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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Oct 06. 2023

저기요 근친 결혼은 금지 아니었나요?

왕족들 이야기로 읽는 포르투갈의 역사...아홉번째

주앙 1세로 시작되는 포르투갈의 아비스 가문은 포르투갈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주앙 1세의 아들들은 매우 능력이 있는 인물들로 “인크리타 제라송”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었습니다. 주앙 1세는 생전에 아들들에게 영지와 수입이 보장되는 지위를 부여해주고 아들들의 앞길을 닦아줬습니다. 이를테면 정식 아내인 랭카스터의 필리파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들에게는 국왕의 아들이자 포르투갈의 인판테가 얻을수 있는 지위와 재산을 부여해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을 권리가 없던 서자인 아폰수에게도 앞날을 위해서 당대 포르투갈 최고의 상속녀였던 바르셀로스 백작의 딸과 결혼시켜서 바르셀로스 백작 지위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수 있게 해줬었습니다.      


주앙 1세의 후손들이 묘사되어있다고 추정하는 그림

그리고 이런 상황은 가문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 근친 결혼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아비스 가문에서 첫 번째 근친결혼은 바로 주앙 1세의 생전이었던 1424년 바르셀로스 백작의 딸이었던 이사벨과 주앙 1세의 아들인 인판테 주앙의 결혼이었습니다.이사벨의 아버지는 인판테 주앙의 이복형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결혼은 바르셀로스 백작과 다른 형제들간의 결속을 강화하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중 이사벨은 카스티야의 후안 2세와 결혼해서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으며,다른 딸인 베아트리스는 사촌인 비제우 공작과 결혼했었습니다.      


인판테 주앙으로 추정되는 초상화


그 다음의 근친결혼은 국왕 두아르테의 두 아들들이었던 아폰수 5세와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가 각각 사촌들과 결혼한 것이었습니다. 아폰수 5세와 페르난두의 아버지였던 두아르테는 일찍 사망했고, 어머니인 아라곤의 레오노르는 섭정문제로 다툼을 하다가 결국 친정인 카스티야로 돌아간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형제들은 섭정이었던 숙부 코임브라 공작의 궁정에서 지냈었으며 이것은 형제들이 사촌들과 결혼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먼저 아폰수 5세는 숙부의 궁정에서 지내면서 사촌이었던 코임브라 공작 페드루의 딸이었던 이사벨과 잘 알고 지내게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둘은 어린시절부터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반했으며 결국 결혼하기를 희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445년 둘은 결국 약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둘의 약혼은 정치적으로 매우 긴장된 상황을 유발하는데, 이사벨의 아버지였던 코임브라 공작 페드루와 페드루의 이복형인 브라간사 공작 아폰수(이전의 바르셀로스 백작)의 갈등이 절정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폰수 5세와 이사벨이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신의 손녀중 한명이 왕비가 되길 원했던 브라간사 공작은 코임브라 공작의 딸이 왕비가 되자,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코임브라 공작과 브라간사 공작은 정치적으로 여러차례 갈등을 빚었으며 임시로 봉합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아폰수 5세와 코임브라의 이사벨의 결혼으로 둘의 갈등이 표출되게 된 것이었습니다.

아폰수 5세

1447년 아폰수 5세와 코임브라의 이사벨은 결혼했지만, 아폰수 5세가 성인으로 친정을 시작하면서 그는 장인이자 숙부였던 코임브라 공작을 밀어내서 그의 정적이자 백부였던 브라간사 공작을 자신의 곁에 두게 됩니다. 그리고 브라간사 공작은 코임브라 공작이 반란을 일으키려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아폰수 5세는 브라간사 공작의 의견에 동조해서 코임브라 공작을 반란으로 처형하려했으며 결국 코임브라 공작은 1449년 반역으로 판결받은뒤 국왕에게 대항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이런 혼란한 상황이었지만 아폰수 5세는 아내인 이사벨의 지위를 깍아내리지는 않았으며 아내에 대한 애정 역시 여전했다고 합니다. 이사벨은 1455년 죽기전 남편에게서 아버지에 대한 사면과 잘못된 처형에 대한 회개를 얻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성대한 장례식 이후 사망했습니다. 이사벨의 막내아들인 주앙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주앙 2세가 된 뒤 외할아버지에 대한 기념을 강화했었습니다.      


코임브라의 이사벨로 추정되는 초상화


아폰수 5세의 동생으로 비제우 공작이었던 페르난두는 역시 사촌이었던 베아트리스와 결혼합니다. 페드루의 아내가 되는 베아트리스는 바르셀로스의 이사벨과 인판테 주앙의 딸로 브라간사 공작이 외할아버지였습니다. 베아트리스의 언니인 이사벨은 카스티야의 후안 2세와 결혼해서 카스티야의 왕비가 되었는데, 이 포르투갈의 이사벨의 딸이 바로 가톨릭 공동군주라고 불렸던 카스티야와 레온의 이사벨 1세였습니다. 1442년 베아트리스의 아버지인 인판테 주앙이 사망했지만 섭정이었던 코임브라 공작은 주앙과 가장 가까운 사이였으며 아마도 조카들을 챙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베아트리스가 역시나 사촌들이었던 아폰수 5세나 비제우 공작과 잘 알고 지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며 또한 외할아버지였던 브라간사 공작이 이 외손녀들이 왕비가 될 것을 기대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1447년 베아트리스는 국왕의 동생이었던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와 결혼했었습니다.      


인판타 베아트리스, 비제우 공작부인


아폰수 5세에게는 아들인 주앙 2세 외에는 살아남은 자녀가 없었습니다. 반면 아폰수 5세의 동생인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에게는 여러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시 한번 가문의 결속을 위해서 결혼을 하게 됩니다.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

      

먼저 주앙 2세는 비제우 공작의 딸인 레오노르와 결혼했습니다. 아폰수 5세는 동생인 페르난두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특히 페르난두는 숙부이자 자신을 양자로 삼았던 항해왕자 엔히크처럼 모험을 좋아하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아폰수 5세에게는 살아남은 후계자가 주앙 한명 뿐이었고 이것은 동생인 페르난두가 중요한 왕위계승자라는 것을 의미했었지만 페르난두는 형의 걱정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형이 허락하지 않자 몰래 모험을 떠나려하다가 형에게 잡혀오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아폰수 5세가 동생인 페르난두와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페르난두의 딸인 비제우의 레오노르를 자신의 아들인 주앙과 결혼시키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둘 사이에서는 유일한 아들인 아폰수가 태어났습니다만 1491년 아폰수가 사고로 사망하면서 주앙 2세의 후계자 문제가 발생했으며 포르투갈 왕위는 레오노르의 동생인 마누엘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비제우의 레오노르, 인판타 레오노르, 포르투갈의 왕비


비제우 공작 페르난두의 다른 딸인 이사벨은 역시나 친척관계였던 브라간사 공작 페르난두 2세와 결혼했습니다. 아마도 이 결혼 역시 당시 국왕이었단 아폰수 5세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비록 브라간사 공작 가문이 당대 최고의 권력자 가문이었으며 또한 주앙 1세의 후손이었다고 하더라도 왕가의 인판타와 결혼하기에는 신분이 딸렸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브라간사 공작들을 신임하고 이들에게 높은 권력을 부여했던 아폰수 5세는 브라간사 공작가문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조카였던 이사벨과 브라간사 공작인 페르난두 2세의 결혼을 지지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브라간사 공작은 당대 포르투갈에서 가장 강력하고 부유한 귀족이었으며 그의 영지는 포르투갈 뿐만 아니라 카스티야 아라곤에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브라간사 공작 페르난두 2세


하지만 이사벨의 결혼은 정치적 문제로 인해서 불행해지게 됩니다. 이사벨의 사촌이자 형부였던 주앙 2세는 강력한 왕권강화정책을 추진했고 여기에 가장 불만을 품은 인물이 바로 당대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던 브라간사 공작이었습니다. 주앙 2세는 브라간사 공작 가문 때문에 외할아버지가 처형당했으며 어머니가 그 상황에 힘들어하다가 죽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기에 더욱더 브라간사 공작은 타켓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주앙 2세는 브라간사 공작 페르난두 2세가 카스티야와 내통했다는 혐의로 그를 처형했으며 살아남은 브라간사 공작 가문 사람들은 카스티야로 도망가거나 추방당했었습니다. 이사벨 역시 자식들과 함께 카스티야로 갔는데,사실 브라간사 공작 부인인 이사벨의 사촌이 바로 카스티야의 이사벨 1세였기에 카스티야에서 보호를 받을수 있게 됩니다. 이사벨은 동생인 마누엘이 포르투갈의 국왕이 된 뒤 포르투갈로 돌아왔으며 남편의 사면을 받고 아들인 자이메의 브라간사 공작령과 지위 상속을 인정받게 됩니다.      



주앙 1세의 후손들



200년전만하더라도 포르투갈의 인판타들은 근친결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남편과 헤어져야했었습니다. 하지만 아비스 왕가에서는 가문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서 근친결혼을 지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통은 여기서 끝난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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