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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아라 Jul 12. 2024

영국의 첫 여왕 : 앤 여왕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열번째

1702년 형부의 뒤를 이어서 국왕이 된 앤 여왕은 복잡한 정치 상황에서 여왕이 되었으며 왕위계승문제로 인해서 결국 각자 독립적 국가였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국가인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 만들어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UK가 현재 영국이라고 알려진 UK의 기본이 되는 국가이기도 합니다. 


앤은 1665년 당시 요크 공작이었던 제임스 7세&2세와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앤 하이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앤의 부모는 여러 자녀를 낳았지만 앤과 앤의 언니인 메리만이 성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앤과 메리는 백부인 찰스 2세의 뜻에 따라서 부모와 떨어져서 살았을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미 가톨릭으로 개종했거나 적어도 가톨릭에 뜻을 품고 있었던 부모의 영향을 피해서 신교도로 키워지게 됩니다.


부모와 언니 메리와 함께 있는 앤


앤은 어린시절 눈병을 앓았고 이 때문에 치료를 위해서 프랑스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할머니인 헨리에타 마리아와 함께 살다가 할머니가 죽은뒤에는 고모인 오를레앙 공작부인 헨리에타 앤(앙리에타 안)의 보호아래 있었지만, 고모가 죽은 1670년 잉글랜드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어머니가 사망했고, 1673년에는 아버지가 가톨릭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가톨릭 아내인 모데나의 마리와 결혼하기까지 했습니다. 앤은 비록 개신교로 자랐지만 어렸을때는 아버지는 물론 재혼한 어머니와도 좋은 사이를 유지했습니다. 


아기 시절의 앤


앤의 삶은 그리 혼란스럽지 않았는데. 비록 아버지가 재혼했지만 영유아기를 넘긴 아이는 여전히 앤과 앤의 언니인 메리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앤은 개신교도였고 이 때문에 가톨릭에 반감이 컸던 잉글랜드 귀족 사회에서 앤은 환영받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앤이 성장하면서 앤의 결혼문제도 커지게 됩니다. 1677년 앤의 언니인 메리는 사촌이자 신교도인 오라녜공과 결혼해서 네덜란드로 떠났으며, 이제 앤의 결혼에 대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앤의 혼담 역시 개신교도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그중 한명은 바로 하노버 공작의 아들이었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게오르그 루드비히였습니다. 게오르그의 어머니는 제임스 1세의 외손녀였던 팔츠의 조피로, 조피는 어린시절 네덜란드에서 살았기에 당시 망명중이었던 스튜어트 가문 사람들과도 잘 알고지냈었습니다. 그렇기에 역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상속녀가 될 앤과 자신의 아들과의 혼담을 고려해봤을 듯합니다만, 앤과 게오르그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없던 이야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앤의 아버지는 절대 딸을 하노버 공작의 아들과 결혼시킬 마음이 없었기도 합니다. 또한 앤이 궁정에서 알고 지낸 잉글랜드 귀족과 앤이 결혼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또한 모두가 이를 부인했었습니다. 


하노버의 게오르그 루드비히, 후에 하노버의 선제후, 영국의 국왕 조지 1세


사실 잉글랜드 내에서는 개신교도이자 제임스 1세의 후손이기도 했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나쁜 신랑감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앤과 게오르그 루드비히의 혼담이 성사되지 않자, 앤을 위한 다른 개신교 신랑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선택된 인물은 덴마크의 왕자였던 요르겐이었습니다. 이 혼담 역시 정치적 목적이 강했는데,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오라녜공 빌렘이 앤의 언니인 메리와 결혼했기에 잉글랜드내에서 프랑스에 적대적인 네덜란드와 빌렘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렇기에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동맹은 잉글랜드 내 네덜란드의 영향력을 감소시킬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를 지지했었으며, 프랑스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찰스 2세 역시 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앤의 형부인 오라녜공은 이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혼담은 성사되었으며, 1683년 앤과 요르겐은 결혼식을 올렸고 잉글랜드 공주와 결혼한 요르겐은 잉글랜드에 정착했고 컴벌랜드 공작 지위를 부여받았습니다. 결혼후 영국식으로 조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요르겐은 덴마크의 국왕 프레데릭 3세와 그의 아내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아말리의 아들이었습니다. 재미난 점은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조피 아말리는 이전에 앤과 혼담이 있을뻔했던 하노버의 게오르그 루드비히의 고모로, 요르겐은 게오르그 루드비히와 사촌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비록 정치적 목적으로 잉글랜드의 왕위계승자중 한명과 결혼했지만 야망이 큰 인물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정치에는 관심 없이 그저 평온하게 가정생활을 하는 것을 원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것은 그가 외국인이자 공주의 남편으로 잉글랜드에서 정치적으로 큰소리를 낼수 없는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또한 잉글랜드 내에서 덴마크 역시 자신의 큰 정치적 배경이 될 수 없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듯합니다. 


덴마크의 요르겐, 컴벌랜드 공작 조지, 앤의 남편


앤과 조지는 결혼후 부부로 평온하게 생활했습니다. 둘은 결혼하자마자 아이를 갖기 시작했는데 아마도 후계자를 얻는 것이 큰 의무이자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그렇기에 앤은 결혼생활동안 17번이나 임신했다고 합니다만, 이렇게 수많은 임신에도 성인으로 살아남은 아이는 없었고 결국 이것은 잉글랜드 왕위계승법에 심각하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앤과 조지


앤은 결혼하기 전 사라 제닝스라는 여성을 알게 되었으며 둘은 가장 친한 친구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사라 제닝스는 존 처칠과 결혼했으며 이들은 앤에게 정치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앤의 삶이 복잡해지게 된 것은 아버지 제임스 7세&2세가 즉위한 뒤였습니다. 제임스는 가톨릭교도였고 이것은 신교의 나라인 잉글랜드에서 많은 이들이 반감을 갖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앤 역시 아버지와 계모와 사이가 점차 멀어져갔는데, 이 절정은 바로 계모인 모데나의 마리가 아들을 제임스를 낳은 뒤였습니다. 앤은 계모가 아이를 낳을때쯤 궁정을 떠나서 온천으로 가벼렸습니다. 결국 왕비가 아들을 낳았을 때 중요한 개신교측 증인인 앤 공주가 궁정에 없었고, 앤은 이후 제임스의 출생에 대해서 논란이 일어났을 때 자신은 현장에 없었기에 아무것도 말할수 없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이런 앤의 행동은 사실상 정치적인 것으로 제임스의 탄생이후 잉글랜드 내 개신교의 반발이 겉잡을수 퍼져나가고 있었으며 아마도 앤 역시 이런 정치적 행동에 동참한 일일 것입니다.


아들 제임스(올드 프리텐더)를 안고 있는 모데나의 마리 


결국 앤의 아버지인 제임스 7세 &2세가 왕위에서 쫓겨났고 언니인 메리와 형부인 오라녜공이 잉글랜드의 국왕이 됩니다. 부부사이에는 자녀가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앤이 언니 부부의 뒤를 이은 왕위계승자가 됩니다. 하지만 앤은 이제 언니 부부와의 갈등을 시작합니다. 앤은 친구인 처칠 부부, 특히 사라 처칠의 영향을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언니인 메리는 못마땅해했는데, 결국 이런 상황은 앤과 메리가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당연히 여왕인 언니 메리는 동생인 앤을 꾸짖고 억압했으며 이에 대해서 앤은 언니에 대해서 불만을 이어갑니다. 이런 불화는 메리가 죽을때까지 이어졌고, 앤의 정치적 입지 역시 언니가 죽을때까지 좁았습니다. 하지만 1694년 메리가 죽고, 메리의 남편인 윌리엄 3세&2세는 이제 사촌이자 처제였던 앤과 화해를 합니다. 앤은 다시 왕위계승자로 대접받았지만 윌리엄은 앤을 정치에 관여시키거나 아내처럼 섭정의 임무를 맡기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윌리엄 역시 여전히 앤이 사라 처칠의 영향력아래 있는 것에 대해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듯 합니다. 


메리의 언니와 형부


1690년대 앤이 왕위에 오를 것은 분명해 졌으며,특히 1689년 태어난 앤의 아들인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이 앤의 다른 자녀들과 달리 영유아기를 넘겼기에 왕위계승이 어느정도 안정적이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1700년 글로스터 공작 윙리엄이 사망하면서 이제 잉글랜드내 왕위계승문제가 더 복잡해집니다. 당시 국왕이었던 앤의 형부인 윌리엄 3세&2세는 처제가 죽은뒤 왕위가 처남인 “올드프리텐더” 제임스 에드워드 스튜어트에게 돌아갈 것을 우려했습니다. 그는 당연히 가톨릭이자 프랑스에서 오래도록 망명생활을 했기에 프랑스의 영향력 아래 있던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프랑스와 루이 14세를 주적으로 생각했던 윌리엄의 생각에 맞지 않았고 1701년 가톨릭교도나 가톨릭 교도와 결혼한 인물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통과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법령을 통해서 왕위계승자로 떠오른 사람이 바로 하노버의 선제후비였던 팔츠의 조피와 그녀의 아들이자 앤과 한때 혼담이 진행될뻔했던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였습니다. 


아들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과 함께 있는 앤


1702년 8월 앤의 형부인 윌리엄이 사망했고, 앤은 이제 잉글랜드의 여왕이 됩니다. 그리고 앤의 남편인 조지는 메리 1세나 메리 2세의 선례들처럼 “국왕”이 되지 않았고 여왕의 남편인 Pirnce Consort지위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정치적 야심이 없었긴 하지만,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으며 또한 아내의 정치적 의견에 반대를 하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앤과 조지


앤의 통치기에는 양당정치가 활발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앤은 이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었는데 앤 이후의 잉글랜드를 통치하는 하노버 가문 군주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통치를 했었고 결국 영국내 양당정치가 굳어지게 된 시작점이 앤 통치기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앤의 통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은 바로 친구였던 사라 처칠이었습니다. 앤은 그녀의 말을 많이 따랐지만 앤은 사라 처칠의 꼭두각시는 아니었고 결국 둘 사이는 점차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앤은 시녀였던 아비가일 힐을 총애하기 시작했고, 사라는 점차 권력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리고 둘의 갈등은 사실 잉글랜드내에서 스캔들이 되기도 했습니다. 


사라 처칠, 말버러 공작부인 


앤의 통치기 가장 중요했던 일은 바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를 하나의 연합왕국으로 합병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왕위계승문제와 연결이 되는데 잉글랜드에서는 앤의 오촌이자 제임스 1세의 외손녀인 하노버의 선제후비 팔츠의 조피와 그녀의 후손을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달랐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스튜어트 가문을 지지했었는데, 앤 역시 스튜어트 가문의 후손이라서 받아들일수 있었지만, 앤의 후계자는 당연히 스튜어트 가문의 후계자인 올드 프리텐뎌를 받아들이려했습니다. 그래서 제임스의 지지자라는 의미의 자코바이트들이 스코틀랜드에 주류였으며, 이것은 만약 앤이 죽는다면 스코틀랜드에서는 바로 올드프리텐더를 국왕으로 받아들일지도 모를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와 하나의 연합왕국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법령을 시행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스코틀랜드에서 이에 대해서 찬성하지 않았습니다만, 잉글랜드는 스코틀랜드에 비해서 경제가 매우 컸으며 만약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잉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경제적 제제를 할 것이었고 이것은 스코틀랜드에 큰 타격이 될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결국 스코틀랜드 역시 연합왕국이 되는 것을 승낙했고,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하나의 연합왕국이 되었고, 앤은 이 연합왕국의 첫 번째 여왕이 되었습니다. 


앤 여왕 


앤은 나이가 들수록 왕위계승문제에 대해서 좀 더 동생에 대해서 동정적이 됩니다. 영국 내에서도 사실 나이가 많은 외국인인 하노버의 선제후보다는 차라리 잉글랜드 국왕의 아들인 올드 프리텐더 제임스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코틀랜드 내의 자코바이트들을 생각하면 올드 프리텐더의 계승 역시 나쁘지 않은 방안이었습니다. 그리고 앤 역시 이 문제에 대해서 나름 고민하게 됩니다. 앤은 동생에게 개신교로 개종한다면 왕위계승자로 복귀시킬수 있다는 의견을 보내기도 했지만 올드 프리텐더는 개종을 거부했습니다. 앤은 1714년 8월 사망했으며 왕위는 이전에 추정 왕위계승자였던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에게 돌아갔고, 그는 영국의 조지 1세가 됩니다.


영국의 조지 1세


앤 여왕 시기 비록 정치적 문제 때문이긴 했지만,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하나의 나라로 합병한 연합왕국이 되었으며, 앤은 이 연합왕국의 첫 번째 군주이자 첫 번째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합왕국이야 말로 현재 영국의 바탕이 되는 나라이에 앤은 영국의 첫 번째 여왕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앤 여왕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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