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어린시절 : 아버지의 죽음
안스바흐의 카롤리네는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의 마르크그라프였던 요한 프리드리히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카롤리네의 아버지였던 요한 프리드리히는 자신의 영지를 통치하는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는 미성년으로 즉위했었으며 어려서 섭정들에게 의존했었습니다. 안스바흐는 작은 영지였지만 부유한 지역이기도 했었으며 이때문에 그는 돈이 많이 드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것에 더 집중했었습니다. 그는 첫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다섯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두 아들은 아버지보다 오래살았으며 이때문이 이들은 영지의 상속자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아내가 죽고 난후인 1681년 카롤리네의 어머니와 재혼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어머니인 작센-아이제나흐의 엘레오노레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세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만 그중 딸인 카롤리네와 아들인 빌헬름 프리드리히 만이 성인으로 성장했었습니다.
카롤리네의 어린시절의 불행은 1686년 아버지인 요한 프리드리히가 31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시작됩니다. 카롤리네에게는 이복 오빠가 둘이 있었으며 남동생이 한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가 미성년자였습니다. 특히 카롤리네는 아버지가 죽었을때 겨우 3살이었으며 남동생인 빌헬름 프리드리히는 태어난지 석달도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안스바흐 영지는 당연히 카롤리네의 이복오빠인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가 이어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 역시 미성년자였기에 섭정이 필요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새어머니를 좋아하지 않았고 또한 이복 동생들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적으로는 어머니가 섭정으로 일해야했지만 당연히 새어머니를 싫어했던 크리스티안 알브레히트는 이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정치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카롤리네의 어머니가 더이상 안스바흐 궁정에 머물지 못하고 두 자녀를 데리고 고향인 아이제나흐로 돌아가게됩니다.
아마 이런 상황에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가문의 분가중 하나인 안스바흐쪽에 개입하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문의 영향력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제후는 카롤리네와 동생을 베를린으로 부르게 됩니다. 이들은 선제후의 유일한 아들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과 함께 같이 지내게 하기 위한 이유였습니다.그리고 곧 카롤리네의 어머니 역시 베를린으로 가게 됩니다.
카롤리네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크게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으로 오게 된 상황은 다시 한번 카롤리네의 삶을 바꾸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어머니가 재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