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 프로이센에서
부모가 죽고 난뒤 카롤리네는 어렵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부부의 보호아래 베를린으로 가서 성장하게 됩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이자 프로이센 공작이었으며 외교적 관계를 통해서 1701년 프로이센의 국왕으로 즉위했었습니다.
카롤리네는 프로이센 왕비인 조피 샤를로테의 보호아래 있었으며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매우 지적이었으며 예술과 과학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조피 샤를로테는 자신의 보호아래 있는 지적이며 호기심 많은 카롤리네를 좋아하게 됩니다. 그리고 보호자이자 인생 선배로 카롤리네의 삶에 관여하게 됩니다. 어린시절부터 불행한 삶을 살았던 카롤리네는 자신을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격려해주는 프로이센 왕비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으며 그녀를 마치 어머니나 큰언니처럼 따르게 됩니다. 이런 둘은 점차 더 친밀해지는 관계로 발전했으며 카롤리네는 점차 더 자신이 우상으로 여기는 조피 샤를로테와 닮아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게다가 카롤리네는 조피 샤를로테의 어머니인 하노버의 선제후비인 팔츠의 조피에게도 좋은 인상을 남기게 됩니다. 딸을 무척이나 아꼈으며 딸의 재능과 능력을 자랑스러워했던 하노버의 선제후비는 당연히 자신의 딸과 많이 닮아가는 카롤리네를 좋게 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카롤리네는 처음에 프로이센에 왔을때 그녀는 지적호기심은 뛰어났지만 기본적인 교육수준은 매우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카롤리네는 어린시절 불행한 삶을 살았고 이것은 주변에서 카롤리네의 교육에 대해서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문에 카롤리네는 처음에는 철자법도 엉망이었으며 글자체도 그리 좋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프로이센의 궁정에서 카롤리네는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자신의 우상이었던 조피 샤를로테를 따라다니면서 좀더 프로이센의 왕비를 닮아가려했습니다. 조피 샤를로테 역시 카롤리네를 딸이나 막내 여동생처럼 여겼으며 카롤리네가 남동생을 만나러 잠시 안스바흐로 갈때마다 조피 샤를로테는 카롤리네가 떠난 자신의 집은 마치 사막과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카롤리네는 프로이센 궁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며 조피 샤를로테가 있는 궁정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피 샤를로테 역시 카롤리네를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았었습니다. 카롤리네는 20살이 되도록 프로이센 궁정에서 지낼수 있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녀와 결혼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니다. 카롤리네에게는 부모가 없었으며 이것은 그녀의 혼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햇었습니다. 또 이복오빠인 안스바흐의 마르크그라프는 이복여동생에게 신경쓰지 않았으며 이것은 그녀가 지참금을 많이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이며 또한 정치적으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상황은 1703년 바뀌게 됩니다. 바로 이복오빠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2세가 죽고 카롤리네의 남동생인 빌헬름 프리드리히가 안스바흐를 이어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서 카롤리네는 조금 더 정치적으로 중요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때쯤 카롤리네에게 청혼하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아들로 에스파냐 왕위를 주장하던 카를 대공(후에 황제 카를 6세)였습니다. 아마도 카롤리네의 이복오빠가 에스파냐 계승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했었고 이런 관계로 카를 대공이 카롤리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일듯합니다. 이 혼담은 프로이센의 국왕인 프리드리히 1세가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혼담이었습니다. 그는 제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것을 선호했으며 당연히 이 혼담을 지지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카롤리네는 이 혼담에 대해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종교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당연히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시집가려면 가톨릭으로 개종해야했었는데 카롤리네는 개신교도로 당연히 이를 원치 않았었습니다. 카롤리네를 사랑했던 조피 샤를로테는 카롤리네가 원하는대로 하길 바랬습니다.사실 조피 샤를로테는 카롤리네를 떠나보내길 원치 않았고 외아들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결혼한다면 카롤리네가 자신의 곁에 머무를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과 카롤리네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조피 샤를로테는 카롤리네가 아들과 결혼해서 불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다른 혼처를 찾아보려했습니다.
카롤리네는 프로이센에서 카를 대공과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프로이센 국왕의 호의로 베를린 궁정에서 머물고 있던 카롤리네가 결혼을 거절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왕비였던 조피 샤를로테가 이를 막아주고 있었기에 견딜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지속되지 못하는데 1705년 조피 샤를로테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