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영국의 캐롤라인 왕비(8)

남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

by 엘아라

카롤리네가 결혼한 하노버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하노버의 선제후였던 게오르그 루드비히와 그의 아내인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의 아들이었습니다. 하노버 선제후 가문은 오래된 유럽의 통치가문중 하나였던 벨프 가문의 후손으로 특히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령을 세습해왔기에 일반적으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가문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이 가문은 다른 유럽의 여러 통치가문들처럼 오래도록 분할상속제를 했으며 이것은 가문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가문은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할아버지였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가 하노버의 선제후(정확히는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선제후)가 되고 장자상속제도를 시행해서, 게오그르 루드비히가 하노버의 선제후 지위와 가문의 모든 영지를 상속받았었습니다. 그리고 카롤리네의 남편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이런 하노버 선제후의 유일한 후계자이기도 했었습니다.게다가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영국의 왕위계승자도 될수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인 팔츠의 조피를 통해서 영국의 왕위계승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1701년 가톨릭교도의 영국 왕위계승을 금지했고 이때문에 후계자가 없던 앤 여왕의 후계자가 될 권리가 팔츠의 조피와 그 후손들에게 넘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 후에 영국의 조지 1세,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아버지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부모는 세상이 다 알도록 떠들썩한 스캔들을 통해서 이혼을 햇었습니다. 게오르그 빌헬름과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는 서로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결혼했었습니다. 결혼초는 괜찮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부는 멀어져갔고 특히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정부를 얻자 조피 도로테아가 이 문제에 대해서 남편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 다른 남자와 만나기까지 하면서 부부관계는 완전히 끝장나게 됩니다. 특히 조피 도로테아가 다른 남자와 도망가려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둘은 결국 헤어졌는데, 당대 많은 사람들처럼 가부장적 인물이었던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이런 아내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고 아이들과 아내가 절대 못만나게 했으며 심지어 그 누구도 아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까지 했었습니다.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어머니


부모가 이혼했을때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11살이었고 평생 보지 못하게 되는 어머니를 그리워할 나이였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적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어떤 말을 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게오르그 아우구스트가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는 원인이 됩니다. 게다가 하노버의 선제후는 자녀들이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말에 복종해야한다고 생각했을뿐만 아니라 아들이 성인이 되어갔음에도 그가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제한했었습니다. 아마도 하노버의 선제후는 아들이라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할수 없었으며 그것은 정치적인 면에서도 마찾가지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성인이 된 후계자인 아들이 정치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지시만을 따라야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아들이 불만을 품게되는 일일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노버의 선제후는 당대 많은 사람들처럼 가부장적인물이었으며 자녀들의 교육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원래는 아내가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해야했지만 그는 이혼후 재혼하지 않고 정부와 함께 살았으며 자녀들의 교육은 선제후의 어머니인 팔츠의 조피가 담당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와 선제후와의 갈등이 좀 더 커지는 원인중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선제후는 어머니라도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원치 않았었습니다. 조피는 남편의 생전에도 정치적 권력이 없었으며 당연히 성인이 된뒤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아들의 궁정에서도 정치적 영향력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조피가 영국 왕위계승권리를 가지는 중요한 인물이었고 야망도 있는 인물이었기에 당연히 어느정도 불만을 가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불만을 손자에게 이야기했으며 안그래도 어머니 문제로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던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더욱더 아버지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팔츠의 조피, 하노버의 선제후비,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의 할머니


하노버의 선제후 역시 아들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게오르그 아우구스트는 그의 유일한 아들이자 하노버 선제후령의 유일한 후계자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어쩔수 없이 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문에 아들의 결혼 문제에 대해서 카롤리네를 마음에 들어했음에도 아들에게 신붓감을 만나보고 결정하게 하는 등의 일을 했던것입니다. 어쨌든 선제후는 아들이 적어도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는것을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카롤리네는 하노버 선제후령의 후계자이자 어쩌면 영국의 왕위계승자가 될수도 있는 게오르그 아우구스트와 결혼햇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복잡 미묘한 상황의 가족의 일원이 된것이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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