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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Feb 08. 2024

죽어도 좋아?

아직은...

W는 평소 생활 태도도 성실하지만, 연애에도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10Km 정도 떨어진 S 집 근처로 자주 찾아오곤 했다. 저녁을 함께 먹자고 자연스럽게 제안하면서.


메뉴를 고를 때도 본인은 다 잘 드신다며 고기를 좋아하냐 생선을 좋아하냐 생선을 좋아한다면 구이인가 회인가 상대방의 취향을 정확하게 고려하여 식당을 예약했다. 투박하게 생긴 얼굴과는 생판 다르게 비단결처럼 섬세하신 분.      


뜨거운 밤을 보낸 이틀 후에도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장어 한 마리에 사만 원이 넘는 곳이었다. 빨갛게 익은 숯에 철망을 올리고 소금구이와 양념구이 두 마리가 올라갔다.


S는 장어구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으나 알다시피 장어란 원기회복의 대명사가 아니던가? 가느다란 인삼 뿌리와 잎까지 먼저 냠냠 먹고 오동통한 장어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장어란 딱히 맛은 모르겠지만 한없이 부드럽고 기름기가 촉촉하다. S가 이렇게 잘 먹는 걸 보면 아마 지갑이 절로 열리겠다.      


음, 역시나 맛나다. 씻어낸 신 김치, 절인 깻잎, 상추, 부추 무침, 생강에 싸서 W가 근심에 가득 차하는 말을 건성으로 듣느라 바빴으나 장어 한 마리를 해치웠다. 보기보다 배가 꽤 불렀다.      


W는 인간관계에 매우 진지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서로 소통을 해도 인간은 성향에 따라 혹은 현재의 지위에 따라서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W는 상사와의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이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이후에는 그 주제를 꺼낸 것 자체를 후회했다.  

    

“저도 비슷한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회사 생활을 안 하니 수명이 늘어난 것 같고 정말 살 것 같네요. 생각을 끊어내는 연습을 해보세요. 이제 기억력도 쇠퇴하고 그런 일들에 오래도록 마음 쓰고 싶지 않잖아요? 앞으로는 저와 무엇을 할지를 계획하고 생각해 보시라고요.”     


S는 W가 모든 일에 진지하고 생각이 너무 많아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어 반 농담으로 충고를 했다. W는 언제나처럼 소리도 없이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살아오면서 웃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분인데.     


하지만 마음이 한결 풀렸는지 커피를 마시러 가서 S와 손장난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들에 관해서 신이 나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겨울에 눈 내리는 걸 보면서 노천탕에 들어가 봤으면 좋겠어. 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야. 그리고 비디오 방도 가보고 싶고 방 탈출 카페도 가고 싶어. 야외극장은 어떨까?”     


W는 젊은 시절에 거의 일만 하고 여유 시간을 즐기지 못한 듯했다.      


“비디오 방이요? 거의 이십 년 전에 가 봤는데 아직도 있을까요? 전 문제 푸는 것과 답답한 공간을 싫어해서 방 탈출 카페는 좀 별로예요. 야외극장은 안 가봤지만 불편할 것 같은데 일반극장이 더 좋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허브 아일랜드 야간에 가는 걸 어떨까? 밤에 가면 조명이 예쁘잖아. 근처 자쿠지가 있는 펜션을 예약하면 되겠어. 20만 원 정도더라고. ”     


“괜찮겠는데요. 근데 이 십만 원이면 꽤 비싸네요.”     


“이 인용도 가격은 비슷하더라고. 근데, 오늘도 나 재워줘야 하잖아.”    

 

이렇게 하여 으슥한 곳에 있었으나 꽤 청결하고 넓은 근처 호텔로 향하게 됐다. W는 나중에 고백하기를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돼서 필름 형태로 된 약을 하나 먹었다고 한다. 으악, 새벽 두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된 이유로군. 소맥과 사랑을 먹고 지쳐서 코를 골며 쓰러져 자다가 세 시간 만에 깬 S가 다시 W를 덮치고 말았다.      


이틀이 지나고 또 사랑을 나눈 후 W가 물었다. W는 가능한 S의 분출하는 욕망을 만족시켜 주고 싶지만 오십 중반의 나이도 있고 걱정이 앞서는 듯했다.      


“자기, 얼마나 자주 하고 싶은 거야?”     


“매일”     


“그러다 나 죽어”     


“장난이에요. 하하”     


S는 오래전 논란이 되었던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2002년, 파이팅이 넘치던 해였군)가 떠올랐다. 일흔셋 인 남자 주인공이 여자친구를 만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다. 이 영화는 파격적인 소재와 현실에 가까운 정사 장면으로 큰 논란이 되었었다.


몇몇 장면은 연출이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고 사람들은 노년의 사랑에 관해서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에 거부감이 들었었나 보다. S 역시도 뜨악했던 기분.     

 

하지만 사랑이란 에너지 레벨이 다르긴 하나 어느 나이 때라도 비슷하게 흘러간다. 이십 대든, 오십 대든, 칠십 대든 그들이 사랑한다면 육체적인 교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가능하다고 하고 게다가 요즘에는 의학적인 도움까지 받을 수 있으니.     


세 번의 뜨거운 밤을 보내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낮은 기압과 날씨 탓이기도 했지만, 운전하면서도 졸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 뺨을 때리며 S는 깨달았다.   

   

‘이러다 진짜 죽을 수 있겠구나. 일주일에 한 번만 하자!‘     

장어는 맛있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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