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다양한 종류의 글들을 씁니다.

아이는 매일 잘 쓰고 엄마가 따라가지 못하는 나날

by 서사임당

아이들은 매일 꾸준히 글을 잘 써왔다. 아이들이 쓴다고 해도 결국 내가 타이핑하고 편집하는 작업이니까 내가 열심히 잘했다. 그 원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저녁에 글이 완성되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서 고정 구독자들에게 글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하면 숙제 검사를 받은 것 같은 기분으로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나는 그 글을 바탕으로 다시 글을 써내려 가려고 했지만 매일 그것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 중에 대부분이 그 작업으로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왜냐면 아이들이 정말 매끄럽게 글을 줄줄 불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질문하고, 문장을 이어가고 어느 정도 타이핑한 문장을 읽어주고 바꿀 부분을 수정하고, 그런데 큰 아이만 하던 작업을 둘째도 같이하니 이것이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성격상 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정하면 안 하고는 못 버틸 것 같고, 아무튼 그럼에도 빠짐없이 글을 썼다.



아이가 매일 어떤 주제로 글을 쓰나요?



아이는 그냥 하루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을 주제로 글을 불러준다. 그러다 보니 영화를 본 날에는 영화감상문이 되었고, 재미있는 책을 읽은 날에는 독서감상문이 되었다. 좋아하는 할머니 댁 고양이 풍요 사진을 받아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한 문장씩 두 문장 같이 불러주어서 한 편의 시가 되기도 했다. 이어지는 신학기 준비 마라톤 회의에 저녁 시간을 넘겨 퇴근한 날은 너무 춥고 미술학원을 다녀오고 나서도 아이들이 참 많이 기다렸다. 그날은 큰아이 친구 다인 엄마가 애들을 데리고 콩나물국밥집에 갔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며 맛집 리뷰와도 같은 글도 남겼다. 그리고 어제는 k선생님의 남편이시자 거제 바닷속 생물들을 찾아 소개해주시는 다이버 거제도김강사님의 새로운 유튜브 영상을 몇 편 보았는데 큰아이가 좋아하는 에그박사나 생물도감처럼 느껴지는지 김강사님께 팬레터를 써서 전송하였다. 한 주 동안 쓴 글은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에게 가장 익숙했던 일기였고, 문장 속 운율감이 느껴질 때면 시처럼 쓰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 틀을 벗어나 글을 읽는 사람을 의식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과정은 어떠한가요?


아무것도 없는 백지를 글로 채우는 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2주째 우리는 함께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오늘 하루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멋진 일을 기록하고 그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니 그래도 할 만한 작업으로 느끼고 있다. 본래는 생각 속에 사라졌던 것이지만 글 속에 담겨 있으니 꺼내어 보고 다시 읽어보고 그것을 읽어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변에서 ‘작가님’으로 치켜 세워주기도 하니 아이는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돈을 알게 된 아이가 100편의 글을 완성하면 받기로 한 원고료 20,000원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매일 저녁에는 아이와 30분 이상 대화를 하고 한 편의 작품이 완성된다. 세상에 많은 아이들이 엄마와 또는 아빠와 이렇게 즐거운 작업을 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 한 편의 글, 쌓이지 않도록 오늘은 여러 편 모아보기

여동생과 함께 좋아하는 고양이 풍요를 위해서 쓴 글 ㅣ 한 편의 시와도 같았다. 2021.2.14. @어율곡_어난설현



큰아이는 풍요가 친구를 만나러 밖에 마음대로 나가는 것이 부럽다고 했다. 그런데 반대로 풍요가 그만 들어오고 싶을 때도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추우나 더우나 데크 위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던 것이 생각났는지 불쌍하다고도 느꼈다. 털이 많아서 할머니 댁에 갔다 오면 늘 옷에 고양이 털 범벅이 되지만 그래도 폭신폭신 풍요는 부드럽다. 고양이 주인인 이모에게 시를 보내어 주니 풍요에게 읽어주었다고 한다. 고양이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영화 <리틀포레스트 2> 일본 원작을 함께 보고 쓴 글 ㅣ 2021.2.15. @어율곡


이제는 자막이 있는 외국영화를 함께 볼 수 있다. 큰아이도 여느 남자아이처럼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 영화를 사랑하지만 감성코드가 나랑 맞아서 잔잔한 이런 영화도 좋아한다. 아이가 끝까지 이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깨끗한 영상미 속에 끊임없이 요리하는 과정이 나온다는 것에 있다. 요리사가 꿈인 아이에게 요리 과정을 보는 것은 너무 재미있는 시간처럼 보인다. “리틀 포레스트는 나의 운명이다.” 아들아 정말 운명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일본 가정식이라고 할 만한 ‘낫또떡’을 먹어보고 싶다는 말이 너무 웃기고, 계속 같이 만들어보자고 하는데 약간 황당스럽다. 낫또... 나는 자신이 없다.



문제의 그날, 콩나물국밥집에서 어린이 떡갈비세트 먹고서는 콩나물국밥 예찬론을 썼다. 2021.2.16 @어율곡


콩나물국밥 원래 가격이 3,900원에서 4,000원으로 100원 인상된 것이 아이에겐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었는가 보다. 개운하고 얼큰하고 뜨끈뜨끈, 아삭아삭 시원하다는 다양한 맛 표현이 웃기고, 아마 자신이 아는 그 모든 표현을 끌어다 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만큼 아이는 콩나물국밥을 좋아했다. 비록 이날은 떡갈비를 먹었지만 아이는 국밥 형태의 음식을 사랑한다. 추운 날 국밥 한 그릇의 맛을 알아버렸다.

불러주는 줄거리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첫 독서감상문 ㅣ 2021.2.17 @어율곡


아마도 글 쓰기 소재가 없었던 날이었나 보다. 돌봄 교실에서 병관이와 지원이 시리즈를 읽고 이 책에 빠졌다고 한다. 아마도 병관이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가 되어서 그런 것 아닐까? 레고가 갖고 싶은 병관이처럼 1월부터 집중되어 있는 가족들의 생일에 챙겨줄 선물들을 사야 하고 갖고 싶은 책들도 사고 싶어서 아이가 요즘 돈타령이다. 명절에 받은 세뱃돈도 저축하지 못하도록 기를 쓰고 말리려 했다. 병관이처럼 설거지, 청소, 빨래를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꾸역꾸역 열심히 글을 불러주는 이유도 돈의 힘이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돈은 좋은 것이라고 한다. 암요.



인생 첫 팬레터 2021.2.18 @어율곡


정말 신기한 일이다. 종이 한 가득 글이 채워지는 것은 생각보다 순식간이다. 편지글이어서 그런지 할 말이 많아서 그런지 여러 영상들을 챙겨보고는 자신의 관심사를 충족시켜주는 김강사님께 글을 쓰기로 했다. 결국 팬이 되었다고 스스로 밝혔다. 너무 신기했다. 단어나 문장 말미에 엄청난 존칭을 쓰고 싶어함을 느꼈다. ‘대단하세요’가 아니라 ‘대단하십니다’라니... 존경의 마음이 글에서 묻어난다. 스쿠버 다이빙을 모르니 바닷속에 들어가 촬영하면서 어떻게 숨을 쉬는지가 아이에겐 제일 걱정이었다. 이 글을 쓰고 아이는 계속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애니멀 포유라고 KBS에서 예전에 했던 스펀지라는 프로그램 영상을 모아 보여주는 채널 같았는데 그걸 보고는 또 잡다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설명한다.


‘군소 알은 라면같이 생겼어’, ‘ 불가사리는 묶어둔 끈을 스스로 풀고 나와’, ‘문어는 배가 고프면 자기 다리를 뜯어먹어’ 등등


그러고는 김강사님께 전달된 팬레터 답장이 왔다. 1호 팬이 되어줘서 고맙고 그 선물로 보고 싶은 바다생물이 있으면 찍어서 보여주신다고 했다. 아이가 환호성을 지르며 “오예 ~

나비고기!!!!!”라고 외쳤다. 이제는 삶에 있어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 글을 써가며 그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커지고 있음을 느낀다. 어제는 처음으로 스스로 타이핑을 해보려고 키보드 위에 ‘거제도 김강사’까지 썼다.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엄마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써 내려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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