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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댄싱스네일 Mar 23. 2019

나도 구김살 없는 사람이었으면

마음속 검은 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꽃이나 나무를 보며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동물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고양이나 강아지를 보며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기도 어려웠다. 그럴 때면 매정한 냉혈한처럼 보일까 봐 ‘솔’ 톤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와~ 귀엽다! 너무 예쁘다!”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리액션을 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내가 남들과 좀 다르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냥 원래부터 그런 사람인 줄 알아서 일단 상황만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웃음이라는 보호색을 띤 채 사람들 틈에 섞이기 바빴다. 웃는 얼굴 뒤로 필요 이상의 감정들을 가릴 수도 있었고, 웃고 있기만 하면 누구도 나의 결핍에 대해 묻지 않으니 편했다. 그러다 보니 적절한 감정을 느끼는 기능이 점차 떨어졌는지 더 이상해졌다. 모두가 심각한 상황인데 혼자만 공연히 웃음이 터져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 때가 있는가 하면 상황에 맞게 화를 내야 할 때에도 얼굴은 웃고 있었다.


부정적 감정을 서툴게 표현했다가 도리어 상처 입는 경험을 겪게 되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 두려워져서 느끼기 이전에 가치 판단부터 하게 된다. 부정적 감정은 나쁘니까 숨겨야 하고, 긍정적 감정은 좋으니까 그것만 드러내야 한다고. 제때 흐르지 못한 감정들은 그대로 고이고 썩어 긍정적 감정을 느낄 수 있는 통로마저 막아 버린다.


마음속 검은 때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군가는 악용할 수도 있고, 받아들일 준비가 미처 안 된 사람에게는 무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만약 나의 구김살들을 내가 먼저 안아 줄 수 있다면 억지로 웃어 보이지 않고도 세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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