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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Sep 30. 2023

환상적세대:인크리타 제라송 Ínclita Geração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여덟번째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인크리타 제라송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15세기 아비스 가문의 인판테들을 의미하는데 주로 주앙 1세와 그의 아내인 랭카스터의 필리파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주앙 1세와 필리파는 둘다 매우 교육을 잘 받았었으며 이것은 자녀들의 교육에도 영향을 줍니다. 그렇기에 주앙 1세의 자녀들은 모두 교육을 기본적으로 잘 받았으며 더불어 능력까지 있었기에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이끈는데 기여를 했고 그렇기에 이들은 인크리타 제라송이라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주앙 1세는 랭카스터의 필리파와의 사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아들은 다섯명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인판테 두아르테로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포르투갈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인판테 페드루로 코임브라 공작이 되었으며 후에 조카인 아폰수 5세의 섭정으로 있었습니다. 셋째는 “항해왕자”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인판테 엔히크입니다. 넷째는 인판테 주앙으로 포르투갈 군대 총사령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인판테 페르난두로 역시 아버지가 국왕이 뒤기전 가지고 있던 아비스 기사단의 단장이 됩니다.      


역사가에 따라서는 이 다섯아들 외에도 주앙 1세의 딸로 부르고뉴 공작부인이 된 인판타 이사벨과 주앙 1세의 사생아였지만 장남으로 포르투갈 최고의 상속녀와 결혼했고 포르투갈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첫 번째 브라간사 공작 아폰수를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두아르테를 제외한 주앙 1세의 네 아들들로 추정되는 그림


주앙 1세는 다섯아들들과 함께 주로 행동을 했는데 특히 주앙 1세의 다섯 아들들은 아버지를 따라서 세우타 정복에 모두 참여했었으며 모두 기사작위를 받게 됩니다. 이후 주앙 1세는 아들들에게 영지를 주는데 두아르테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사람이었기에 제외하고, 둘째아들인 페드루는 코임브라 공작 지위를 받았습니다. 셋째아들인 엔히크부터 주앙과 페르난두는 아버지로부터 포르투갈내 종교 기사단의 단장 지위를 받게 됩니다.   이것은 아들들이 독립적인 영주가 되는 것을 의미했었습니다. 하지만 주앙 1세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자신의 대리인을 보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면서 아들들의 권한을 제한했으며 주앙 1세의 아들들은 모든 정치적 군사적 행동을 아버지의 뜻에 따라야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주앙 1세의 아들들이 정치보다는 자신의 관심분야에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은 포르투갈의 문화와 예술 과학등이 발전하는데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주앙 1세


인크리타 제라송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인 주앙 1세가 죽은 1433년 이후였습니다. 형제들은 함께 성장했고 전쟁에도 함께 참전하면서 끈끈한 형제애가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두아르테가 포르투갈의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포르투갈 통치에 대해서 동생들의 조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으며 또한 동생들에게 많은 이익을 부여했기에 이들 형제들이 함께 포르투갈을 통치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정치에 관여하면서 형제들의 관계는 서서히 분열됩니다. 형제들은 각각 서로 정치적 입장이 달랐는데 이렇게 되면서 형제들간의 갈등 요소가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특히 탕헤르를 공격하는 것을 두고 형제들간의 편이 나뉘게 됩니다. 엔히크와 페르난두는 탕헤르를 공격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페드루와 주앙은 내정을 먼저 해야한다고 반대했습니다. 결국 엔히크와 페르난두가 함께 탕헤르를 공격했지만, 이 전투는 포르투갈의 패배로 돌아갔으며 남은 포르투갈 군들이 무사히 돌아오기 위해서 엔히크는 세우타를 양보하기로 조약을 맺었고 이 보증으로 페르난두를 인질로 남겨주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을 때, 페드루와 주앙은 페르난두를 구하기 위해서 세우타를 넘겨줘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엔히크는 세우타를 넘기는 것을 반대하고 다른 방법을 찾자고 주장합니다. 두아르테는 결정을 내리지 못햇고 코르테스를 열어서 결정하기로 합니다. 페드루와 주앙은 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코르테스에 간청하다시피 했지만 코르테스는 세우타를 돌려주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페르난두는 포르투갈로 돌아오지 못하고 인질생활중 사망했습니다.     


두아르테


세우타 문제로 갈등을 빚은 직후, 두아르테는 사망합니다. 그리고 왕위는 그의 다섯 살난 아들인 아폰수가 이어받게 됩니다. 이것은 형제들간의 갈등을 극대화하는 원인이 됩니다. 두아르테는 섭정으로 아내인 아라곤의 레오노르를 선택했습니다. 당연히 외국인인 왕비가 섭정이 되는 것에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품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의 경우 레오노르를 섭정으로 지지하는 인물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국왕의 유언에 따라서 레오노르가 섭정이 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두아르테와 인판테들의 이복형이자 주앙 1세의 사생아 아들이었던  당시 바르셀로스 백작이었던 아폰수였습니다.      


바르셀로스 백작 아폰수,브라간사 공작 ,주앙 1세의 아들


레오노르의 섭정에 불만을 품은 이들은 주로 평민들이었으며 이들은 폭력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를 막으려는 시도를 합니다. 이에 두아르테의 동생이자 당시 포르투갈의 치안을 담당했던 인판테 주앙이 사전에 소요사태를 막았으며 코르테스가 열리게 됩니다. 평민들은 레오노르가 섭정 지위를 물러나고, 국왕의 숙부인 코임브라 공작 페드루가 섭정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아폰수를 비롯한 귀족들은 레오노르가 섭정 지위를 유지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인판테 엔히크가 중재에 나서서 페드루와 레오노르가 공동으로 섭정이 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평민들은 이 제안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결국 레오노르는 섭정지위에서 물러나야했고 카스티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아라곤의 레오노르로 추정되는 초상화


이제 코임브라 공작이었던 페드루가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당연히 이복형이었던 아폰수는 불만을 품었지만 그는 아폰수에게 브라간사 공작 지위를 부여하면서 자신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하도록 회유했습니다. 아폰수는 이 지위를 받고 처음에는 페드루와 협력을 하지만 페드루가 섭정으로 국정을 자신의 뜻대로 운영하고 국왕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게 됩니다.  특히 인판테 페드루가 자신의 딸인 이사벨을 아폰수 5세와 결혼시킨 상황에 대해서 아폰수가 폭발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아폰수는 자신의 손녀를 아폰수 5세와 결혼시키길 원했었지만 페드루가 자신의 딸을 아폰수 5세와 결혼시켰고 안그래도 아폰수는 자신이 늘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황에서 페드루가 왕비자리마저 가로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결국 아폰수는 페드루를 적으로 돌리게 됩니다.


     

코임브라의 이사벨로 추정되는 그림, 이사벨은 페드루의 딸로 아폰수 5세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전에 인판테 페드루와 브라간사 공작 사이에는 페드루의 동생이자 브라간사 공작의 사위였던 인판테 주앙이 있었습니다. 주앙은 포르투갈내 치안을 담당하는 인물로 군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형인 페드루에게 매우 충성스러웠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앙이 살아있었을때는 둘 사이를 중재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442년 주앙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이제 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페드루가 오래도록 섭정으로 있으면서 당연히 그에 대해서 불만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그중에는 국왕이었던 아폰수 5세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미성년이었지만 국왕이었습니다만 숙부가 자신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불만이 컸을 것입니다. 그리고 브라간사 공작은 이런 국왕에게 접근합니다.      

1448년 아폰수 5세가 성인이 되어서 친정을 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페드루는 섭정 지위에서 물러나야했습니다. 아폰수 5세와 브라간사 공작은 이제까지 있었던 페드루와 그의 세력을 몰아냈으며 이것은 당연히 페드루가 국왕에게 항의하는 원인이 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점차 더 악화되었으며 특히 브라간사 공작은 아폰수 5세에게 인판테 페드루가 반역을 일으키려한다고 이야기하게 됩니다. 아폰수 5세는 숙부가 반역을 일으키려한다고 여기고 진압하려했으며 이에 페드루 역시 맞서싸우게 됩니다.  결국 아폰수 5세가 승리를 거두고 페드루는 전쟁중에 사망합니다. 이후 페드루는 복권되긴했지만 브라간사 공작과 그 측근들은 아폰수 5세 시기에 최고의 권력자로 권력을 누렸었습니다.     


아폰수 5세


인크리타 제라송에서 마지막 남은 인물은 항해왕자 엔히크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그는 그저 은거하기로 결정합니다. 특히 그는 형인 페드루를 돕기 위해서 그의 기사들이 형을 위해 싸우는 것을 허락했기에 아폰수 5세와 브라간사 공작이 승리를 거둔 뒤 철저하게 외면받게 됩니다.     


이렇게 인크리타 제라송 시대의 인물들은 몰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잊혀지지는 않았는데 특히 인판테 페드루에 대해서는 후대에도 여전히 기억되는 인물이 됩니다. 특히 페드루의 외손자로 아폰수 5세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된 주앙 2세는 브라간사 공작과 측근들을 경계했으며 이들과 적대적이었다가 몰락한 자신의 외할아버지를 더욱더 기리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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