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을 이해한다

by 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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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국어 수업이 끝나갈 즈음, 선생님과 나는 어린 시절에 대해 대화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이 훨씬 행복했다고 말했고, 나는 그건 과거에 대한 미화라서 모든 사람이 항상 과거를 그리워하고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그건 아니라고 했다. 당신은 5년 전보다는 지금이 행복하지만, 지금보다는 유년기가 좋았다고 했다. 나에게 그렇지 않냐고 묻기에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은 기억이 안 나니 비교를 할 수 없고, 기억을 할 수 있게 된 철들 때쯤의 기억이 지금보다 행복하진 않다고 답했다. 왜 그렇냐고 묻기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엄했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결정할 때 아버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사실 오늘의 대화가 있기 이전에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늘 어릴 때가 좋았다고 말해도 그건 과거에 대한 기억의 미화 때문인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했고, 내가 왜 어린 시절을 그렇게 좋게 기억하지 않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그 당시 나는 아버지의 태도에 억눌려 있었기에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결국 타인과의 대화가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별 일 없이 지나가는 나날이 길어지다 보면 사람은 세상에 자기 혼자 남아도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자기가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자기 얼굴을 비출 수 있는 물과 거울, 유리 따위가 모두 사라지고 사람조차 없다고 가정하면 자기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내면을 아는 일도 그와 같다. 홀로 생각해서는 자기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다. 낯선 사람과의 조우, 그러니까 세상과의 접촉을 통해서만 비로소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단어는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에 한해서 쓰일 수 있는 것이고 고립된 장소에서 홀로 자란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적으로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다.

아버지의 엄한 태도 때문에 어린 시절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는다. 어린 시절 많은 것을 아버지(그리고 어머니)의 결정에 따랐기 때문에 나는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심하게 사춘기를 겪었다.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하려 했고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많은 충돌이 있었고 꽤나 긴 시간이 지난 후에야 부모님은 내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나는 아주 행복하다.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던 때에 비하면 책임질 것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아프기도 하지만, 온전하게 스스로 만사를 접하고 결정하고 대처해나가는 지금이 진정한 내 삶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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