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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팥크림빵 Oct 13. 2024

심리학자는 비로소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심리학자의 좌충우돌 바이올린 도전기 (5)

  올해는 일적으로, 개인적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 나스스로 뿌듯했던 일 하나를 꼽자면,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준비했던 일이에요. 하루, 단 2시간의 공연을 위해서, 7개월간 2주에 한번, 매주 한번, 토요일 아침에 모여 합주를 했습니다. 그러나 단지 공연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충만함이 있었어요.


  작년에 이미 썼듯이, 합주에서 느끼는 재미와 제 연주는 별개여서 도저히 연주가 늘지 않았어요. 합주를 다녀올 때면 '아 이제 정말 개인연습을 해야하는데' 되뇌기만 하며 불편한 마음만 짐처럼 안고 있었어요. 즐겁다고 하는데 왜 연습을 안할까, 푸념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8월 말에 우연히 가슴뛰는 인사이트를 몇가지 얻었어요. 그걸 소개해보자면,


스케일 아르페지오 하루 30분 24개 조성을 한번씩 왔다갔다 하는 연습은 체조선수들의 5km 달리기 기초연습과 같아요. 당장에는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눈에는 안보이더라도 그 기초체력을 향상하는데 너무나 중요하다.

“피아노 잘치는법이 아니라 피아노 잘치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셨다” 김대진 선생님 제자들이면 느낄텐데 어떤 곡을 당연히 잘치기 위해 레슨을 하시지만 그것보다 인간개조라고 할까요. 굉장히 오랜시간을 거쳐서 본인도 모르던 본인의 모습들을 보여주어서 스스로 나아지게끔 고쳐가는 과정이 모든 제자들마다 있었던 거 같아요.

- 피아니스트 박재홍 (Pianist Jaehong Park) | 클톡 인터뷰, 클래식톡 Classictalk, 2024. 8. 25.


  박재홍의 말에는 베이비 수준의 취미 연주자에게도 중요한 말들이 많았어요. 기초적인 테크닉이 없이는 음악도 없다는 건 저에게 너무 먼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음악'이라는 걸 해보고 싶다면 지루할 수 있는 기초연습이 필요하다는 가까운 이야기가 되기도 해요. 또, 그가 만났던 선생님은 피아노 기술이 아니라 피아노 치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려주셨다고요. 심리상담에 빗대보자면, 내담자의 반복되는 행동패턴과 해묵은 감정을 스스로 바라보도록 조력하는 일과도 비슷해보여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지 기술이나 방법이 아니라, 역시 질문이고 경험이구나 싶어요.


당연히 선생님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보는 거예요.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로 가끔 싸우기도 해야하고, 정답을 없다는 걸 알아야해요. 모험하기를 겁내지 않고 색다른 걸 찾으려고 해야해요. 뭔가 배울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목소리를 듣는 거예요. 잘들어보는 연습을 해서 차이를 느껴보면 어디로 가야할지 보여요. 선생님 말만 들으면 안돼요. 물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죠. 하지만 그것만 해서는 안돼요. 혼자 스스로 선생님이 돼서 훈련하는 연습을 하세요. 그게 정말 중요하답니다.                 

- [#마스터클래스]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Christel Lee), 한경arteTV, 2023. 12. 14.


  크리스텔 리의 말은 어떤가요. 지금 개인레슨을 받고 있지 않더라도, 여전히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서 훈련하는 연습이 필요했어요.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어디에 있는가. 아직 저에게는 '음악성'이랄 게 거의 없지만, 테크닉적으로 어려운 부분을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가는 천천히 알아가고 노력해 볼 수 있거든요. 내가 나를 한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정진하는 메타인지가 연습에도 필요해요.


연습을 어떻게 하는지가 가장 궁금하고 알려주고 싶다.                    

마스터클래스를 시작할 때에는 먼저 5분 정도 들으면서 저런 연주를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연습하고 있을까, 그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거든요. 더 잘하고 싶고 연습하는데 안되는 부분에 대해 해결책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항상 너무 테크닉쪽으로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오거든요. 우리가 결국 해야하는 건 음악이니까. 테크닉은 수단으로 목적은 음악으로, 그렇게 보는 거                     

내가 물어볼게 하나 있는데, 우리가 왜 연습을 매일 하니, 뭘 더 잘하고 싶니. 우리가 매일 늘어야 할 게 있잖아요 그치. 오늘 연습해서 여기까지 가고, 00는 뭘 더 잘하고 싶니. 음정이랑 소리를 더 잘 그치. 연습이라는 건 문제를 해결하는 거라고 아인슈타인이 그랬거든.                    

- [#마스터클래스]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Mi-Kyung Lee), 한경arteTV, 2023. 10. 12.


  마지막으로 이미경의 말입니다. 프로 연주자로, 교육자로 오랜시간 일하고 있는 그의 철학이 엿보이죠. '연습'을 어떻게 하고 있을지 상상하고, 확인하고, 교정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상담이나, 제가 받고 있는 상담 슈퍼비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내담자는 어떤 삶의 맥락을 지녔을까, 어떻게 이해해볼 수 있을까, 어떤 어려움이 반복되어서 상담실에 찾아왔는가. 진정한 바이올린 훈련과 인생이라는 훈련을 위해서는, 성찰적으로 떨어져서 바라보고, 탐색하고, 확인하고, 교정하는 일이 필요한가 봅니다.


  그는 아인슈타인을 인용했는데요. 흥미로워서 좀 더 찾아보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에게 1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데 55분의 시간을 쓰고, 해결책을 찾는데 나머지 5분을 쓸 것이다”, “매번 똑같은 행동을 하면서 결과가 다르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바보다.” 연습이 '부족한 것을 보완하거나 개선할 목적으로 반복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행위'라면, 도대체 무엇을 보완하고 개선할 것인가 정의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개선하고 싶은 부분을 떨어져서 관찰하고 정의할 수 있어야겠죠. 그러고 나면, 그 문제를 해결할 '의도를' 품고 행동을 반복해야 할 겁니다. 즉, 연습이란 단지 반복하는 행위가 아니라, 문제 정의에 기반한 해결하려는 의도를 품고 반복하는 행위인 셈이죠.


  자, 여기까지 서두가 길었습니다. 장장 5개월을 '연습을 해야하는데' 되뇌며 미루다가 이런 인사이트가 일어나면서, 드디어 개인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여러 음악가들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어요. 연습을 자주는 못/안 하더라도 한다면 짧게라도 '의도를 가지고' 연습하려 노력했어요. 지금 번호를 달아보니 17개 정도의 포인트들이 있었네요. 예를 들면, 스케일 아르페지오할 때 활이 무너지지 않게 활에 주는 비스듬한 힘을 유지하기, 프레이즈의 끝음을 날리지 않고 폭주하지 않고 다듬기, 슬러로 연결된 스케일링에서 음표마다 활간격을 배정하여 분절적으로 소리를 내서 활을 쓰는 간격이 같도록 하기, 피아노에서 활 쓰는 간격을 짧게 나눠서 분절적으로 그으며 피아노 소리를 유지해보기,오른쪽 어깨에 과하게 들어간 힘을 때때로 알아차리고 힘을 빼고 유연한 손목으로 돌아가기 등.


  의도적인 연습을 시작하니, 더이상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나아진다는 성취와 통제감이 연습을 즐겁게 했어요. 연습이 즐거워지니까 30분, 50분을 연습하더라도, 오늘 공부하고 능숙해지기를 바랐던 부분이 명료해졌어요. 틈틈이 베토벤 5번을 들을 때, 들리는 부분의 악보가 떠오르기 시작했어요. 나무들을 보면서 점차 숲이 그려지고, 음악의 느낌도 조금 더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재미를 붙여가면서 20일 남짓 동안에 10번의 개인연습을 다짐했어요. 쉽지는 않더라고요. 토요일은 합주를 가야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일에 치이고, 너무 피로한 날도 있었거든요. 추석에 짬을 내고,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서 10번의 개인연습을 하면서 정기연주회의 곡들을 모두 한번이상, '의도를' 가지고 연습할 수 있었어요. 합주에서도 더 자신있게 활을 써보고, 손가락이 알아서 움직이기도 했어요. 여전히 알레그로의 32분음표가 연달아 휘몰아치는 구간은 도저히 구현해낼 수 없었지만요.


  9월 중순, 정기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두번째 오케스트라 공연이었고, 이번엔 주변의 친구들도 초대했어요. 내가 언제 또 베토벤 5번을 할 날이 있을까, 부끄러움보다는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작년엔 음악이 시작되곤 긴장되지 않았다고 썼었는데 이번엔 다르더군요. 작년엔 초대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무아지경에 빠질 수 있었나봐요. 그래도 여전히, 그 순간이 지나가면 되감기도 재생도 되지 않는 2시간이 순간순간의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있어요. 거기에는 긴장도 있었지만, 보러와준 이들의 다정한 마음도, 무아지경에 이르는 순간도, 지휘자선생님의 손끝을 보며 저를 조율하던 순간도 있었어요.


  연주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베토벤 5번 운명교향곡을 들으니,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오보에가 멜로디를 변주해서 음악을 더하고 있는 부분도 들리고, 더 아름답게 들리는 구간, 연주에서 스스로 아쉬웠던 구간들이 새롭습니다. 경험에 따라 거듭 새로워지는 음악이란 살아있는 무엇인가 봅니다. 그래서 무한하고 재미있습니다.



전문가와 일반인의 차이는 특정 영역에서의 성과 향상에 필요한 의도적 연습을 장기간 한 것에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전문적인지는 단지 많이 기술을 연마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연습하는지에 관련이 더 높다.

전문가가 되는데 필요한 기술들을 분해하고, 가끔씩 즉각적인 코칭 피드백을 병행하면서도 훈련이나 일상 활동 중에 이러한 기술들을 향상시키는데 집중한다. 다른 의도적 연습의 또다른 중요성은 통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가지고 더 난도 높은 연습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다.          

 최근 한 메타분석에서는 의도된 연습과 성과 간의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가 0.40인데, 이는 다른 예측변수(predictor variable) (예 : 비만, 과음, 흡연, 지능, 약물중독)에 비해 큰 것이다.           


위키백과: 연습 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C%8A%B5

Ericsson et al. (1993).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in the Acquisition of Expert Performance. Psychological Review, 100(3): 363-406.

Mayer. (2008). Learning and Instruction. Upper Saddle River, New Jersey: Pearson Education, Inc.

Miller et al. (2018). “To be or not to be (an expert)? Revisiting the role of deliberate practice and improving performance.”. High Ability Studies, 31(1): 5–15.



[바이올린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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