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길을 따라 걸었던 날

세자트라숲을 따라 이순신공원까지

by 서사임당


솔밤시길, 솔시밤길 나는 이 길의 이름이 많이 헷갈렸다. 그런데 ‘솔밤시’는 솔방울의 통영 사투리라고 한다. 그것을 알게 되자 이 길의 이름이 분명하게 와 닿았다. 큰 아이는 눈썰미가 있어서 이 길 초입에 있던 나무표지판의 그 이름을 정확히 기억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뛰어가 놀던 길이어서 그런지 ‘내가 좋아하는 길’이라고 부제목을 붙였다.

명절에 고생하신 우리 엄마와 함께 걸었던 날이었다. 나무를 보고 바다를 보고 숲을 느끼며 유유자적 걷다 보면 이내 곧 도착한다. 시계도 없는 아이가 어떻게 20분 남짓임을 알았을까? 자기만의 체감 알람이 있는 건가? 아무튼 소요시간을 바탕으로 우리가 걸었던 길을 가볍게 정리한 아이의 글이다. 지난 해안도로 글에서도 느꼈는데 큰아이는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에너지 넘치게 뛰어가 1등으로 도착하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또 누구보다 빠르게 제 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르고 글을 쓸 땐 늘 다리가 빠지겠다거나 허리가 빠지겠다는 둥 앓는 소리를 남긴다. 동생에게 지기 싫은 마음, 운동은 내가 잘한다는 인정의 욕구가 이렇게 과도한 1등 쟁취와 집에 왔을 때 여러 통증을 동반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큰아이는 여동생의 글을 읽고 마지막 두 문장을 첨부해 달라고 했다. 내 느낌에는 어린 동생의 글이 더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스스로는 동생보다는 자기 글이 더 만족스러운가 보다. 그리고 동생의 해안도로 글에서 분노했던 마지막 문장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이렇게 글로도 티격태격할 수 있다니 새로운 세상이다.





오빠는 해초류라고 어림직 알았던 것을 동생은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바다에서 ‘뭐를’ 잡았다. 아이의 눈에 그 모습이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몇 번이고 우리가 걸으러 왔던 길인데 할머니와는 처음 걸었다. 우리는 그냥 걸으러 왔던 길이었는데 친정엄마는 아이들 따라 바닷가로 내려왔다가 이내 그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바위 위를 살폈다.


“이건 몰이네?, 아이가 이거 뜯어가야 되겠다.”


“이거는 산파래라서 먹어도 되는데... 이것도 따라.”


“어라, 톳도 있네? 두부하고 나물할 수도 있고, 반찬이 널맀다. 널맀어.”


엄마가 그렇게 진지하고 즐겁게 구부려 앉아 해초를 뜯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재밌어서 몇 개 따 보기도 했지만 재미로 하는 것이지 이렇게 전문 어업종사자처럼 열심히 할 일인가 싶었다. 엄마 얼굴은 즐거웠다. 말릴 수가 없었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 주변에 앉아 이것저것 살폈다. 큰 아이와 나는 자연산 홍합이랑 오만디, 고동 같은 것을 찾았다. 먹을 만큼 큰 것이 아니지만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면 설레고 반갑다. 그 시각 윤서는 자기 눈에 반짝거리고 예쁜 에메랄드 색 돌을 줍고 있었다. 바다에 파도에 바람에 깎이고 부식되어 정말 예쁜 색 예쁜 돌이 되어 하나의 보석 같아 보이던 것들을 찾아 4개나 주웠구나. 자신이 글을 불러주는데 그게 돌이 아니라 유리라고 오빠가 핀잔을 주니 자기도 알고 있었다고 버럭 하는데, 과연 정말 알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우겨대니 그대로 쓰긴 했는데 정말 유리인 것을 알고 있었을까?


윤서의 글에 ‘숲에 가니 몸에서 부스터가 계속 나왔다’는 표현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정말 신나서 발에 모터가 달린 듯 뛰어다녔고 쫒아갈 수 없을 정도로 한 마리 새처럼 날아다니던 아이, 결국 내리막에 철퍼덕하고 넘어졌지만 눈물도 흘리지 않는 아이. 좋은 날이어서 그 좋음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걸일까? 오빠를 따라잡지 못해 결국 2등이었는데 등수에 연연하지 않고 쿨하게 2등을 인정한다. 아무튼 아이는 이 날을 좋은 날이라 생각하고 재미있는 날이었다고 마무리하니 마음 한 켠 고마웠다. 멀리 여행가지 않은지 1년이 넘었다. 어쩔 수 없지만 호텔이나 숙박시설도 꺼림칙해서 우리 지역에 머무는 날이 많은데 아이들이 늘상 오는 이 곳을 좋아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냥 가볍게 걷자고 했는데 엄마는 톳이랑 몰이랑 산파래가 너무 싱싱하다고 열심히 뜯었다. 산책이란 무엇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지만 무엇이 되었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므로, 모두가 행복했던 순간으로 그날을 저장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