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라는 이름의 허상

by 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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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우리가 하나의 허상에 단단히 사로잡히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 허상의 이름은 이성이다. 모든 문제의 해결에 있어 이성이라는 단어는 가장 앞서 등장한다. 마치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효시와 같으면서 동시에 전쟁의 끝을 맺는 핵폭탄과도 같다. 모든 문제 해결에는 반드시 이성이 필요하고, 이성적인 답을 내리는 사람이 솔로몬인 양 행동한다.

살이 쪄서 고민이라는 사람에게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적게 먹어야 한다, 운동을 많이 해야 한다, 적게 자주 먹어야 한다, 지중해식 식단을 해야 한다, 유전적이니 어쩔 수 없다는 둥의 이런저런 이성적인 해법을 던져댄다. 살 찐 사람은 살찌지 않는 사람들이 던져대는 이성적인 해답 앞에서 비이성적이고 무식하고 게으르고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 풀죽어 물러난다.

돈이 없어 고민이라는 사람에게 더 노력해야 한다,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어제 네가 산 삼겹살은 반값인 뒷다리살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헬스장에 등록하지 말고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해야 한다, 3km 정도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닐 만하다는 해법을 던져댄다.

마치 이 세상에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듯 이성이란 이름의 폭탄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떨어진다.

이성적인 답은 어디에서 비롯하였는가? 그것은 철저히 이성적이라고 신뢰받는 뇌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뇌 역시 인간의 다른 모든 장기와 마찬가지로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장기다. 쥐의 뇌에 전극을 심어 쾌락을 주면 쥐는 그 쾌락이 진짜인 줄 안다. 그 쾌락을 얻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 행위를 이성적이라고 판단한다. 그 뇌에 전극을 심은 인간은 버튼을 누르는 쥐를 보며 비이성적이고 본능 밖에 따르지 않는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 쥐에게는 누군가 전극을 심었다는 인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뇌는 깨끗할까?

인간은 스스로를 이성적인 존재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이성적 판단이라는 근거는 인간 사회 안에서만 작동한다. 멀리 떨어진 제 3의 눈으로 보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고 하루 세 끼를 먹고 자정에 잠을 자기를 반복하는 동물의 삶이 쾌락 버튼을 누르는 쥐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모든 존재는 자기가 갇힌 틀 안에서만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이 글이 나의 생각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글인지, 아니면 역시 인간 사회의 틀 안에서 스스로는 다르게 생각할 줄 안다는 지적 우월을 드러내기 위한 글인지조차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결국 답은 스스로를 이성적이라고 여기는 오만을 벗어던지는 것뿐이다.

나는 이성적이지 않다, 나는 버튼을 누르는 쥐와 같다. 너 역시 이성적이지 않으며 너 또한 네가 갇힌 덫 안에서 버튼을 누르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제 하에 내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적어도 이런 전제 하에서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그릇된 풍조는 약해질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한 치 앞도 모르는 세상에서 지금 이 순간 자기가 하는 이야기만큼은 이성적이고 옳은 것이라고 믿는 행위야말로 진실로 어리석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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