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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Aug 10. 2023

들어가면서 : 포르투갈 왕국이 성립되기까지

포르투갈을 통치한 가문들 : 첫번째 이야기

포르투갈은 이베리아 반도의 서쪽에 길게 뻗어있는 지역으로 바다를 제외하고는 에스파냐와만 맞닿아있는 나라입니다. 포르투갈은 에스파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였습니다만 에스파냐와 비견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포르투갈은 육지쪽으로는 카스티야와 아라곤 그리고 이 둘이 합쳐진 에스파냐에 막혀있었기에 바다쪽으로 나가서 영향력을 확대했고 그 결과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했는데, 특히 남미의 거대한 브라질을 식민지로 가지고 있기도 했었습니다.


포르투갈이 독립적인 왕국으로 되는 시기는 12세기입니다. 이전까지 포르투갈의 역사는 이베리아 반도 전체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17세기 만들어진 포르투갈 왕국 지도


포르투갈 지역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3만 5000년전입니다. 이후 포르투갈에는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이주해오는데 철기시대에는 북부지역을 통해서 켈트인들이 왔으며, 또 지중해를 통해서는 “그리스인”으로 알려지는 근동아시아쪽 사람들 역시 포르투갈 지역로 건너왔습니다. 


포르투갈 지역이 본격적으로 역사 무대에 등장하게 되는 시기는 바로 카르타고와 로마가 싸우던 시기였습니다.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하자, 로마에서는 카르타고와 카르타고의 배경지역인 이베리아 반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후 로마는 카르타고를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카르타고의 지배하에 있던 이베리아 반도 역시 장악합니다. 로마는 계속해서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해나갔으며 결국  이베리아 반도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으며 포르투갈 지역 역시 로마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를 여러 지역으로 나누었는데, 특히 이전에 켈트인들이 살고 있던 칼레Cale룰 정복하고 이곳의 이름을 포르투 칼레 Portu Cale(칼레 항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습니다. 이것은 현재 포르투갈의 이름의 기원이 되게 됩니다. 로마는 현재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서부 지역을 포함하는 이베리아 반도 서부해안 지역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어서 루시타니아 지방으로 부르면서 통치했었으며 이곳은 포르투갈의 바탕이 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125년경)의 이베리아 반도


다른 유럽의 많은 지역처럼 로마의 힘이 약해지면서 포르투갈 지역에도 역시나 게르만인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게르만 인들은 3세기 무렵부터 포르투갈 지역에 들어왔으며, 특히 411년 게르만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기로 결정하면서 수많은 부족들이 몰려왔고 이들은 곧 이베리아 반도의 대세 세력으로 발돋움 하게 됩니다.


5세기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많은 게르만 인들 중에 수에비Suevi족 사람들은 현재 포르투갈 지역인 갈레시아 남서부에 왕국을 건설합니다. 이것이 수에비 왕국이었습니다만 6세기 역시 게르만인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지역에 정착하고 왕국을 건설했던 서고트족에 의해서 수에비 왕국은 합병당하게 됩니다. 서고트족이 세운 서고트 왕국은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었지만 8세기가 되면서 곧 위험에 부딪히게 됩니다. 바로 이슬람 세력의 이베리아 반도 진출이었습니다. 


6세기 이베리아 반도, 붉은 색은 서고트 왕국이고 하늘색이 포르투갈 지역에 있었던 수에비 왕국입니다.


711년 우마이야 칼리파 국Umayyad Caliphate의 사령관이었던 타리크 이븐 지야드Tariq ibn Ziyad가 7000여명의 군대를 이끌고 지브롤터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그를 막기 위해서 서고트의 국왕인 로드리고가 나섰지만 결국 전사합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은 거침없이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해나갔으며 결국 718년경에는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장악합니다. 이슬람쪽 기록자들은 이 새롭게 정복한 지역을 알-안달루스Al-Andalus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슬람 세력들은 이후 1492년 가톨릭 공동 군주가 그라나다를 함락시킬때까지 이베리아 반도에 남아있게 됩니다.


이슬람 세력이 급속히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지만, 이에 반발하는 기독교 세력들 역시 존재했습니다. 722년 이베리아 반도 북쪽에서 펠라요(펠라기우스)가 기독교 세력을 규합해서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에서 승리한뒤, 그 지역을 장악하고 기독교 왕국을 세우게 됩니다. 그 왕국이 바로 아스투리아스 왕국으로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화 된 뒤  생긴 첫 번째 기독교 국가이기도 했었습니다.


730년대 이베리아 반도, 알 안달루스라는 지역이 모두 이슬람 세력의 통치 지역입니다. 이베리아 반도 북쪽의 길다란 부분이 기독교 국가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지역입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를 통해서 영토를 넓혀나가게 됩니다. 특히 “대왕”이나 “에스파냐의 황제”라는 칭호로 알려진 알폰소 3세는 막대한 지역을 장악했으며 여기에는 현재 포르투갈의 되는 지역 역시 포함됩니다. 알폰소 3세 시절 아스투리아스 귀족이었던 비마라 페레스는 갈레시아 지방을 장악했으며 알폰소 3세는 비마라 페레스가 장악한 지역을 “포르투갈 백작령”으로 만들었으며 페레스를 포르투갈 백작으로 임명했습니다.

하지만 커진 나라의 영토를 한 사람이 통치하는 것은 어려웠으며 또한 아스투리아스 왕가의 내분으로 인해서 알폰소 3세의 아들들은 각각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레온으로 나라를 나누어서 상속하게 됩니다만 결국 레온쪽에서 다시 나라를 모두 통합해서 상속받게 됩니다. 사실 이런 혼란한 상황은 각기 다른 왕국으로 떨어져나갔단 아스투리아스, 갈리시아 등이 독립적으로 유지하고 싶어하는 원인이 됩니다. 


아스투리아스의 알폰소 3세, 포르투갈 백작령을 처음으로 만든 인물입니다. 아들들에게 영지를 분할해서 상속했는데 왕국은 다시 레온을 중심으로 합쳐지게 됩니다.


이후 레온 왕가는 통치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해야했을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국가들인 나바라나 아라곤 같은 나라들과도 경쟁관계가 됩니다. 결국 11세기 나바라가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결국 나바라 국왕의 아들인 페르난도 1세가 레온 국왕이 되었으며 레온 왕가가 통치하고 있던 원래 영지 대부분을 장악합니다. 페르난도 1세는 역시 아들들에게 왕국을 분할해서 상속해지만 이 아들중 알폰소 6세가 다른 형제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서 왕국의 모든 지역을 다시 통합합니다.  하지만 통합한 지역에서는 반발이 일어났었으며 그중 하나가 포르투갈 백작령이었습니다.  알폰소 6세는 이런 반발이 심한 지역을 통치하기 위해서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사위인 부르고뉴의 앙리에게 포르투갈 백작령을 줘서 통치하도록 했습니다.


레온과 카스티야의 알폰소 6세, 그는 아버지 페르난도 1세로부터 레온을 물려받았지만 복잡한 상속관계를 거쳐서 카스티야 왕위도 얻게 됩니다.


부르고뉴의 앙리(엔히크)는 장인인 레온의 국왕인 알폰소 6세에게 충성스러웠습니다만 장인이 죽은뒤 복잡한 정치 상황을 이용해서 독립을 원하게 됩니다.  결국 엔히크의 아들인 아폰수 엔히크는 1139년 레온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포르투갈의 첫번째 국왕 아폰수 1세가 되었고 이렇게 포르투갈 왕국은 성립하게 됩니다.


포르투갈의 아폰수 1세, 포르투갈의 첫번째 국왕




그림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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