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급망, 통화, 전략적 자율성의 딜레마
한국은 자립한 나라처럼 보인다.
반도체, 조선, 2차전지, 배터리.
기술력도 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 산업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립이 아니라,
연결 위에 놓여 있는 구성물이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의 경제는 공급망, 통화, 외교, 투자, 모두에 걸쳐
구조를 '직접 설계'하지 않는
'빌려 쓰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빌린 구조가 흔들릴 경우,
한국은 어떤 리스크와 마주하게 될까,
경제는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2024년 한 해 동안
한국은 미국으로의 수출을 크게 늘렸지만,
그 안에는
IRA 보조금 기준 충족을 위한 생산물이 포함돼 있었다.
삼성, 현대차, SK는 모두
미국 내 공장 가동 조건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
이 말은,
미국 정책의 조건 변경이 곧 산업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반도체의 핵심 장비는 네덜란드, 일본 의존,
배터리 원재료는 대부분 중국 또는 남미 공급망 의존.
한국의 산업은
결정적 순간에,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자율 구조가 부족하다.
한국은 달러 기준의 외환안정망에 얹혀 있다.
2025년 5월 기준 외환보유액은 약 4,100억 달러 수준.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현재의 보유액은 감소세이며,
그 구성 대부분은
미국 국채와 달러화 표시 자산이다.
한-미 금리차가 벌어질 경우
단기 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원화는 방어적 평가절하 흐름으로
무역 조건에 영향을 준다.
즉, 한국은 자국 통화의 안정성조차
자국의 결정이 아닌
외부의 움직임에 달려 있는 중이다.
미국은 한국에 “인도-태평양 전략”을 요구하고,
중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하지만,
그 모호성은 종종
행위의 주체가 아니라, 반응의 수동성으로 읽힌다.
외교적 자율성은
군사·에너지·기술·자본 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에 제한된다.
스스로 설계하지 못한 구조에서
‘중간에 있다는 말’은 아무 힘이 되지 않는다.
핵심 소재의 국산화 비율 확대
통화 다변화를 위한 협정·스왑의 구조 강화
기술 독립보다, 기술 내재화와 유통 설계
외교 전략에서의 행위자 중심의 스토리텔링 전환
한국은 구조를 빌려 써왔다.
그 방식은,
그간의 국제정세에서 단기적으론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구조의 기반이 흔들릴 때,
어디에 기댈 수 있을지
물어야 할 시점이다.
분명한 것은
빌린 구조는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신호를
무시하고 있다.
8화. 한국의 리스크, 세계의 구조 — 통화, 기술, 안보가 교차하는 분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