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치유, 얼마나 걸릴까?
일단 덮어두자, 처음에는
작년 글이지만 올려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네요. ^^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일로 상처를 받게 된다. 나이가 적잖이 들어감에도 인간관계는 늘 어렵기만 하고 불편한 관계의 끝은 아름답지 않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문득 문득 불쾌하기만 단편적인 기억이 떠오르고 울적함으로 몰고 간다.
느지막한 오후에 운동을 하려고 길을 나서면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교복이란 어느 학교나 비슷한 모양에 오염에 강한 짙은 회색이나 체크무늬 갈색 계열 이다. 아~그 아이들의 실루엣을 보는 순간 문득 그들과의 거리가 슬퍼지고 내 자신의 처지가 옹색하게 여겨진다.
매번 흠칫 놀라기도 한다. 친구들과 학교일을 재잘거리며 하교를 하는 아이들 중에 혹시 아는 애들이 있는 게 아닌가 하여.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똑같이 찍어낸 공산품처럼 비슷하다. 비슷한 또래의 십대 후반의 아이들. 대부분의 순간에 애정이 샘솟았던 아이들과 오버랩되면서 갑자기 한명 한명 다정했던 아이들과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십 여년이 넘게 학교에 근무했으니 학교의 모든 것에 너무 익숙해졌다. 한가로운 오전 시간의 여유를 즐기며 모닝커피를 한잔 하고 있으면 근처 학교의 수업 종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도 나에게는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온다. 수업종에 따라 교실에 들어가고 나오던 하루를 떠올리며 그 풍경이 마음이 아프다. 자의반 타의반 학교를 떠났고 다시 돌아갈수 있지만 올해는 돌아가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래도 몸이 기억하는 일정한 습관들이 있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그 생기와 조잘거림이 그립다. 그렇게 순수하고 맑기만 한 아이들도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하는시간들이 그저 좋았다. 이유도 없이 그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했다.
나의 상처는 아직 건드려서는 안된다. 소독을 하고 밴드를 붙이고는 열어보지 않아야 한다. 상처의 딱지를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덧나서 피가 날 수도 있다. 상처가 아물고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Witness -목격자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인공 빌의 누나는 뉴욕에서 1964년에 살해당하였다. 가족들은 모두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사건은 밖으로 꺼내 놓지 않고 마음속에 묻어두는 일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40여년이 지나서 그 사건을 조사하고 정보를 모으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면서 몇년 동안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이런 그를 다른 형제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다시 꺼내놓는 것을 힘들어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에게 많은 사랑을 주었던 누나의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혀내야만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 내고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었다.
사건의 전말
주인공의 누나인 키티는 뉴욕 밤거리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당한다. 처음 공격을 당하고 누나는 도움을 구하며 큰 소리로 비명을 지렀으나 바로 앞의 아파트의 주민들은 바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누나는 두번째 공격을 받고 숨을 거두게 된다.
당시 뉴욕 타임즈는 이 사건에 대해서 38명의 목격자들이 모두 이 범죄에 무관심 했던 것으로 과장 보도한다. 이 사건은 큰 관심을 받고 이 목격자들의 행동에 대한 연구는 사회학 저서에도 나오고 현재도 계속 회자되는 유명한 일이 되었다.
빌이 조사해 보니 이 사건은 자극적이고 과장된 면이 있었다. 실제 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은 그렇게 숫자가 많지 않았고 대처가 늦었으나 경찰서에 연락하기도 하였고 누나의 친구는 직접 나와서 누나의 임종을 함께 했다.
당시의 신문기사는 이 사건이 타인에게 무관심한 현대인의 행태로 보이도록 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끌고자 과장하거나 목격자들의 인터뷰를 조작하었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사를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수 있었다. 특종을 얻기 위해서 진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기사를 쓰는 행동은 큰 피해자를 만들고 왜곡된 시선을 갖게 한다.
상처를 통해 깊은 이해에 이른다.
수년에 걸쳐 누나의 사건을 되짚어보는 빌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두다리가 허벅지 반 이하로 절단되어 있는 장애인이다. 베트남 전에 참전했다가 폭격을 당하여 두 다리를 모두 잃은 것이다. 포탄을 맞고 논에 혼자 쓰려져 있을 때 그는 누나의 외로운 죽음을 떠올린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절절히 느끼지만 그는 결국 발견되어 이후에 결혼하고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마지막에는 빌이 그날 사건을 여배우 한명에게 부탁하여 재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괴한에게 칼을 맞은 상태에서 지르는 귀를 찢는 듯한 비명소리에 눈물이 나왔다. 누구 한명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경찰에게 신고를 하였다면 누나는 두번째 습격을 피하여 살아 날 수도 있었다.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에 얼굴을 떨구는 빌과 말없이 그를 안아주는 배우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에게는 누나를 잃은 상처를 잊는 데 50년이 걸렸다. 아니 아마 평생동안 이런 큰 트라우마는 무심코 떠오를 것이다. 뉴스에서 비슷한 사건을 볼 때마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을 세세하게 알고 누나의 임종을 보살피고 아직도 그리워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그는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기억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한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것이다.
애써 상처를 지우려 하지 말자. 상처마다 그 깊이에 따라 치유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다만 어떤 상처는 오래도록 계속될 수도 있으니 마음 속에 묻고 담요를 살짝 덮어 두어야 할 수도 있다.
누구의 인생에서나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 아픔으로 인해서 타인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