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와 천안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S는 다른 행사에 참여하는데 W는 차로 데려다주고 함께 밤을 보내기로.
점심은 비빔냉면에 돼지갈비를 싸서 뚝딱 해치웠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보신을 위해서 먹는 것에 지출을 많이 하는 편이다. 마트로 저녁에 마실 와인과 잔을 구매하러 갔다. 터미널 근처의 마트는 주말 쇼핑객들로 북적였다. 마침 설 명절을 맞이하여 와인은 반값 세일을 하고 있었다.
스페인산 와인을 네 병이나 샀다. ‘좀 많은 듯싶었지만, 하루에 한 병은 족히 마실 테니 나흘이면 소비할 양이군.’ 직원분이 와인 잔도 두 개 챙겨주셔서 기분은 한층 더 좋아졌고.
손을 잡고 데이트를 하는 건 묘한 즐거움이 있다. S의 두 배는 되는 듯한 W의 커다랗고 두툼한 손을 잡고 있으면 아버지의 손을 잡은 아이처럼 마음이 든든해진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W의 손을 어루만지며 그윽하게 유혹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W가 운전을 할 때도 기어에 내려놓은 오른손 위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으며 시간을 보냈다.
W는 숙소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고 S는 집회에 참석했다. 오늘의 주제는 자신의 ‘데스티니’를 찾아서 따라가라는 말씀이었다. ‘나의 데스티니는 무엇일까? 과연 W는 중년의 열차를 타고 만나는 운명의 상대자일까?’
강연자는 훌륭한 학벌에 박사 학위도 제쳐두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셨다. 오십이 되어서 지난 젊은 시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고 오히려 감사에 넘쳤다고 고백했다.
W가 잡은 숙소는 홍콩을 콘셉트로 한 특이한 인테리어가 가득한 곳이었다. W는 예상보다 비좁고 욕조도 없으며 쿨렁거리는 매트리스가 불만이었다.
일 층을 찬찬히 돌아보니 화양연화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고 오래된 전축이 놓여있었으며 조악하기는 하나 홍콩에서 구매한 소품들로 꾸며졌다. 입구부터가 한자로 된 간판이 휘황찬란하고 주인장이 홍콩 영화에 단단히 매료된 것 같았다.
W는 투덜거렸지만, S는 홍콩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독특한 객실이 나쁘지는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낮은 콘트라베이스(혹은 첼로)의 배경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치파오를 입은 장만옥(여주인공)이 흐느적거리면서 유혹적인 몸짓으로 캄캄한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도 생각나고, 말이다.
방 안의 붉은 커튼, 저렴한 매트리스, 검은 탁자, 손때 묻은 벽지 등이 영화의 세트장을 재현하고자 노력한 건가?
영화 주인공들의 불륜처럼 뜨거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안개 가득한 길을 달려서 금광 저수지라는 곳에 다다랐다. 강 건너 멀리 보이는 메기 매운탕 집은 배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얼음이 얼고 배가 운행되지 않아서 일순간 당황했지만, 저수지를 한 바퀴 돌고 비포장 산길을 달려서 음식점에 도착했다.
W는 오래전에 전국적으로 백 군데 넘게 캠핑하러 다닐 때 왔었던 곳이라며 감상에 젖었다.
한가롭게 배를 드러내고 누운 갈색 고양이, 그 옆에 푸스스한 털을 가진 검은 개. 겨울날답지 않게 햇살이 마당 가득 내려앉은 오후였다. 민물 새우가 들어간 얼큰한 메기 매운탕에 수제비는 시원한 국물맛을 자랑하고.
바닥에 누워 있다가 번쩍 일어나 S의 옆으로 다가와 앉아서 생선 한 점을 달라 쏘아보는 고양이와 메기 살을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가시까지 가열하게 아작거리며 씹어먹는 녀석. 모두가 햇빛에 젖고 행복에 잠긴 순간.
저수지를 따라서 산책을 했다. “이 나이에 손잡고 다니면 바람피우는 불륜 커플처럼 보이겠네요. 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만족스러운 포만감과 따스한 햇볕에 녹아내린 마음은 노곤하기만 하다.
근처의 전통 찻집에서 꽁냥 거리며 쌍화차와 대추차를 마셨다. 저수지에서 노니는 오리와 철새 떼가 한눈에 바라다보였다. 한약재를 달여 만든 쌍화차는 검은 돌로 된 무거운 잔에 담겨서 뜨거웠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안 해본 장사가 없었어. 어머니가 집에서 쌍화차를 끓여서 같이 산 위에 올라가서 팔기도 하고.”
뜨거운 차를 조심스럽게 마시던 W는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나는 것 같았다.
늦겨울의 햇살 세례 속에서 우리들의 화양연화는 지금부터 펼쳐질 것인가?
화양연화의 뜻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花(꽃 화), 樣(모양 양), 年(해 년) 華, (꽃이 피다, 빛나다 화) 한자대로 번역하면 ‘화사하게 핀 꽃 모양이 빛나는 한 때’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영화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시놉시스
1962년 홍콩. 상하이에서 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두 가구가 새로 이사 온다. 홍콩 지역신문사 기자 차우 부부와 무역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 수리첸 부부다. 차우와 수리첸은 이사 온 날부터 좁은 아파트에서 서로 부딪치며 알게 된다. 수리첸의 남편은 일본인 무역 회사에 근무해 출장이 잦고 차우의 아내도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다.
차우는 수리첸의 핸드백이 아내와 똑같다는 것을, 수리첸은 남편의 넥타이가 차우 것과 똑같다는 것을 깨닫고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고, 곧 자신들의 남편과 아내가 서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차우와 수리첸은 외로움 때문인지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마음을 뺏긴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며 그들은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려 노력한다.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