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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진섭 Oct 24. 2022

‘당신이 옳다’를 통해 깨달은 온전한 ‘나’의 의미

어떠한 감정일지라도 그 감정은 옳다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누군가 내게 살아가며 가진 어려움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그랬다. 나는 내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왜 태어난 건지, 나는 왜 남들과 다르게만 느껴지는지(나 스스로가 비범하다는 의미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의미)에 대해 늘 끊임없이 고민했고, 괴로워했으며 더 나아가 이해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이러한 내적 갈등들은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양육의 문제, 가정폭력의 문제, 경제적 문제 등의 내가 감당하기 힘든 문제들까지 더해지니 나에게 있어 삶이란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는 그 이상 그 이하의 일이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괴로운 순간을 잊고자 학창 시절에는 학업과 꿈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방황을 많이 했었다.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며 마치 그 순간만이라도 내게 주어진 무거운 짐들로부터 벗어나려 내 나름의 도피이자 자신을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지속되고 반복되는 방황으로도 내 내면의 갈등들과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내 주변 환경은 여전히 그대로였고 아니, 더 악화되어만 가는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법이 인정하는 어른의 나이가 되었을 즘, 나는 집안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프셨고, 새아버지는 벌이를 전혀 하질 못하셨고, 남동생은 아직 학생이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동생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고 학교를 보내고 난 뒤엔 엄마의 안부와 건강을 챙기러 다녀오고 집에 오자마자 쌓여있는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한 뒤에야 겨우 한숨 돌리며 식사를 했다. 잠깐의 쉼 뒤에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알바들을 해야 했다. 파트 강사로 학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강의 끝나기가 무섭게 집 근처 편의점으로 가서 자정까지 매장을 돌봤다. 일을 마치고 난 뒤라 피곤할 법도 한데 몸이 녹초가 되었음에도 내 마음은 이상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었기에 잠을 자야 했고 술의 힘을 빌려 겨우 잠이 들곤 했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닥쳐온 가장의 무게는 정말 무거웠음에도 점점 야위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먼저 보였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동생의 모습이 먼저 보였고, 벌이를 못 하는 새아버지의 자책하는 모습을 먼저 보였다. 정작 그 무거운 무게에 짓눌린 나 자신을 보질 못했다. 이런 생활을 3개월쯤 했을 무렵, 어머니가 나의 모습을 놀란 토끼 눈을 하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으셨다. “어디 아픈 거니?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내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체중이 줄기 시작하더니 3개월 만에 40kg 가까이 줄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급성 스트레스에 의한 반응이었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다고 했다. 그 후 6개월쯤 되었을 때, 어머니는 건강을 많이 회복하시어 다시 함께 지낼 수 있었다. 참 다행스럽고 감사한 일이었지만 정작 문제는 내게 있었다. 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몸에 계속 통증이 있었고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 자주 찾아왔다. 응급실을 몇 번씩 실려 가듯 갔지만 갈 때마다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정말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증상이 있었음에도 심전도나, 초음파 등의 어떤 검사에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나는 정말 불편함에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쯤 응급실을 갔을 때, 그 당시 근무하시던 의사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심리적인 문제 같다고 하시며 정신과 진료를 권하셨었다. 그 당시만 해도 사회적 인식도 그렇지만 나 스스로 정신과 진료라는 것에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고 있던 시기였었다. 하지만, 너무 괴로웠기에 수소문해 한 정신과 의원에 진료 예약하고 방문했고 첫 면담 때 원장님께선 1시간 가까이 내가 하는 이야기들을 거르지 않고 다 들어주셨다. 어떠한 충고도 평가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많이 힘들었겠구나.” 그 한마디가 뭐라고 마음에 단단히 묶여있던 매듭 하나가 풀린 듯 눈물이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내 삶의 무게를 알아주는 누군가를 만났다는 감사함, 내 어떠한 모습에도 공감해주는 누군가. 그랬다 나에겐 내 마음을 두드려주고 보듬어 줄 누군가가 절실히도 필요했던 것이다.     




‘당신이 옳다’의 저자인 정혜신 박사는 자신을 심리적 전쟁의 최전방에서 싸우는 치유자라 표현한다. 그녀가 ‘적정 심리학’이라 명시한 심리학은 집밥과도 같은 심리학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조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음식을 할 수 있다는 법이 있다면 우리 일상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허기를 면하려면 조리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의 식당 앞에서 하루 두세 번씩 긴 줄을 서야 할 것이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을 그렇게 해소하며 살아야 한다면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고 살기 어렵다. [당신이 옳다 p.25 –정혜신 저]’ 저자의 표현처럼 집밥은 자기 내면 깊숙이 자리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 같다. 내가 보호받을 수 있고, 안전이 보장되며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적정심리학’의 가장 기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상처와 아픔들이 존재한다. 외상으로 인한 상처는 그나마 낫다. 눈으로 보이고 사진을 찍으면 부러진 뼈를 발견할 수 있으니 그에 대한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관리하면 낫는다. 하지만 마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마음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검사 기계들로도 측정이나 판단을 할 수 없다.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진료 분야가 있지만 세상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듯이 모든 의사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나라 의료수가체계 특성상 상담은 시간별로 비용이 정해져 있고 긴 상담이 무조건 도움이 되는 것 또한 아니며 증상을 완화하거나 잠시 억누르는 약물치료가 주가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 또한 10여 년의 정신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항상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약물의 부작용으로도 꽤 고생했었고 심할 때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때도 있었다. 

정신과에는 DSM-5에 근거하여 사람에게 나타나는 모든 정신 병리적인 문제에 대한 진단기준을 마련되어 있다. 상담을 통해 그 기준에 부합하면 마치 낙인이 찍히듯 우울증, 불면증 등의 환자가 되어 버리고 해당 질병에 맞는 약을 처방 받는다. 약을 복용하면 해당 증상이 완화되는 느낌이 들고 실제로 개선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여기서 놓치게 된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 

약물로 증상을 완화 시키는 것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증요법 그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보조 수단으로서의, 더 악화하지 않는 정도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살아가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울감과 불안감, 불면 등의 감정과 증상을 느낀다. 하지만 그 자체가 병이라 진단하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고 원인이 존재한다. 불편한 감정일지라도 그 감정 자체는 옳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정의한 ‘적정 심리학’을 나의 삶에,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한다. 살면서 겪게 되는 수많은 마음의 문제들을 항상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고, 마음의 문제 자체가 괴로워 고립된 삶을 택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10여 년의 치료 기간 동안 의사가 내게 최종 진단한 병명은 ‘정신병적 증상이 없는 중증의 우울증 에피소드’ (상병코드로 F32.2 표기) 였다. 진단명만 봤을 때는 정말 심각한 질병이 아닐까 싶지만 사실 나는 매일 우울하진 않다. 매일 슬프지도 않고 때론 기쁘고 감사한 날이 더 많다. 사람의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을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온 마음 다해 공감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마음의 문제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고 저자의 표현처럼 집밥 같은 ‘적정 심리학’이 아닐까.     




사람은 사람에게 상처받지만, 공감받기도 한다. 때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삶의 문제들로 인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주어진 삶의 현실을 외면하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러했고 지금도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삶의 모든 마음의 문제들을 사람을 통해 해결할 수 없기에 나는 한동안 내 하루하루를 글로 기록했었다. 마치 일기를 쓰듯이, 그날 있었던 일들을 여과 없이, 두서없이 담아내고 또 담아내었다. 

그렇게 글을 쓰며 객관화하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하자 작지만 내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면 너무나 불편해하던 나였는데 ‘아, 그냥 그럴 수도 있구나.’ 하며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쓰던 일기가 책 한 권 분량이 되었을 즘 깨달았다. 내가 남들과 달라도 괜찮고,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를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용기였다는 것을. 잘난 모습도, 후진 모습도 전부 나이기에 존중받고 인정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내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공감하기 시작하자 삶의 많은 부분이 변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시선을 덜 의식했고, 화려한 차림이 아니어도 괜찮았고, 늘 가지고 다니던 비상약이 없어도 괜찮았다. 칩거하듯 집에만 있지 않았다. 가볍게 산책도 나가고 때론 홀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관심을 두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 부닥칠지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생각이 많은 날은 잠을 설치기도 하지만 괜찮다. 설친 만큼 다음 날 좀 더 일찍 잠들면 되니까. 우울하거나 불안한 감정이 강렬히 찾아올 때는 마치 소나기가 그칠 때까지 비를 잠시 피하듯 홀로 조용한 시간을 보낸다. 굳이 애써 무언가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인정하고 공감해주며 그 시간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 준다. 

유명한 맛집에는 그 가게만의 레시피가 존재한다. 며느리에게도 안 가르쳐 준다는 말처럼 그 레시피가 그 가게의 어떠한 비법이자 시그니쳐인 셈이다. 나의 마음에도 나에게 딱 맞는 맞춤옷 같은 치유 레시피가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보편적인 것이 아닌, 나에게 딱 맞춰진 적당한 레시피. 나만의 심리학. 나만의 마음 돌보기.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바란다.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사회가 정의하는 체계, 법, 도덕들을 준수해야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만큼은 스스로가 존중해주고 공감해주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공감하고 변화하기 시작할 때, 작지만 그 변화의 파장이 퍼져 내 주변 구성원을 비롯한 사회 전체로 변화의 물결이 퍼져 진정한 치유의 기적들이 일어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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