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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화신 Jan 12. 2020

우린 다르게 생겼으니 다른 글을 써야 해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나는 오직 '다르게' 쓰고자, 오직 이것만을 소망하며 글을 쓸 거야. 모레 해가 뜨면 좀 더 다르게. 내일모레는 아주 많이 다르게 써야지. 어떤 글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나름의 가치를 이어간다면 그 글의 존재 이유 아니, 존재의 비결은 하나일 거야. 그래 그것!


내가 손화신일 수 있는 비결은, 이 존재의 비결은 이 세상에 나의 분신이 없다는 데 있다(확신할 순 없다만). 만약 똑같이 생긴 자가 있다면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살피고서 그에게 없는 점을 내 눈 밑에 그려 넣고 그와 다른 색깔로 머리칼을 염색할 것이다. 그와 똑같지 않아야만 내가 이 세상에서 손화신을 할 수 있으니까.


이런 맥락으로써,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은 내 글들은 내게 요구한다. 존재하기 위해 강력히 요구한다. 이봐 늘 한 발 비켜서도록 해. 바르게 쓰지 말고 다르게 쓰라고. 배포 좋게, 좀 삐딱하게 생각해보지 못하겠어? 공공화장실의 비누처럼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공의 공공연한 생각 말고 오직 본인 뇌만을 사용하라고. 그래 그것! 이를 테면 생각의 자급자족.


난 오늘 쓴 것과 다른 글을 내일 쓸 생각이야. 이번은 날카로운 글을, 다음은 상당히 로맨틱한 글을 쓸 거야. 오늘은 시를 썼다가 내일은 에세이를 쓸 거고, 어제는 간결한 문장으로 썼지만 오늘은 만연체의 글을 쓰고 있어.


그러나, 자신의 어제 글과 다른 글을 쓰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어. 그건 다른 사람과 다른 글을 쓰는 일이지. 나와 눈코입의 조화가 다르고 뇌의 주름 패턴까지 다른 사람들. 나 아닌 그런 타인과 비슷한 글을 쓴다는 건 공교롭고도 쓸모없는 일이지. 말하자면 전기세 낭비야. 이 시대의 소중한 전기는 그런 작가의 노트북을 충전하는 데 쓰일 게 아니라, 다른 글을 내어놓고 타인에 자극을 주는 작가의 책상 조명을 밝히는 데 쓰여 마땅하다고.



어떤 작가가 이런 질문에 이런 대답을 했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독서를 해야 한다는데 왜죠?(질문). 문체나 서술기법 등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땡!). 지식이 많아야 글을 잘 쓸 수 있으니까요(땡!). 어휘력을 키우기 위해서죠(땡!). 다르게 쓰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겁니다(딩동댕동).


가령 이런 것이다. 한 작가가 아이스크림을 예찬하는 글을 쓸 계획이다. 이 작가는 자기 글을 쓰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논하는 다른 이들의 글을 찾아 읽는다. 그들과 똑같은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그는 타인이 지나간 지점들을 체크한 후에 지뢰를 피하듯 그 지점들을 요리조리 피해 간다.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가 있는 글을 탄생시키기 위해.


글 하나 쓰겠다고 같은 소재의 모든 책들을 체크하는 건 하지만, 미친 짓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이렇게 하면 된다. 아이스크림 예찬론을 쓰기 전에 그 주제에 관한 어떠한 글도 읽지 않기. 타인의 생각에 빚지지 않고 오직 나만의 사유로써 쓰기 위함이다. 잠깐, 이건 모순 아니냐고? 아까는 아이스크림에 관한 세상 모든 걸 읽으라더니, 이젠 어떠한 관련 책도 읽지 말라니.


맞아요. 이건 세상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을 세상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를 향해 힘껏 내리꽂으라는 말과 다름없습니다. 그치만 괜찮아요. 어차피 당신이 읽은 이 글 자체가 이미 모순인 걸요. 살면서 경험하고, 읽고, 보고, 들었던 모든 것들이 나의 글 속에 어쩔 수 없이 녹아 있으니까요.


그러니 우린 언제나 겸손해야겠습니다. '다른' 글을 쓰겠다는 다짐은 특별한 사람이 되겠단 허영에서 비롯되면 안 됩니다. 내 생각이 비록 이 세상으로부터 빚은 졌지만, 그럼에도 나만의 새로운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나만의 문장들로 적어내려가겠다는 의지가 필요할 거예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다름'이어야 합니다.


모든 방패를 뚫을 수 있는 창? 모든 창을 막을 수 있는 방패? 그것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요. 오직 내 손으로 만든 최선의 창과 최선의 방패로 글쓰기 전선에 뛰어드는 것 말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당신이 쓴 글이 살아남는다면 그 존재의 이유는 하나일 겁니다. 그것이 분신이 없는 글이라는 것. 세상에 단 하나뿐인 '핸드 메이드' 창과 방패라는 것.


차별성이란 '나만의 것'이라는 개별성의 토대 위에서만 피어나는 귀하디귀한 한 송이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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