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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인 한량 스티브 Oct 12. 2023

찬란한 그 이름, 코르도바

암흑기 중세에 홀로 빛을 발한 왕국

수도인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돈키호테의 마을 카스티야 라 만차를 지나 더 내려가면 스페인 하면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 즉 투우와 플라멩코와 같은 정열적이고 이국적인 정취로 가득한 안달루시아 지방이 나옵니다. 도착도 하기 전부터 플라멩코 리듬에 몸도 마음도 들썩입니다, ¡올레 olé! (참고로, 스페인어의 문장 부호에서 거꾸로 된 느낌표(¡)는 오타가 아닙니다. 맞는 기호입니다.)


안달루시아에서 먼저 만나볼 도시는 이슬람의 영광이 가득한 코르도바입니다. 저에게 타임머신이 있다면 8세기에서 10세기의 스페인, 그중에서도 코르도바로 가 볼 겁니다. 마드리드 보다 더 일찍, 톨레도 보다 더 강력하고 화려한 코르도바 왕국의 전성기가 바로 그때였거든요. 우리로 치면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 정도가 됩니다. 


일단 코르도바 출신의 유명인사부터 만나봐야겠습니다. 로마시대 당시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부터 찾아가 봐야겠어요. 구시가지를 둘러싼 성벽 중 유대인 지구인 알모도바르의 문 앞에서 세네카 동상이 있습니다. 마른 몸에 벗겨진 머리, 여기에 토가 하나만 걸쳤지만 꾹 다문 입, 그리고 옹골차게 말아쥔 문서가 올곧게 살다 떠난 그의 삶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자 의사이며 신학자였던 마이모니데스


세네카의 시선을 뒤로하고 성벽 문을 통과해 유대인 지구로 들어갑니다.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12세기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이름을 날린 마이모니데스의 동상을 마주합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요, 천문학자에 심지어 의사이기까지 했던 그는 천재라는 말로도 부족합니다. 우리에겐 무척 생소한 분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인물이었는가 봅니다. 자기 자식들도 마이모니데스처럼 똑똑하고 잘나기를 바랐는가 봐요. 


당시에는 그렇게나 괄시받았던 유대인 출신이었지만 지금 그의 동상 아래 청동 신발은 반질반질 황금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윤이 날 수가 없어요.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가 봅니다. 저도 모르게 손길이 신발이며 옷자락은 물론 수염에까지 닿습니다.


유대인인 마이모니데스에 이어 무슬림인 아베로에스 (본명: 아불 왈리드 무함마드 이븐 아흐마드 이븐 루시드...) 또한 빠뜨릴 수 없는 분입니다. 이 분 12세기에 역시 철학, 천문학, 의학을 다 섭렵하셨지요. 여기에 법학까지 손에 쥔 분입니다. 신께서 르네상스 때 그만 실수로 피렌체에 모든 능력을 쏟아부었다고 했는데, 그보다 훨씬 앞서 코르도바의 인물도 추가해야 할 거 같습니다. 공부 머리에 있어서는 따라갈 수가 없네요. 


아베로에스는 아랍계 무슬림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에 있어 가장 권위 있는 분이었습니다. 머리가 깨인 사람일수록 자기 것만 최고라고 고집하는 게 아닌 법이지요.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재해석하고 적용하는데 탁월해야 비로소 인정을 받는 법. 


그래서일까요, 아베로에스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그림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무슬림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좌측 하단, 녹색 옷에 흰 터번을 둘러쓴 사람이 바로 아베로에스입니다. 이 분이 아니었음 아리스토텔레스는 지금만큼의 인지도를 지니지 못했을 겁니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출처: 위키피디아)


코르도바는 분명 이슬람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8세기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이래 종교와 민족의 구별 없이 예술과 문화의 진흥을 적극 장려했습니다. 덕분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는 서로 교리에 대한 소모적인 분쟁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소모적인 논쟁보다 서로 간의 평화와 공존을 유지하는 데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 예를 들면 관용과 존중에 대한 일상의 풍속으로 자리 잡아갔지요. 


그래서였을까요. 코르도바 왕국은 당시 여타의 다른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융합과 공존의 문화양식을 꽃피웠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인간 이하로 멸시받던 유대인에게도 종교적 자유를 허용해 주었기에, 유대인에게 코르도바는 지상낙원과 다름없었지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세금만 잘 내면 받아준다는 코르도바의 소문을 듣고 돈자루를 쥔 유대인들이 찾아와 적극 왕국을 돕고 나서니, 물질이 쌓여가는 코르도바에 문화적 번영은 당연지사였을 겁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다음의 숫자가 증명합니다: 

10세기 당시 인구 50만 (타 유럽 도시는 3만여 명), 서민 가호 10만에, 모스크 700, 병원 50, 상점 8만, 무엇보다도 대학교육기관이 17에 도서관이 70이나 되었으니! 코르도바에선 2NE1의 노래가 딱이겠어요 - 내가 제일 잘 나가! 




외부의 약탈과 침입에 대비해 수비형 구조를 가지던 중동 아랍 도시 구조 그대로 코르도바의 구시가 역시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길 투성이입니다. 길 한 번 잘못 들었다가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미로에 갇힌 도둑처럼 헤매기 십상이지요. ‘아니, 대체 길을 왜 이렇게 좁고 불편하고 헷갈리게 해 놓았담?’ 하고 툴툴거리려던 찰나, 뜨거운 한낮에 거리를 누비다 보니, 옆 건물의 그림자 덕에 땡볕을 피해 쉽게 다닐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게다가 만약 적군이 침입해 오기라도 한다면, 구부러진 골목길 덕에 창과 화살을 피해 목숨을 부지하기에 조금이나마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저마다 처한 자연환경에서 삶의 지혜가 나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낭만 가득한 코르도바의 꽃길
꽃길 끝에서 바라본 코르도바 대성당의 종탑


짧지만 예쁜 꽃장식으로 꽉 찬 꽃길. 하얀 벽에 걸린 화분 장식의 길에서 사진을 몇 장 담고 나니, 드디어 사원이었다 성당이 된 사원-대성당 Mezquita Catedral 건물이 눈앞에 드러납니다. 쨍하고 해 뜬 날, 코르도바의 사원-대성당의 멋진 중정인 파티오에 들어서며 이곳 출신인 세네카의 명언을 나지막이 음미해 봅니다.

‘산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배우는 일이다.’ 책으로 떠나보는 이 여행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좀 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코르도바 대성당 내부 중정에서 바라본 종탑


제목 사진: 코르도바 사원-대성당의 내부




말 나온 김에, 2NE1 노래 들어봅니다, 내가 제일 잘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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