 천막이 있었다. 살짝 붉은빛을 띠는 산천어 회는 부드럽고 달짝지근하고 구이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 오전 내내 얼음 구멍을 들여다보느라 기운을 썼더니 꿀맛이었다. 절로 소주 한 잔을 부르는 맛이라고나 할까.     


다들 모여서 낚기도 하고 빼앗아 오기도 한 산천어 파티를 벌이고 양평의 라타르타라는 카페로 향했다. 야외 테라스에 나무와 하나가 된 듯한 남자의 얼굴을 한 조각상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부드럽고 달곰한 에그타르트와 커피 한잔에 오전의 고단함이 녹아내렸다. 조금 지친 상태라 대화 소리가 간간이 이어지고 조곤조곤했다.


해가 먼 산 너머로 빨갛게 질 무렵, 다들 정원에 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조각상과의 키스, 고독한 뒷모습, 로댕과 같이 생각에 잠긴 프로필,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른 모습들이 담겼다. S는 W에게 살짝 다가가 셀카를 몇 장 찍었고.     


저녁을 먹으려 이동을 했는데 그때야 S는 가방을 놓고 온 것을 알게 됐다. 흐억, 곰곰이 돌아보니 정원에서 사진을 찍느라 신이 난 후 가방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이 천방지축인 정신머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돌아가기에는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거리여서 카페에 전화해서 다음 날 찾으러 가기로 했다. W가 같이 가주기로 했는데 H는 “둘이 같이 가셔서 그날부터 사귀세요.”하고 뼈 있는 한 마디를 남겼다. ‘사랑과 감기는 숨길 수가 없다더니 벌써 눈치를 챈 건가.’     


가방의 소재가 파악되자 S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지만, 여느 때처럼 맛나게 저녁을 먹었다. 가정식 같은 정갈한 반찬에 시골스러운 된장찌개, 잘 구워진 고등어구이 한 상. 역시나 맛나다.  

    

함께 온 K 언니를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W는 다시 S의 집까지 데려다줬다. 집 앞에 차를 세워두고 W는 한 시간이 넘도록 횡설수설 이야기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서둘러 나오고 종일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을 보낸 터라 S는 상당히 피곤하여 이만 돌아가 줬으면 하는 참인데.      


W는 매사 진지하고 심각하며 조용하지만, 말이 꽤 많은 편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구먼. 대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어서 S는 작별의 의미로 W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아쉬워서 짧은 키스를 했다.      


W는 갑자기 미동도 없는 무표정한 얼굴에 동요도 없이, 결심한 듯     

 

“오늘 같이 있고 싶어요.”라고 나직하게 한 시간을 뜸 들이며 주저하던 말을 꺼냈다.    

  

S는 기다린 것처럼 깔끔하게 동의를 했고. “그래요.”    

  

이게 바로 고기도 낚고 사람도 낚은 것인가. 앗싸. 지천명에 무서울 것이 무엇인가.           

축제로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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