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 : 영국의 캐롤라인 왕비(7)

혼담과 결혼

by 엘아라

1705년 1월 조피 샤를로테는 하노버에 있는 어머니 팔츠의 조피를 만나러 갔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조피 샤를로테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들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만, 더불어 카롤리네에게도 너무나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카롤리네는 어머니가 죽은뒤 조피 샤를로테에게 의지했었으며 인생의 의지처를 잃은 카롤리네는 무척이나 상심했을 것입니다.


하노버의 조피 샤를로테, 프로이센의 왕비


조피 샤를로테가 죽자 카를 대공과 카롤리네의 결혼에 대해서 프로이센의 국왕은 더욱더 압력을 가하게 됩니다. 그 역시 아내를 사랑했었고 아내가 죽자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서 아내가 의뢰해서 지었던 바로크 양식의 베를린에 있던 궁전을 "샤를로텐부르크"라고 이름을 바꿀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정치는 별개 문제였었습니다. 카롤리네는 이제 혼담을 막아줄 사람이 없었고 이것은 베를린의 궁정에서 그녀의처지를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보호해줄 왕비가 없었던 카롤리네는 궁정 사람들의 질투에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카롤리네는 궁정에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결국 카롤리네는 고향인 안스바흐로 돌아가게됩니다.


카롤리네에게는 다행히도 후원해줄 사람이 있었습니다.카롤리네의 동생이었던 빌헬름 프리드리히는 누나가 원치 않는 결혼을 하지 않도록 합니다. 그는 이제 안스바흐의 군주로 누나의 혼담에 대해서 결정할 권리가 있었으며 비록 프로이센 국왕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누나의 뜻을 존중해주기로 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동생 빌헬름 프리드리히,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마르크그라프


동생의 지지때문에 카롤리네는 카를 대공과의 결혼을 피할수 있었지만 결혼하지 않는한 이런 정략결혼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카롤리네는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런 카롤리네를 눈여겨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피 샤를로테의 어머니이자 하노버의 선제후비였던 조피였습니다.


조피는 딸과 함께 같이 다녔으며 딸과 비슷한 성향을 가졌던 카롤리네를 매우 좋게 봤었습니다. 그리고 손자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신붓감으로 카롤리네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죽고 난뒤 카롤리네에 대한 생각은 더 커져갔는데 딸과 늘 함께 지냈던 이 카롤리네를 자신의 손자 며느리로 맞는다면 더 매우 좋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팔츠의 조피, 하노버의 선제후비


조피의 아들인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 역시 어머니와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는 카롤리네가 며느리감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었지만 바로 혼담을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아내인 조피 도로테아와 너무나도 큰 스캔들을 일으키면서 헤어졌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는 사랑없는 결혼을 했기에 아내와 헤어졌다고 여겼으며, 아들이 마음에 드는 사람과 결혼하길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신분을 감추고 안스바흐로 가서 신붓감을 만나보게합니다. 그리고 둘이 서로 마음에 든다면 결혼을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선제후의 후계자였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안스바흐로 갔으며,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첫눈에 카롤리네에게 반해버립니다. 그는 하노버로 돌아와서 아버지게에 카롤리네와 결혼하겠다고 이야기했으며, 후계자가 급했던 선제후는 서둘러 아들의 결혼식을 발표합니다. 이 결혼 계획은 선제후의 어머니이자 카롤리네를 좋아했던 조피조차 몰랐었으며, 또한 프로이센쪽에서도 몰랐었습니다. 조피는 섭섭해하긴 했지만 카롤리네가 손자 며느리가 되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다. 하지만 프로이센쪽에서는 약간의 섭섭함과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노버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1705년 8월 22일 카롤리네는 하노버로 왔으며, 그날 카롤리네는 하노버 선제후의 후계자인 하노버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이렇게 카롤리네는 하노버에서 살게 됩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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