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을 막은 구조와 그 책임
구조는 혼자 무너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 구조를 유지해야만 했던 사람들에 의해 무너진다.
그들은 현실을 조정하지 않았고,
패러다임을 읽지 못했으며,
새로운 길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전환은 항상 너무 늦고,
너무 비싸며,
너무 낯설게 온다.
한국은 반도체에서 세계 1위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초격차"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은 맞았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구조 전환에 대한 집단적 착시를 만들어냈다.
메모리 중심 구조를 파운드리로 확장하지 못했고,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역량을 키우는 데 실패했고,
공급망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여전히 미국과 중국의 압박 속에 놓였다.
결국 "초격차"는 스스로를 복제하는 설계였고,
미래를 위한 구조는 없었다.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쌓아두었다.
위기마다 스왑을 체결했고,
금리 인상으로 투기 자본을 견제했다.
그러나 구조 자체를 바꾸려 하지는 않았다.
원화의 국제적 신뢰는 여전히 낮고,
환율 결정 메커니즘은 외부 금리 정책에 좌우되며,
자본 유출입은 시장 논리보다 심리 흐름에 더 민감하다.
숫자는 충분하지만, 설계는 부재했다.
수많은 정상회담과 성명.
그러나 그 안에 한국이라는 행위자의
구조적 언어는 없었다.
우리는 ‘전략적 모호성’을 택했다지만,
그것은 어떤 의제의 리더십도 되지 못했다.
우리는 ‘기후’, ‘반도체’, ‘공급망’에서 협력을 외쳤지만,
한국이 어떤 구조를 만들고 싶은지는 말하지 않았다.
외교는 이야기다.
주어 없는 문장은
결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그 누구도 구조를 무너뜨리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이라는 말로,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말로’,
전환은 계속 유예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누가 무엇을 막았는지를 명확히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야 다음 구조는
책임 없는 반복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설계자가 부재한 구조는,
가장 보수적인 방식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은 결국
붕괴로 향한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그 실패한 설계자들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놓친 전환의 ‘문장’부터 다시 써야 한다.
11화. 구조를 다시 그리는 사람들 — 새로운 문장을 쓰는 자들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