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해내고 있고 나는 못 해내지만 우리는 잘하고 있어.
우선 그간 우리에겐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이한다는 것은, 자녀가 있는 교사 가정에 3월 1주라는 것은 얼마나 멘붕의 시간인가를 다시금 느꼈다. 다가오는 3월을 기다리며 우리는 얼마나 부풀었었나? 한편 우리는 모두 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하루에 주어지는 에너지 총량이 정해진 무슨 법칙이 있는 것처럼 아이의 글을 받아 적어내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아이의 글을 받아쓰는 밤 시간은 그날 하루의 모든 일과를 정리하는 의식이 되었다. 개학 전에 읽은 두어 권의 자기 계발서는 모두 충만한 아침을 만들고 싶게 했다. 그래서 3월 2일 새벽 5시부터 벌떡 눈이 떠졌고 나는 아침 조깅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작심 이틀째 아침 건강주스를 준비하던 날 케일, 사과와 함께 내 손도 도깨비 방망이에 같이 갈려버릴 뻔했다. 공포와 충격의 싱크대 피바다의 경험은 별안간의 내 결심을 작심 3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주말이 되었다. 정말 주말만을 기다렸다. 다음주가 되면 실시간 원격 수업을 처음으로 하게 되는데 그전에 이틀간의 짧은 주말 동안 온전하게 주말을 느끼고 싶었다. 상처가 아물어가고 가족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니 참 감사했다. 그런데 오늘 미역국을 데우던 중에 가스레인지 옆에 놓여 있던 김치찌개 냄비를 옆으로 옮기다 달궈진 냄비 손잡이에 반대편 손가락이 화상을 입고야 말았다. 무언가 내 마음과 정신이 온전치 않기에 이런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것이다. 조금 더 차분하고 침착하게 다음주를 보내어야 할텐데 내 자신이 걱정스럽다.
큰아이는 새로운 학년,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교실, 새로운 담임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돌봄 교실반에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하고 있다. 큰아이는 혼자 학교도 잘 가고 매일 글도 잘 쓴다. 작은 아이는 지금껏 매일 같았던 등원 실랑이를 멈추었고 조금씩 글을 읽어내기 시작했다. 새로운 선생님 말씀이 법이라도 되는 듯 잘 지키려 하고 미술학원에서도 그림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선생님 편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저녁밥 할 힘을 잃었고 글쓰기도 많이 미뤘고 학교도 집도 둘 다 챙기느라 둘 다 조금은 잘 못해내는 것도 같다. 그래도 나는 너희들을 먼저 응원한다.
학교를 다녀와서 아이가 즐겁게 오늘은 글을 빨리 쓰고 싶다고 한 날이었다. ‘풀밭을 걸을 땐’이라는 시를 막힘없이 한 번에 불러주었다. 내 아이가 이렇게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다니, 마음이 이렇게 이쁘다니, 불러주는 단어에 온기가 가득한 것 같았고 받아 쓰는 내내 감탄하며 이 아이의 엄마라서 행복했다. 내 아이가 어린 시인같다고 생각했다. 그간 한 달여의 글쓰기로 결국 멋진 작가님이 되었구나 뿌듯했다. 교과서를 펼쳐 보기 전까지 말이다. 초2 국어 교과서에는 이화주 시인의 ‘풀밭을 걸을 땐’이라는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다. 내용이 조금 달랐던 것은 그날 학교에서 배운 시를 온전히 다 외우지 못했던 것이고, 이 시를 자신만의 글로 쓴 이유는 다른 시보다 마음에 가득 남아서였을 것이다. 풀밭을 걸을 때 풀벌레가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시인이나 내 아이는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겠지? 처음에는 ‘요놈이 글쓰기 싫어서 커닝을 하다니...’ 괘씸했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 아이가 수업 시간에 딴짓 안 하고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왔구나...’ 사랑스러웠다.
나도 한번 모작시를 써본다.
엄마가 출근할 땐
엄마가 출근할 땐
일찍 서둘러 챙겨도
늦게 여유를 부려도
아이에게 미안해
엄마가 출근할 땐
머털도사
머리털을 훔쳐다
내 몸이 열 개가 되면
좋겠다.
아이들아 내일 아침에는 엄마가 조금 덜 잔소리를 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