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찾아서, 낚시하기
오늘은 설날 아침이다. 결혼을 2012년 8월에 했으니 벌써 9번째 설날을 맞이한 것이다.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살지만 명절뿐 아니라 한 번도 시댁에 가서 자본 적이 없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일하면서 외손에 애들 둘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 혼자서 이렇게 잘해줘서 고맙고 엄마가 늘 너희 편하게 해 줄게. 나중에 힘이 없으면 그때 너희가 알아서 해라.”
처음에는 ‘오? 이게 맞나?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시간이 쌓인 만큼 어머니의 마음이 무엇인지 충분히 안다. 그리고 사실 너무 편하다. 음식 장만은 본인께서 자기 만의 스타일로 휘릭 해야 마음 편하다 오지 말라 하시니 우리는 명절 당일 아침에 어머님 댁에 가서 다 준비해두신 음식을 상에 차리기만 하고 차례를 지낸 후 밥 먹고 산소 다녀오면 며느리 일과는 끝이다. (설거지도 못하게 버럭 하시며 쫓아내시는데 이제는 형님과 합심하여 설거지를 쟁취했다.) 그래서 본 명절 전날에 우리끼리 있는 것이 심심하기도 하고 할 일도 없어 우린 늘 친정에 가서 음식 하면서 딩굴딩굴 같이 놀기도 했다.
‘설날에는 시댁에, 추석에는 친정에’
우리는 시댁과 친정이 결국 다 10분 내 거리가 있다. 틈만 나면 가는 곳들이라 저 문장과는 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이런 삶이 가능한 것도 혁신적인 사고를 생각에 머물지 않고 실천에 옮겨주신 어머니가 계시기에 가능했다. 이번 설에는 ‘5인 이상 집합 금지’라는 상황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다. 이 아침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잠시 시댁에 가서 그 별 것 아닌 의식만 치르고 오면 되기 때문이다.
지난밤 아이가 쓴 글은 ‘망둥어’이다. 이 글이 탄생한 데에는 또 하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본 명절 하루 전 아이는 지금껏 계속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니 이모와 함께 명절 음식을 만들었다. 어느 정도 크고 난 후 전 뒤집기를 시켜줬으니 한 3~4년 정도 되었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 마음껏 다양한 요리 과정을 보고 살짝 참여도 할 수 있는 시간, 그것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이모랑 비비적거릴 수 있고, 방방 뛰어도 되는 할머니집.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결혼식은 없었지만 가족이 더 늘었다. 동생이 결혼 준비를 위해(집 문제) 얼마 전 먼저 혼인신고를 한 것이다. 연애 11년 차이기 때문에 늘 우리와 함께 있는 룡이도 익숙했지만 이젠 제부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에 아이에게 오늘 가면 안될 것 같다고 했더니 인상이 구겨지기 시작했다. 차선으로 혼인신고를 마친 여동생과 제부를 시댁에 먼저 가서 인사하고 오라고 이르자 아이가 울상이 되었다. 그렇게 이모가 가면 가서 요리를 하면 된다고 했는데 아이가 외갓집에 가고 싶은 이유는 재밌는 요리 때문이 아니라 이모와 같이 요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모가 결혼하면...이라는 상황을 인지시켜주니 곧 울 것처럼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가 뿔이 나기 시작했다. 사춘기 소년으로 돌변한 듯 말수가 없고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하는 수 없이 아빠가 낚시를 가자고 말했다. 원래 갖고 있던 텐션의 절반 상태로 집을 나섰다. 가을 무렵부터 아빠가 아이를 데려가면 귀찮으니 밤에 분리수거하러 간다거나 운동 좀 하고 온다 말해놓고 혼자만의 낚시를 즐겼다. 아이도 살짝 눈치를 챈 것도 같은데 그러고 보면 그 좋아하는 낚시를 함께 가지 않은지 몇 달이 된 것도 같았다. 겨울엔 물고기가 잘 안 잡혀서 추위에 오들오들 떨테니 안 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 마음을 달래어주기 위해 아빠는 낚시를 결심했다. 그리고 외갓집에 잠시 들러 선물을 전해드리면서 할머니에게 “오늘 광어 잡아올 테니까 저녁에 회 먹을 준비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가 물고기를 낚은 사진이 한 장 전송되어 왔다.
광어는 아니고 작은 망둥어 한 마리였다. 나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몰랐는데 아이가 불러주는 글을 쓰며 오늘 어획량이 엉망이었구나 깨달았다. 분명 문장이 쭉쭉 이어지는 일기글인 듯했는데 받아 적고 보니 시 같기도 해서 오늘의 글은 시처럼 편집했다. 아이가 나름 물고기 공부도 열심이라 어종에 대한 확실하지는 않지만 풍부한 지식을 갖기 시작했다. 어디든 내 바다라고 생각하며 바다를 아끼는 것도 같다. 흰 살 생선이 아니면 비려서 물고기는 입에도 대지 않지만 아이가 이렇게 열심히 낚시를 하는 그 첫 번째 이유는 재미있어서이고, 그 두 번째 이유는 외할머니가 물고기를 특히 회를 좋아하셔서이다. 앞으로 이모가 없는 외할머니댁은 어떨는지, 이모 시집가는 날 대성통곡할까 싶어 걱정이고 명절 전날 때마다 낚시나 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 가족들을 깨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