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는 다정한 남자다. 그는 S가 옷걸이에 걸어둔 외투를 다시 입을 때 직접 옷을 꺼내서 입혀준다. 데이트할 때는 언제나 S의 집 앞으로 데리러 오고 항상 약속 시각보다 일찍 와서 기다린다.
카톡 문자에는 늘 답을 가능한 빨리해준다. 고깃집에 갔을 때는 집게를 들고 고기를 알맞게 구워주고. 늦은 저녁에도 배고픔을 참고 포장 주문해 온 초밥을 함께 먹는다.
다정한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건 즐겁다. 그 다정한 행동이란 사랑이 묻어나 있기 마련이니까. 물론 어느 정도는 평소 몸에 밴 태도이긴 하다. 밴드 모임에 가서도 항상 고기 굽고 뒷마무리하는 걸로 유명하신 분이니.
남을 배려한다는 건 마음이 따뜻한 것이고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행동이므로 칭찬을 받아 마땅하지 않은가.
S는 그의 외모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외모로 보자면 첫눈에 반할 만큼도 아니고 평균 이하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만나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의 다정함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정이 쌓여갔다. 눈 오는 날,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나무와 지붕과 길이 어느새 하얗게 덮여가듯이.
외모는 누구나 매력적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W는 옅은 쌍꺼풀이 진 눈, 오뚝한 코와 도톰한 입술을 하고 있다. 연세보다는 머리숱도 많으신 편이고.
다만 표정에 웃음기가 없다. 어려서부터 웃을 일이 많지 않아서라고 한다. 가만히 있을 때는 무뚝뚝해 보이고 좀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있다. 옷 입는 센스도 떨어지고 아저씨들이 주로 입는 촌스러운 저지 셔츠와 양복바지 같은 걸 입고 다니신다.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기도 하고.
S는 기초 화장하는 법을 모르겠다는 W가 안타까워 온라인에서 1+1로 산 화장품들을 하나씩 사 날랐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피부관리를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피부과 시술도 받아 보는 게 좋다. 누구나 현저히 나이가 들어 보이고 착실하게 늙어가는 중이기 때문에.
S는 W에게 보습크림, 호호바 오일, 마사지 팩 등을 주고 궁금해하는 그에게 사용법도 알려줬다. 어느 날 호텔에 들어가서 욕조에서 뜨거운 물을 받고 사우나를 한 후 W는 마스크 팩을 하고 싶다고 했다. S는 마침 챙겨온 마스크 팩을 정성껏 얹어줬다.
마사지 팩은 시원하고 약간의 향도 있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어자기 전에 하면 잠이 잘 오기도 한다. W도 만족스러워했다.
이후에는 전신 마사지를 해줬다. 목부터 어깨, 등, 엉덩이, 종아리, 발까지 고양이처럼 정성껏 꾹꾹. 온종일 컴퓨터 업무를 하면서 경직된 몸의 근육을 하나하나 눌러줬다. 히말라야 허브의 향이 아보카도 오일과 함께 온몸에 서서히 펴진다.
W는 ’예쁘다‘라거나 “사랑한다”라는 간지러운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행동에서 묻어나는 애정이 있다. 어떻게 보면 말로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 뿐인 사랑보다는 행동이 훨씬 더 나으리라. 달곰한 말은 허공에 흩어지지만 진심 어린 행동은 마음에 남으니.
S는 미래의 어느 날,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젠 사랑한다고 모든 것을 다 줄 수도 없고 또 언젠가 이 사랑이 끝날 수도 있잖아.”
W가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 안에서 S를 안고 친밀하게 몸을 밀착한 상태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을 했다. 그가 28년 동안 한 여자만을 사랑했고 배신당한 경험이 있는 걸 안다. 이미 발을 적시긴 했으나 넘실거리는 사랑의 물결에 선뜻 뛰어들기가 두려운 것이다.
“저도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현재의 사랑에 충실할 수밖에요.”
그 후에 침대 위에서도 W는 물었다.
“나를 좋아하는 거야 내 몸을 좋아하는 거야?”
“....” (기가 차네)
S는 쓸데없고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을 하는 W의 얼굴을 살짝 때렸다. 설마 내가 아무리 미쳐도 누구의 몸이 좋아서만 만날 수 있을까? 결국,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