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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 고목나무 Feb 09. 2022

귀한 손님

우리 모두는 '귀한 손님'으로 이세상에 왔다

 1988년 11월 7일, 계절은 이미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그날 밤, 나는 분만실의 복도를 초조하게 오가며 귓등을 세우고 있었다. 34년 전의 일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푸른 잔디 위를 가로지르며 굴렁쇠 굴리는 소년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한낮의 적막과 고요 속에서 한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올림픽 개막식 때의 장면이었다. 그날 그 소년의 모습은 극심하게 이념이 대립하던 냉전 시대에 평화의 상징이 되어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아마 나는 곧 태어날 내 첫 아기도 그처럼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분만실의 문이 열리고 “공주님이네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호사의 품에 안겨 입술에 핏기 약간 머금은 아기와 첫 대면하는 순간을 기억한다. 하늘에서는 별들이 와락 쏟아지고 땅에는 갑자기 꽃이 만발하는 듯한 감정이 밀려와 일순 숨이 막혔다.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고 세상의 어떤 진귀한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보물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아이는 울었지만 나는 웃었다. 아이와 내가 엇갈린 것은 딱 한 번, 그때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가 울면 나도 울었고 녀석이 웃으면 나도 덩달아 웃었다.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왔다.”


 집에 들어오니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아이를 받아 안으며 하신 말씀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때의 만면 가득했던 아버지의 웃음은 당신 생애를 통틀어 가장 크고 순결했던 함박웃음이었다. 아이의 아비인 내가 분만실 앞에서 터뜨린 웃음조차도 남사스러울 만큼의 파안대소였다. 손님은, 남의 집에 방문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아무리 높여 부른들, 설마 이 세상에 갓 태어난 당신의 직계 혈족을 두고 ‘남’ 대하듯 할 요량으로 '손님' 운운하셨을까 싶어 후일 아버지에게 물었다.


 “말마따나 손님은 다 남이다. 그런데 귀한 손님을 어떻게 함부로 대하겠느냐?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자식 키우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딸자식이지 않느냐. 딸은 때가 되면 떠난다. 아들 잘못 키우면 제 집구석만 망하면 되지만 딸 잘못 키우면 남의 집까지 망하게 한다.”


 요즘 세대의 사고로야 비난받아도 할 말 없는 성차별적 언사겠지만 당시의 시속時俗으로는 사대부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이의 체통 담긴 말이었다. 아버지의 뜻은 명확했다. 정성을 다해 자식을 키우라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어질고 덕이 넘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의 이름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러나 정성은 마음을 필요로 하지만 마음만으로 정성을 다 채울 수는 없었다. 자식을 향한 아비의 마음이야 어찌 변할 수 있으랴만 요동치는 세상의 급류에 휘말려버린 내 삶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간직하기에는 너무 혼탁했다.


 “엄마 아빠는 정말 나쁜 사람들이에요.”


 엄마와의 이혼 소식을 전하자 아이가 섧게 흐느끼며 내뱉은 일성이었다. 그때 아이는 중학생이었다. 겉은 멀쩡해도 정신적으로는 불구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어찌 남남이 되어버린 부모뿐이겠는가. 할 수만 있다면, 아이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 자신의 존재를 가둔 교집합의 고리를 사정없이 끊어버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는 부모가 준 상처를 스스로 핥으며 자신의 삶을 꾸려갔다. 하지만 그 불구의 감정은 끈덕지게 아이를 괴롭혔다.


 “아빠, 어떡해야 돼요?”


 장차 시부모 될 분들과의 만남에 앞서 자신의 부모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털어놔야 할지를 묻는 아이의 전화였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딸 가슴에 얹힌 커다란 돌덩이의 모습은 보였다. 또한 그것은 내내 아비의 가슴을 짓눌렀던 돌덩이이기도 했다. 묻기는 했지만 물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똑똑한 아이가 왜 모르겠는가. 아이는 부모가 만들어 놓은 인생의 장벽을 타넘기 위해 또 한 번 자신의 가슴에서 용기를 퍼올려야 했다. 그렇게 아이는 결혼을 하고 독일로 떠났다. 아비인 나는 늘 아이가 그리웠지만 그것은 내 가슴속에서만 머문 그리움이었다.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왔다.”


 이번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내가 한 말이었다. 지난여름이 끝나갈 무렵 딸아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총각에서 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그저 환한 웃음만 나왔는데 아버지에서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는 헛웃음이 나왔다. 외손자의 출생에는 환호를 지르면서도 내가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에는 어이없어하는 기묘한 웃음이었다. 그러나 처음 아이를 안는 순간 내 생애에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계에 접속되는 듯했다. 그때의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다. 굳이 말하자면 외계에서 온 ET와 어린 엘리엇이 집게손가락을 서로 맞대었을 때의 찌릿한 교감 같은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내 입에서도 파안대소가 뿜어졌다. 갓 태어난 내 딸을 안고 뿜어냈던 아버지의 파안대소를 이해하는데 30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나와 달리 딸은 내가 말한 ‘손님’의 의미를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정성을 다해 아이를 키워라.’는 말은 내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내가 정성을 다해 자식을 키우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목구멍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계절은 가을을 거쳐 겨울에 다다랐고 해가 바뀌었다.


 “아빠, 우리 집에 오셔서 하루 주무시고 가시면 좋겠어요.”


 독일에서 돌아와 한국에 정착한 딸아이가 설날을 앞두고 한 말이었다. 겨우 뒤집고 나서 한쪽 팔을 스스로 빼내지 못해 용쓰는 귀여운 아이를 옆에 두고 같이 잤다. 순한 아이는 밤새도록 내 곁에서 잘 잤지만 나는 잘 자는 아이를 쳐다보느라 밤새도록 못 잤다. 손자가 너무 사랑스러워 딸에게 미안했다. 딸을 이만큼 사랑했다는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되어서 사랑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해서인지 모른다고 스스로 변명해봤지만 결국은 변명이었다.


 “아빠, 힘들 때는 어떡해야 돼요?”


 집을 나서기 전 아이가 커피 한 잔을 내며 넌지시 꺼낸 말이다. 둘째딸을 통해, 불편한 고부 관계 때문에 언니가 가끔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내 입에서, ‘왜? 이혼한 부모의 자식이라고 무시하더냐?’가 튀어나올 뻔했다. 그러나 그 물음은 내 마음속에서만 요동친 옹졸한 파도였다. 내 자격지심이 지어낸 저급한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녹록치 않은 처지에도 꾸역꾸역 버티며 세상 살아온 아비에게 무슨 큰 ‘비법’ 같은 게 있는 줄 알고 던진 질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내야 알 법하지만 무턱대고 아이 편만 들 수도, 그렇다고 어설픈 양비론으로 슬그머니 덮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산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나에게로 날아오는 무수히 많은 화살을 막아내는 일과 같다. 심지어는 나 자신이 나에게로 쏘아대는 화살도 있다.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날아오는 그 많은 화살 중에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개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성벽을 튼튼히 하는 것뿐이다.”


 딸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귀는 기울이는 듯했다. 혼자 옹알이를 하고 있는 손자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나는 장인 사위 관계를 떠나 같은 남자로서 김서방이 참 좋다. 또한 이 녀석이 너무 사랑스럽다. 하물며 너야 얼마나 더 좋겠느냐. 김서방은 성실하고 착한 데다 능력까지 있는 남편이다. 또한 이 녀석은 세상의 어떤 진귀한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보물이다. 이들과 함께 있다는 게 감사하고, 그래서 이들을 위해 못할 게 없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지금 너희가 살고 있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 된다. 자신의 영역을 천국으로 만드는 일, 그게 바로 자신의 성벽을 튼튼히 쌓는 일이다. 아무리 강한 화살이 수없이 날아온다 해도 천국을 뚫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너희들의 행복을 가꾸는데 전력을 다해라. 그것이 바로 바깥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는 것이다. 사랑과 희생과 인내는 모든 것을 다 막아준다.”


 말은 번듯했지만 나는 면구스러웠다. 이혼한 아비의 입에서 나온 '사랑'과 '희생'과 '인내'의 의미가 딸아이에게는 왠지 공허한 염불처럼 들릴 것 같아서였다. 머리가 후끈했다. 훈육을 해놓고도 당당하지 못할 때면 나는 늘 이처럼 뒷골이 당긴다. 길을 나섰다. 딸과의 이별은 겉이 덤덤한 반면 속은 어지러웠고, 손자와의 이별은 겉과 속 모두 봄볕에 피어오른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고 삼삼했다. 차가 금강휴게소를 지날 때쯤이었다. 몇 년 후 다섯 살 즈음의 손자 녀석이 지 엄마에게 무심코 던질 수 있는 질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또 내 가슴속에 돌덩이 하나가 자라고 있음을 느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같이 살고 있는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왜 같이 안 살아요?”


 그때가 되면 딸아이의 가슴에도 또 커다란 돌덩이가 얹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같이 딸아이는 또 잘 헤쳐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 딸아이는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갈 것이고 나는 나대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갈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이란, 각자의 가슴에 얹혀 있는 돌덩이를 깨부수면서 밖에서 날아오는 화살까지 막아내며 살아가야 하는 만만찮은 싸움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귀한 손님'으로 이 세상에 왔으니 귀하게 살다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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