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해서 : 영국의 캐롤라인 왕비(4)

불행한 어린시절 : 어머니의 불행과 죽음

by 엘아라

1691년 11월 카롤리네의 어머니는 베를린으로 갔고 이곳에서 재혼을 제의받게 됩니다. 재혼 상대는 작센의 선제후였던 요한 게오르그 4세였습니다. 이 혼담은 선제후의 어머니였던 덴마크의 안나 소피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가 주선한 것으로 왕가의 결혼은 정략결혼이었으며 과부였던 카롤리네의 어머니가 아직 한번도 결혼하지 않았던 작센의 선제후와 결혼하게 된 것은 복잡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그 4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부부는 이 결혼이 카롤리네의 어머니에게 나쁘지 않다고 여겼었는데 일단 선제후와 결혼하는 것은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에게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향상할수 있는 것이라 여겼으며 아이들에게도 좋을 것이라 여겼었습니다. 게다가 브란덴부르크와 작센의 우호관계에 좋을 것이라 여겼었습니다. 당시 작센의 재상은 브란덴부르크와의 동맹을 중요하게 여겼었으며 이것은 작센에서 황제와 갈등을 빚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란덴부르크 가문의 일원이 된 카롤리네의 어머니가 작센의 선제후와 결혼하는 것은 브란덴부르크의 이익에도 부합되는 것이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 후에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1세


반면 작센쪽에서도 사실 이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는 사실 사랑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이데슈츠의 마그달레나 시빌라였습니다. 사실 그녀는 작센의 선제후와 결혼할 신분이 아니었고 이때문에 아마 선제후가 사랑한다고 해도 정부가 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선제후의 어머니였던 안나 소피는 둘의 관계를 결사반대합니다. 왜냐면 마그달레나 시빌라의 어머니가 한때 요한 게오르그 4세의 아버지인 작센의 선제후 요한 게오르그 3세의 정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게오르그 3세는 후에 마그달레나 시빌라의 어머니를 자신의 휘하 장교와 결혼시켰는데 이때문에 마그달레나 시빌라는 선제후의 딸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는 마그달레나 시빌라가 자신의 누이동생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어머니인 안나 소피는 이런 스캔들을 용납할수 없었으며 아들을 서둘러 결혼시키려했었고 정치적으로도 괜찮은 상대였으며 게다가 같은 작센 가문의 후손이기에 적당한 신붓감이었던 카롤리네의 어머니를 며느리감으로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덴마크의 안나 소피, 작센의 선제후비, 요한 게오르그 4세의 어머니


카롤리네의 어머니인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는 1692년 4월 17일 작센의 선제후와 결혼했으며 아이들을 데리고 작센 선제후령의 수도인 드레스덴으로 갑니다. 아마도 엘레오노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더 나은 작센의 선제후와의 결혼을 선택했을 것입니다만 이것은 그녀의 삶은 너무나 큰 불행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는 아내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마그달레나 시빌라를 자신의 공식 정부로 삼았으며 그녀와 늘 함께 지냈습니다. 반면 엘레오노레는 남편에게 무시당했고 이것은 그녀가 작센의 궁정에서 무시당하는 원인이 됩니다. 게다가 왕가의 결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후계자를 낳는 일이었는데 엘레오노레는 두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두번의 유산을 했었습니다. 게다가 아마 궁정에서 무시당하는 것과 후계자에 대한 압박으로 상상임신까지 겪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엘레오노레에게 더욱더 나쁘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는 자신과 마그달레나 시빌라의 사이에서 아내가 걸림돌이라고 여겼으며 이때문에 아내를 더욱더 냉대했었으며 심지어 아내를 없애려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는 아내를 대놓고 무시했고 사랑하는 마그달레나 시빌라를 자신의 공식 정부로 삼았고 마그달레나 시빌라를 위해서 황제에게 지위를 요구해서 그녀에게 "로츨리츠 백작부인(여백작)"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그리고 둘사이에서는 딸이 태어나기까지 합니다.


나이데슈츠의 마그달레나 시빌라, 로츨리츠 백작부인(여백작), 요한 게오르그 4세의 정부


엘레오노레의 불행한 결혼 생활은 1694년 끝나게 됩니다. 바로 요한 게오르그 4세가 사망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그달레나 시빌라가 천연두에 걸리자 요한 게오르그 4세는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 둘다 천연두로 사망하게 됩니다.


요한 게오르그 4세가 죽은뒤 작센의 선제후는 그의 동생인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가 잇게 됩니다. 그는 불운한 형수에게 계속 작센에서 살수 있도록 허락했었으며 엘레오노레는 아이들과 함께 작센의 자신의 거처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불행했던 두번째 결혼은 엘레오노레의 삶을 망쳤으며 결국 두번째 남편이 죽은 2년후인 1696년 사망합니다.


카롤리네의 어머니,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


카롤리네와 그녀의 동생은 작센에서 사는 동안 어머니의 불행을 직접 목격했으며 유일하게 남은 부모였던 어머니마저 죽는 경험을 했었습니다. 이런 경험은 어쩌면 카롤리네가 가족 특히 남편과의 행복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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