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하면서 큰 아이와의 둘만의 대화 시간이 더 늘었다. 단연히 둘째는 질투하기 시작했고 남편은 여동생의 눈에는 그것이 자칫 편애처럼 비칠 수 있다고 걱정을 하였다. 큰 아이는 슬금 귀찮아하는 것도 같았다. 그래서 대충 불러준 날에는 글의 완성도도 대충이기도 했다. 그런 날 갑자기 내 무릎 위에 앉아 작은 아이가 말했다.
“엄마 그럼 오빠 하지 말고 내가 할래. 나도 하고 싶어.”
“그럼 윤서가 오늘 쓰고 싶은 이야기 불러줘.”
그렇게 첫 일기를 남겼을 때, 그냥 하루의 이벤트 정도로 나는 여기고 말았다. 하지만 둘째는 오빠가 이렇게 매일 글을 써서 책을 만든다고 하니 정말 자기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리석은 엄마는 그 어린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어제 큰 아이가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오는 바람에 정말 오랜만에 딸아이와 둘이서 해안도로를 걸었다. 걷는 길에 전화로 큰아이가 불러주는 오늘의 글을 하루북에 담았다. 오늘은 할머니랑 이모랑 같이 해안도로를 산책하며 킥보드를 타고 해지는 것을 보고 사진도 찍고 했다며 그렇지만 너무 다리가 아파서 힘들다는 이러쿵 저러쿵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가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왔다.
해 질녘 집에서 나가 옆동네 끝까지 이어진 해안도로를 왕복하고 돌아와 저녁을 다 먹어갈 즈음 큰아이는 이 글을 불러주었다. 킥보드를 탔으니 아마 질주를 했을 게 분명했다. 할머니와 이모는 걸었을 테니 혼자 먼저 가다가 몇 번이고 돌아오기를 반복했겠지? 그 먼 거리 갔다 오느라 다리가 아프고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불러주는 목소리도 힘이 없고 글도 짧았다.
킥보드를 타는 기술이 늘어 달리는 재미에 빠져 있던 딸아이가 그것을 듣고는 급정지를 해서 벤치에 앉아 받아쓰기 하고 있던 내 앞에서 멈추고는 말했다.
“엄마 나도 오빠처럼 쓸래. 제목도 똑같이 해줘.”
우리가 걷고 있던 곳을 배경으로 해서 글을 담았다. ‘손은 추운데 몸은 더웠다’는 표현에서 사실 깜짝 놀랐다. 속도를 지르며 킥보드를 열심히 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별 것 아닌 듯 한 문장으로 담아내는데 너무 대단해 보였다. 때마침 테이크 아웃했던 코코아가 요긴했구나. ‘버렸다’는 표현도 예술적이다. 왜냐하면 5인 이상은 안된다는 이유로 자고 싶은데 퇴짜를 맞은 둘째 아이가 사실 집에 오는 길 내내 통곡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마음을 뚫고 터져 나오는 질투와 분노, 슬픔과 속상함, 왜 나는 안되고 너는 되는가 등의 열등감 등으로 하염없이 울었었다. 혼자만 자고 오는 부러운 오빠를 버린 것으로 표현하다니, 그리고 바보라고 골탕 먹이는 문장까지. 이 글을 접한 큰 아이는 ‘버렸다’라는 부분에서 벌떡 일어났고, ‘어지원 오빠 바보’에서 분노를 표출했다고 한다. 이렇게 글로 싸우다니 대단했다.
그렇게 해안도로에서 킥보드를 탔다는 비슷한 저녁을 보낸 두 아이가 모두 ‘해안도로’라는 제목의 전혀 다른 글을 남겼다. 재밌는 것은 아이들의 글을 받아 쓰면서 아이들의 하루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일들을, 그 속에 느꼈던 어린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어지기를 바란다. 조금 더 크면 이렇게 엄마에게 굳이 쓰고 싶은 말을 불러줄 필요가 없을 텐데 이 시간들을 소중히 느껴야지. 오늘도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