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각사각 Jan 29. 2024

세 번째 데이트

♡♡

주말에 놀러 가기로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흐린 날이었으나 S는 오랜만에 검정 구슬 달린 스웨터에 주름치마를 입고 설레는 데이트 복장을 갖췄다.      


W는 언제나처럼 약속 시각 전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S는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받고 허둥지둥 대며 재빨리 준비를 마치고 나갔다.      


영종도에 고급스러운 새로운 호텔과 카지노가 들어선다고 한다. 아직 개업 전이었는데 로비에서 미디어 아트 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씨에도 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막혔다. 은근히 기대했는데 어째서 다리가 연결된 섬으로 가는 걸까? 시간이 늦어져서 자연스럽게 배가 끊어져도 되는데.      


황량한 대지에 거대한 규모의 옅은 금색 호텔 건물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여러 개의 화면으로 구성된 색감이 다채로운 샹들리에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화려한 모습을 뽐냈다. 그 옆에는 건물 천장과 벽에 3D 느낌이 나는 화면이 나왔다.      


천장과 사방에 화면이 펼쳐지니,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에 들어온 것 같았다. 푸릇푸릇한 정글, 밤하늘에 떨어지는 별, 바닷속에 고래들이 노니는 장면 등이 번갈아 바뀌며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림들이 선명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고래가 나오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는데 W와는 아직 서먹한 관계여서 거리를 두고 멀뚱히 서 있다가  

   

“우리 손 잡고 구경할까요?” S는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었다. ‘상 여자’가 사주팔자에 들어있던가. ISFJ는 쉽게 다가오지 않으므로 연애 초반에 리드를 해줘야 하는 편이다.  

    

덥석 마주 잡은 W의 손은 온돌방처럼 따뜻했다. 파르르 떨린다기보다는 편안한 느낌이다. 중년의 사랑은 이런 담담한 감정인 걸까?


열정적인 파도가 치는 바다라기보다는 잔잔한 햇살이 내려앉는 오후의 호수 같은. 몸이 여기저기 노화되고 에너지도 떨어지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W와 한층 가까워져서 팔짱도 끼고 손도 잡으며 다정하게 호텔 구석구석을 구경했다. 여기서 일박을 하려면 족히 백만 원은 나올 것 같은데 그 비용이면 동남아를 가고 싶다는 대화도 나눴다.      


점심을 먹으러 송도 쪽으로 이동했다. 주꾸미 삼겹살에 볶음밥까지 알차게 먹었다. 비가 와서 배가 부른데 강변 주위로 산책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대부도로 이동해서 차를 한잔 마시기로 했다. 라라랜드라고 마치 개인 별장 같은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조각품들이 놓여있는 정원이 예쁜 곳이었다.      


점심을 든든히 먹은 터라 활동이 필요해서 집 근처로 돌아가면서 실내 낚시터에 가보기로 했다.      

실내 낚시터는 처음이었는데 낚싯바늘에 부드러운 먹이를 붙여서 물속에 넣고 물 위에 뜬 야광 찌를 째려보다가 움직이면 빨리 낚아채는 방식이었다.


어장 안에 사는 물고기들은 바늘에 걸려서 식겁한 다른 물고기들에게 소문을 듣거나 혹은 직접 경험을 해봤는지 이미 노련해 보였다. 찌가 조금 내려갔다 싶어서 낚싯대를 들면 감쪽같이 먹이를 먹고 도망갔다.      


“먹이만 실컷 주다가 가겠네요. 물고기들아, 많이 먹어라.” 슬슬 지쳐가는 S의 농담.   

   

W도 진지하게 열심히 도전 중이었지만 두 마리를 잡은 후에는 별 소득은 없었고.      


시간이 지나니 물고기도 잡히지 않고 지루해져서 S는 꼼수를 써보기 시작했다. 찌가 물 위에 뜨도록 낚싯대를 푹 집어넣지 않고 물 가까이에 먹이가 올라오도록 하니 물고기들이 대거 몰려드는 게 보였다. 시간상 이때 바늘을 물은 물고기를 낚아채는 게 더 가능성이 컸다.      


“아... 잡혔어요.” 계속 꼼수를 부리고 있는데 거대한 고기가 낚싯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깜짝 놀라서 W에게 도움을 구하고 뜰채로 물고기를 건졌다. 물고기는 1.4kg 정도 되는 커다란 향어였다. 두 시간 만에 짜릿한 손맛을 보고 나니 이 재미로 낚시를 하는 건가 싶었다.      


향어: 잉어목 잉엇과의 민물고기이다. 독일에서 자연 잉어를 인위적으로 개량한 것으로 양식을 위해 들여왔다. 독일 잉어 또는 이스라엘잉어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낚시용 물고기이다 (두산백과)     


옆에서 검은 모자를 쓰고 혼자 낚시를 하시던 아저씨가 낚싯대를 들고 하지 말라고 한소리 하셔서 반성하고 다시 물속 깊숙이 낚싯줄을 넣으니 고기는 소식도 없이 계속 먹이만 먹고 사라졌다.


혼자 낚시하는 또 다른 아저씨는 조용하게 낚싯대만 바라보다가 몇 분 만에 줄줄이 고기를 낚곤 하시는데. 역시 진정한 고수는 말이 없구나.      


몇 시간 동안 겨우 세네 미리 잡고 별 소득이 없었으나 새로운 경험을 했고 계속 서 있으니 운동도 되는 것 같았다. 늦은 저녁을 먹고 W가 다시 집에 바래다주었다.


W는 어색하게 악수를 청하고 손을 한번 잡은 후 돌아갔다. 허허 참. 가볍게 볼에 뽀뽀라도 한번 해드렸어야 했나.    

  

다음 주에는 화천에 산천어를 잡으러 갈 계획인데 이상스러운 삼각관계에 있는 77도 함께 갈 예정이다. 과연 그녀의 머리채를 한번 휘어잡을지. 개봉박두.     

연애는 즐거워! ^^
이전 09화 기혼자의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