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라~
설 명절이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또 폭설이 내렸다. 월요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었기에 다행이다. 설 명절로 인해 수업이 빠진다며 월요일 수업을 하느냐 추궁하는 학부모님 의견에도 꿋꿋하게 쉬기로 한 건 잘한 일이었다.
아니었으면 또 이 폭설을 뚫고 공부방으로 향하여 며칠간의 고립을 겪었을 수도 있다.
안전 안내 문자가 수시로 전달됐다.
오늘 아침부터 모레까지 많은 눈 예상. 고속도로 운행 시 폭설로 인해 차량 미끄럼 사고가 우려되니 감속운행 등 안전운전에 특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한국도로공사]
이런 예고가 있으면 차를 운전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요즘 폭설의 양은 실로 상당하여 눈에 바퀴가 미끄러지며 돌아가서 가슴이 철렁하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휴일 아침에 맞이하는 폭설은 아름다울 뿐이다. 얼핏 창을 열고 내다보니 나뭇가지마다 흰 눈이 곱게 내려서 그야말로 엘사가 하얀 드레스를 갈아입은 것 같은 눈부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오늘은 또 뭘 하고 혼자 놀까나? 이 동네에서는 차가 없으면 대중교통으로 움직이기가 좀 불편하다.
일단 새하얀 옷을 갈아입은 눈의 세계를 맞이하러 가야겠다. 겨울도 오락가락. 어쩌면 마지막 눈이 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즐겨야 하지 않을까?
문득 우리나라는 참으로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매력은 저마다 다른데 우리는 모두를 골고루 경험할 수 있지 않은가?
사시사철 더운 적도의 나라에서는 고운 가을 단풍이나 한겨울 신비한 하얀 세상을 동경하며 버킷 리스트에 넣을지도 모른다. 사실 부정적으로 보자면 날이 추워지면 뼛속까지 시려오는 추위를 점점 견디기가 힘들다.
에어컨도 잘 되어 있으니 차라리 일 년 내내 더운 동남아가 나을 것 같다. 적어도 여름옷 한 가지만 가볍게 입고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단출한가.
이렇듯 사람의 생각이란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각자 분분하다. 같은 사람의 의견도 어제와 오늘이 달라질 수도 있다. 오늘은 흰 눈 세상을 뽀드득거리며 걸어본 것으로 만족하는 하루.
다음날도 눈은 계속됐다. 어제의 두 배는 쌓인 듯한 눈을 보니 벌써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다. 버스라도 타고 움직이면 되겠으나 왠지 몸이 무겁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 산책에 나섰다.
집에 너무 오래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못하고 무용지물이 되는 것 같아서. 집 생활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므로. 집에서는 마음의 안정감을 느끼지만, 활력을 높이려면 외출이 필수다.
동네 공원은 어제보다 더 눈에 푹 파묻혔다. 차에 둔 우산도 가져올 겸 하여 가보니 눈을 잔뜩 이고 반 정도는 덮여 있었다. 후유~ 금요일 출근을 하기 전 임시방편으로 앞 유리의 눈을 쓸고 은색 돗자리를 하나 덮어두었다. 어설프지만 조금이라도 눈이 쌓여서 얼어붙는 걸 방지하고자.
이불처럼 두껍게 덮인 눈을 만져보니 포근하다. 솜사탕이나 팥빙수의 얼음처럼 폭신한 느낌.
설 명절이니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함께 공원에 나와서 눈썰매도 타고 눈으로 성벽도 만들면서 놀고 있었다.
눈을 네모나게 쌓아 올린 벽은 반 정도 올라가 있다. 눈 속에서도 작품을 만든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어제보다 더 많은 눈을 이고 있는 나무는 버거워 보인다. 여린 나뭇가지는 부러지기도 하고 뿌리가 약하면 아예 넘어질 수도 있다. 단단한 나무에게도 혹독한 계절임이 틀림없다.
아이들만은 아랑곳하지 않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른다. 플라스틱 썰매를 끌고 올라가 야트막한 뒷산에 올라 씽씽 내려오니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가끔 불어온 세찬 바람이 나무 위의 눈을 쓸고 지나갔다. 눈사태라도 난 것처럼 차가운 눈 조각이 얼굴로 쏟아지나 아이들의 비명은 곧 까르르 웃음으로 바뀐다.
까치 두 마리가 나무 위로 날아오른다. 저 녀석들은 이 눈 속에서 어떻게 먹이를 얻을까? 괜한 걱정이 든다. 공원에 늘 어슬렁거리고 햇빛 바라기를 하던 고양이들도 자취를 감췄다. 어디 따뜻한 곳에서 눈이라도 피하고 있을까?
“삼촌, 오늘 너무 재미있게 놀았죠?”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조그만 아이가 한껏 기분 좋은 톤으로 가족들을 보며 말한다. 아이처럼 이 피할 수 없는 폭설도 진정 즐기는 자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