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가와 외가
영국에서 "캐롤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카롤리네는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요한 프리드리히와 그의 아내인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롤리네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대가문인 프로이센과 작센의 방계 가문으로 비록 가문은 오래되고 프로이센과 작센의 친척이긴했지만 실질적으로 소유한 영지는 매우 작은 가문출신이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가문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문의 방게 가문으로 이들 역시 호엔촐레른 가문의 일원이기도 했었습니다. 호엔촐레른 가문은 11세기경 촐레른 백작령을 통치하면서 시작된 가문으로 특히 "호엔촐레른 성"을 가문의 집으로 삼고 발전하기 시작했기에 이후 이 가문은 "호엔촐레른"이라는 성으로 불리게 됩니다. 호엔촐레른 가문이 성장하게 된 계기는 두가지인데 먼저 13세기 제국내 중요한 요충지중 하나였던 뉘른부르크를 보호하는 "뉘른부르크의 부르크그라프" 지위를 얻은것과 14세기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지위를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호엔촐레른 가문이 제국내에서 위상이 강화되는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독일내 수많은 가문들은 오래도록 장자상속제를 하지 않았으며 호엔촐레른 가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15세기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 "아킬레우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알브레히트 3세가 죽으면서 그는 영지를 세 아들에게 나눠줬는데 첫번째 경혼에서 태어난 장남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을 물려줬으며, 두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두 아들에게는 각각 안스바흐와 바이로트를 중심으로 하는 영지를 물려줬으며 이들은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와 브란덴부르크-바이로트 분가를 형성했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가문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분가로 호엔촐레른 가문의 여러 가문들과 연결고리를 강하게 가졌으며 특히 종가였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가문은 이들에 대해서 어느정도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외가인 작센-아이제나흐 가문은 작센 지역을 통치하던 베틴 가문의 일원이었습니다. 베틴 가문은 10세기 무렵 성립된 가문으로 특히 제국의 외곽지역을 통치하는 가문이었습니다. 이들은 마이센과 튀링겐 지역을 통치했었으며 결국 작센 지역을 통치했으며 이들은 작센의 선제후 지위를 얻었을뿐만 아니라 작센 공작지위도 있었습니다. 이 가문은 두개의 큰 분가로 나뉘는데 장자 계열인 에른스트 계열과 차자 계열인 알베르트 계열로 나뉘게 됩니다. 원래 에른스트 계열이 작센 선제후령을 가졌었지만 종교개혁시기에 황제와의 갈등으로 인해서 차자 계열인 엘베르트 계열에 작센 선제후령을 뺏기고 이들은 이후 작센의 공작령을 통치합니다. 그리고 에른스트 계열은 오래도록 장자상속제도를 하지 않았기에 여러 분가들이 생겨났다 합쳐졌다를 반복했으며 이로써 힘이 더욱더 약해지게 됩니다. 카롤리네의 외가였던 작센-아이제나흐 가문 역시 이런 에른스트 계열의 후손으로 특히 가문의 다른 분가였던 작센의 선제후 가문에 비해서 힘이 매우 약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친가와 외가는 매우 오래된 통치가문이었습니다. 이들의 본가는 매우 강력한 통치 가문이었지만 카롤리네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방계 가문으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던 가문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상황은 카롤리네가 어린시절 겪었던 불행과 어느정도 연결이 될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