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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Feb 07. 2020

좀 더 완벽해지면 글을 쓰겠다는 당신에게









내가 진짜 모진 말 못 하는 성격인데, 큰 맘 먹고 한 마디 하겠다.


당신은 완벽한 글을 쓸 수 없다. 포기하라. ‘좀 더 글을 잘 쓰게 되면 그때 제대로 쓸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 다 안다. 내가 아는데, 근데 그거, 아니다.

너는 얼마나 잘 쓰기에 그런 말을 해대느냐 따지면, 나도 할 말이 있다. 나도요! 완벽한 글을! 쓸 수 없어요...라고. 우리는 그런 면에서 다 똑같으니까, 나 자신에게 한 말을 당신께도 할 수 있는 거겠지요.

얼마 전 친한 언니와 샤브샤브를 먹다가 언니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고기 하나를 집어 끓는 육수에 퐁당 담그는 해맑은 내게 그녀가 대뜸 묻기를, 너는 글이 안 써질 때 어떻게 해? 나는 대뜸, 해맑게, 대답했다. 그럴 때요? 그냥 써요! :)

테러라도 당한 표정으로 그녀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아... 그냥 써? 그렇지? 역시 그 방법밖에 없겠지? 내가 너무 짧게 대답했나 싶어 다른 말을 찾고 있는 사이에 언니는 고민을 털어놨다. 요즘 업무상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완벽하게 잘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정말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점점 더 어렵게 느껴지면서 손조차 못 대고 있다고. 아예 시작을 못하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순간, 공감 열매가 눈앞에서 후두둑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어요, 언니!

샤브샤브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공감의 기쁨을 일단 충분히 나누고, 그러고서 먹자. 언니, 나도 말예요, 정말 내가 욕심나는 분야라서 완벽히 잘 해내고 싶고, 어느 때보다 멋지게 해내고 싶을 때 오히려 아예 건들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던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까요, 그냥 막 준비가 안 되어도 일단 시작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완벽한 게 있다고 해도, 나는 절대 완벽할 수 없다(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니깐). 완벽은, 나라는 거만한 인간의 착각일 뿐이다.

예전에 <태양의 여자>란 드라마를 되게 재밌게 봤더랬다. 거기서 한 조연배우가 떡볶이를 샤브샤브보다 더 맛깔나게 먹으면서 이런 말을 하더라. 입을 오물오물거리면서, 진리의 말씀을. “야, 어떻게 다 준비하고 나서, 다 연습하고 나서 시작하냐? 서툴러도 일단 시작하고 해 나가면서 점점 잘하게 되는 거고 배우면서 실력이 완성되는 거지!” 아... 정말 저런 말은 떡볶이가 아니라 좀 더 성스러운(?) 포도주라도 마시면서 해야 할 말이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만약,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필력을 갖췄다는 확신을 가진 후에 글을 썼다면 지금 내 브런치에 축적된 글은 380개가 아니라 8개에 불과했을 것이다. 감히 내 어필을 하건대, 나는 쓰면서 점점 필력이 향상된 사람이다(물론 어릴 때를 생각하면 타고난 것도 좀 있는 것 같다.. 죄송). 아무튼 쓰면 쓸수록 내가 점점 잘 쓰고 있다는 느낌! 이보다 명확한 느낌이 또 있을까. 그것은 빨갛던 생고기가 잘 익은 샤브샤브로 변하는 것만큼이나 뚜렷하고 명백한 현상이었다.

(기껏) 5년 차 (베스트)드라이버로서 또 한 마디 하겠다(나 오늘 되게 꼰대 같네요). 누구나 처음엔 초보운전이었다. 어떻게든 운잘러가 되어보겠다고 친구의 오래된 경차를 사서 덜덜 떨면서도 도로 위에 나가, 여기서 빵! 저기서 야 인마! 배 터지게 욕먹어가며 다녔더니 운전이 확 늘더라. 글도 똑같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그리고... 인생도 똑같지 않나... 이런 생각을 저는 종종 합니다.

이런 질문도 많이 받았다. 넌 어떻게 책을 두 권이나 냈냐? 그러면 난 대답하길, 너도 지금이라도 당장 책 낼 수 있어, 리얼리! 그러면 그 친구가 또 말하길, 내 글이 더 완벽해지면 그땐 낼 수도 있겠지. 근데, 내 생각엔 어설퍼도 그냥 저지르는 편이 낫다. 왜냐고? 스스로 “이만하면 됐어! 완벽에 거의 가까워졌어!” 말하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까. 인생이란 게 원래 완벽하지 않은 거니까. 어떻게 책을 두 권이나 냈느냔 질문에 나의 대답은 이토록 한결같았다.

“응, 내 글이 아직 별로여도 일단 냈어. 받아줄 출판사를 오랫동안 찾아 헤맸지. 대단한 작가들 보면 대표작뿐 아니라 초기 작품도 남아 있잖아. 작가로서 완숙기에 이르러 쓴 글이 가장 가치 있긴 하지만, 그 이전의 초기작도, 조금은 힘이 빠진 말년의 작품도 그 작가를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봐.”

당연히 나도 내가 나중에 내 책을 보고 후회할 거란 걸 안다. 그게 무섭기도 하다. 와... 이런 걸 글이랍시고 써서! 초판을 구매한 3000명에게 나의 흑역사를 남기다니! 미친 짓을 하였구나... 이런 생각을 왜 안 하겠는가. 그래도 출간하길 잘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비록 부끄럽고, 비록 완벽과 거리가 멀고, 비록 때가 아닌 느낌을 지금도 지울 수 없지만.

‘미완성의 결과물’이 탄생해야지만 ‘완성의 결과물’도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고기를 넣어야 샤브샤브가 완성되고, 떡에 양념을 넣어야 떡볶이가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도, 세상의 놀랍도록 근사한 글들도 처음엔 모두 생고기였고 흰 떡이었다. 요리라고 내놓기엔 부끄럽기 짝이 없는.


“탱고를 추는 걸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요. 실수해서 발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랍니다.”


- 영화 <여인의 향기>, 알 파치노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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