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린 적이 있다. 입대를 코앞에 둔 아는 오빠였다. 서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입대하기 직전이어서 휴대폰도 정지시킨 상황이라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문소리가 들릴 때마다 ‘혹시나’ 안테나를 켜고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세 시간쯤 지났을까?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여 해결하느라 늦었는데 이미 갔으리라 생각하고 ‘혹시나’ 하여 와봤다고 한다.
세 시간을 기다린 나도 이상한 사람이고,
세 시간 후 나타난 오빠도 이상한 사람이라 말하며 웃었다.
종종 그때를 기억하며 질문하곤 한다. 나는 그를 기다린 걸까, 기다리지 않은 걸까.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적엔 "나 기다리는 거 잘해요" 라며 그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딱히 그를 기다린 것 같지는 않다. 당시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책이 좋았고, 서점이 따뜻해서 조금 더, 조금만 더... 머물다가 그를 만났을 것이다. 그걸 '기다림'이라 말한다면, 인생 자체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간의 배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지 않을 기회, 어쩌다 만날 사람, 뜻밖의 순간을 기다리는데 그걸 '기다린다'라고 생각하면 영영 만나지 못했을 경우 겪게 될 실망과 상처를 감당하기 힘들기에 나는 그저 기다린다는 말 대신 그냥 살다 보니, 라는 말로 나를 보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야 오지 않아도, 만나지 못해도 나는 계속 '나'일 수 있을 테니까. 이를테면, 그 서점에 2시간 59분쯤 머물다 나왔는데 3시간 5분 후에 그 오빠가 도착하여 우리가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 ‘2시간 59분’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 시간에 '의미'라는 숨결을 주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다렸어도 기다리지 말았어야 했다. 살다 보니, 인생이란 이런 모순의 연속이더라.
그래도, 그렇게 살아도 뭔가 놓친 것 같은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얼마 전 끝난 <낭만 닥터 김사부> 외전에는 김사부의 첫사랑이 등장한다. 서로 사랑했지만 ‘어긋남’ 때문에 각자의 인생을 살아야 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만난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는 왜 그 시절을 놓쳤을까?” 그 말이, 나에게는 너무 무거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잘살고 있다고, 이만하면 잘 산 것 아니냐고 나를 다독이지만(드라마에서 김사부도 그런 말을 한다) 사실 무언가를 지속해서 놓치고 살아온 건 아닐까. 이런 질문은 어쩌면 그동안 내가 애써 ‘기다리지 않으며’ 사실 ‘기다린’ 삶을 살아왔다는 고백일지도 모른다.
나는 대체 무얼(누굴) 기다리며 사는 걸까. 아직 오지 않은 걸까, 놓친 걸까. 오지 않은 것은 아득하고, 놓친 것은 잡을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안 보이지도 않게 선명해서 애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