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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an 04. 2020

동그란 글 말고 뾰족한 글 주세요




"하... 다 좋아 좋은데. 마음 훈훈해지고 다정하고 다 좋거든? 근데 글이, 뭐랄까, 너무, 착해."


작문 스터디만 가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때의 난 글이 착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글이 착하면 왜 안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착해서 착한 글이 나오는 거라면 뭐 어쩔 수 없다. 착한 내가 이해해야지. 다만 시간이 한참 흐르고 난 지금,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글들을 써본 후의 나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됐다. 뭐든 동그랗기만 하면 재미없다는 걸. 다이아몬드를 깎을 때 매끈한 구가 아니라 각진 모형으로 세공하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황홀한 빛줄기들은 각진 모서리 모서리마다 피어난다.  


참, 이 글에서 '착하다'의 반대말은 '나쁘다'가 아니라 '뾰족하다' 임을 밝힌다.



나는 어느 길에서나 부드럽게 구를 수 있는 동그라미 글을 줄곧 써왔다. 이유? 좋게 말하자면 착해서, 안 좋게 말하자면 겁이 많아서다. 누가 내 글을 읽고 상처 받는 게 너무 무서워서 최대한 문체도 내용도 둥글게 둥글게 만든 다음 어느 누구의 마음길에서든 큰 마찰 없이 구르게끔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은 대체로 바른말, 뻔한 말이 돼버렸다. 친구끼리 대화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했을 때 '그랬구나, 너 정말 대단하구나' 하고 늘 칭찬만 해주는 친구라면, 어떤 질문이든 모범답안만을 내놓는 친구라면 좀 따분하지 않나. 정문으로만 다니는 사람은 매력이 없다.


동그라미 말고 피라미드나 별 모양, 아니면 초승달처럼 엣지 있는 모양의 글을 쓰고 싶다. 어느 구석 하나쯤은 뾰족한 데가 있는 그런 거 말이다. 뾰족한 글이 도로 위를 구르면 덜컹댈 것이고, 모서리는 도로의 표면을 자극할 것이다. 잠잠히 쉬던 길은 이로써 불편해질 거다. 그런데 불편한 게, 나쁜 건가?


내게도 영감이란 게 언제나 필요한데, 그것은 동글이가 아니라 뾰족이에 가깝다. 내게 영감은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이다. 자극은 대부분 불편하고 성가시고 신경 쓰이고 시끄럽다. 그런데 그런 이유로써 나로 하여금 새로운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 그 까끌함에 마음이 영 불편했지만 불편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유로 근래엔 뾰족한 글을 내게 주고 있다. 날이 선 생각과 문체의 매력적인 책들을 찾아서 읽으려 한다. 지금은 나보코프의 <절망>을 보고 있는데 이 작가의 건방짐이 아주 마음에 쏙 든다. 독자를 어이 어이 불러가며 불친절하게 말하는데, 읽으면서 내게 이런 글이 필요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최대한 반대 지점의 글들을 많이 만나려 한다. 그런 글들이 동글한 내게 다채롭고 매력 있는 모서리를 준다. 아무튼,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글을 쓰고 싶단 열망이 내 맘속을 둥실둥실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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