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
어머니가 죽은뒤 카롤리네와 그녀의 동생인 빌헬름 프리드리히의 상황은 애매하게 됩니다. 둘은 작센 선제후령에 머물고 있었지만 작센 선제후와는 혈연관계가 없었습니다. 작센의 선제후는 형수의 전남편의 아이들에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결국 아이들은 다시 고향인 안스바흐로 돌아가게 됩니다.
안스바흐에는 둘의 오빠이자 형이었던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마르크그라프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2세가 있었습니다만 그는 미혼이었고 군인으로 이곳저곳의 전쟁에 참전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복 동생들에게 그다지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카롤리네와 카롤리네의 동생에게 그다지 좋은 점이 아니었는데 특히 카롤리네에게 더 나쁘게 작용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동생은 일단 미혼인 형의 후계자였으며 이때문에 안스바흐에서 중요한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카롤리네는 여자아이였으며 안스바흐에서 동생보다 중요성이 떨어졌으며 당연히 더 홀대 받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다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가 관여합니다. 선제후는 카롤리네의 남동생의 후견인이었을뿐만 아니라 부부는 카롤리네의 어머니의 불행에 어느정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카롤리네를 자신의 궁정으로부르기로 결정했고 카롤리네는 선제후령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가게 됩니다.
선제후비는 카롤리네를 매우 잘 돌봐줬는데 그녀에게는 아들 한명밖에 없었기에 카롤리네는 선제후비의 딸과 비슷한 취급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선제후비는 영리한 카롤리네를 매우 좋아했으며 카롤리네 역시 선제후비를 매우 사랑하게 됩니다.
카롤리네가 어머니처럼 따르게 되는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비이자 후에 프로이센의 첫번째 왕비가 되는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는 매우 지적인 인물로 알려져있었습니다.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는 하노버의 선제후가되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그의 아내인 팔츠의 조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조피 샤를로테의 아버지는 원래 가문의 막내로 계승할 영지가 없었을 것으로 여겨졌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형과 결혼하기로 했었던 팔츠의 조피와 결혼하면서 형의 영지를 계승할 자력을 얻었을뿐만 아니라 형들이 모두 남성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영지를 가문의 영지를 통합할수 있었는데 특히 장자상속제를 시행해서 장남인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가문의 모든 영지를 상속받을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와 그의 아들들은 황제를 위해서 군인으로 일했었으며 이런 공으로 그는 "하노버의 선제후"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조피 샤를로테의 어머니인 팔츠의 조피는 팔츠의 선제후이자 후에 보헤미아의 국왕이 되는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그의 아내인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공주인 엘리자베트 스튜어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팔츠의 조피와 그 자매들은 어린시절부터 지적이었다고 알려져있으며 특히 조피는 여러 철학자들과 교류했었다고도 합니다. 팔츠의 조피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1&6세의 외손녀였으며 또 평생 개신교도였으며 개신교도 남편과 결혼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그녀가 앤 여왕의 뒤를 이어서 왕위계승자권리를 가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아들인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영국의 조지 1세가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조피 샤를로테는 당대 문화적으로 매우 발전했었던 하노버 궁정에서 성장했었으며 특히 지적이었다고 알려진 어머니 팔츠의 조피의 닮았었으며 영향을 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피 샤를로테의 보호하에 있던 카롤리네 역시 조피 샤를로테의 영향을 많이 받게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