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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17. 2021

먹지 않는다는 것

어느 날 점심. 지선씨는 식사 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내 옆자리로 다가왔다. 한 손 가득 도시락을 들고 서였다. 식사량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 내 몫까지 싸 온 모양이었다. 전날 통 음식을 들지 않던 걸 심각하게 받아들인 걸지도 몰랐다. 아니나 다를까, 지선씨가 내민 건 손바닥만 한 도시락 용기였다.


"점심같이 먹어요, 제가 넉넉히 싸 왔거든요."


그렇게 말하면서 지선 씨는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늘상 먹던 반찬, 비슷한 음식들이었다. 지선 씨는 식욕이 없다고 매번 자신을 변호해왔지만, 나는 늘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어떻게 저토록 일관된 식사를 할 수 있는지. 나는 빈번히 넌더리를 치면서도, 그녀의 자제력에 내심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들의 전체적인 태를 보곤 그 사람의 깊이나 너비를 가늠해보듯, 지선씨의 행동에서도 어떠한 세계랄지, 생활이랄 지를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다. 하나, 그건 선망하고 또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여타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그 세계는 내가 도저히 짊어질 수 있는 무게가 아닌 것 같았다.


"이거 드세요, 따로 준비했는데 괜찮으실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지선 씨는 국이라도 좀 뜨다 보면 속이 나아질 거라고 계속해서 그릇을 내 쪽으로 옮겨왔다.


"간이 조금 심심할 수도 있어요."


 나는 마지 못해 국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몸에 적당한 온기가 돌았다. 마디마디가 늘어지며 기운을 잃는 것처럼 긴장이 풀렸다.


"제가 어제 책을 봤거든요?"


나는 지선씨가 나를 위해 뭔가 애쓰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선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있어서, 저래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불순물이 없는 사람이었다.


"소설이었는데,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고양이요?"


나는 궁금증이 서린 얼굴로 반응했다. 지선씨가 사뭇 진지한 눈매를 갖춰 말했다.


"거기서 그러는데, 고양이는 신피질이 없어서 과거와 미래를 모른대요. 오직 현재만 있다는 거예요."



 지선씨는 '놀랍지 않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지만, 나는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게 무언가, 싶어 고개만 까딱였다. 그러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고민했다. '현재'만 존재한다는 말이 근사해 보이기도, 또 터무니없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그렇게 겨우 알 수 있는 한에서 얼마간 상상과 오해를 반복했다. 별안간, 뭐가 됐든 나는 결국 내 임계치 내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매번 그런 식으로 불가능에 좌초되온 것이 내 이해일지도 몰랐다.


"그게 뭘까요."


 더 이상 알기를 포기한 사람의 심정으로 한 말이었다. 그러자, 지선씨는 수저를 내려놓곤 식탁 어딘가를 공들여 바라봤다. 먹기를 멈춘 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선씨는 여전히 탁자에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미처 입을 타고 나오지 못한 말이 잠겨 있는 듯한 눈매였다. 나는 미역국을 떠 다시 삼켰다. 별도의 간을 하지 않은 터라 입에 무리가 없었다. 속이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식사를 마치곤 소화도 시킬 겸 잠시 뒤 공터를 걸었다. 그러다 흑염소가 나무 한 그루에 묶여 있는 걸 보곤 덜컥 놀라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전에 부장님이 보양식을 챙겨 먹어야겠다며 한동안 바쁘게 전화를 걸어대는 것 같았는데, 기어코 흑염소를 한 마리를 들여다 놓은 모양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당장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육식을 하는 입장에선 무어라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여름 풀벌레 소리가 여기저기서 숨 가쁘게 번져가고 있던 여름의 일이었다. 그러자 문득 지선 씨가 달리 보였다. 놀라울 정도의 자제력으로 제 식욕을 죽이며 살아온 데에 대한 새삼스러움이었다.


"가끔, 짐승의 눈을 보면요."


함께 있던 지선 씨가 푸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참 서글퍼 보이지 않아요?"


그 말을 듣곤, 나는 한동안 염소를 뚫어져라 들여다봤다.


"가끔 사람 눈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짐승은 더 그런 것 같아요. 진심을 따져볼 요량으로 눈을 마주 보잖아요, 전 그게 얼마간 진실이라고 봐요. 눈은 진정한 속내를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나는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되짚는 말에 몇 가지 단어가 가시처럼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 눈이나 속내, 태도 같은 단어들이었다. 염소는 여전히 우리 쪽에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무구한 눈으로 진귀한 광경을 훔쳐보듯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선이 닿는 그 끝에, 우리가 서 있었다.


"그런데, 지선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먹기 시작한 거예요?"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던, 줄곧 참아왔던 질문이었다. 지선 씨의 말을 듣자니, 이상하게 물어볼 수 있을 것은 자신이 생겼다. 하지만 물어놓고도 조금 무례한 것 같아 금세 머쓱해졌다. 누군가와 달리 놀랍도록 식욕을 줄이며 살아온 것에 대한 새삼스러움이었다.


"뭐가요?"

"채식하시잖아요."


지선씨가 허리를 수그려 손바닥을 염소의 코 앞쪽으로 내밀었다.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뜻으로 건넨 손인듯했다. 염소는 코를 킁킁대다, 이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마른 바람이 흩어지며 나부끼고, 온갖 풀벌레 울음소리가 여름의 한 자락을 거듭 합창했다. 시끄러우면서 동시에 날 선 활력이 감도는 소리였다.


"아, 예. 채식이요?"



 따가운 볕이 피부를 찔렀다. 도저히 사그라들 줄 모르는 더위와 소음 덕에 나는 조금 지쳐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름의 한 가닥을 연주하듯 풀벌레가 끊임없이 반복해 울어댔고, 불볕에 몸에선 땀이 눈물처럼 기운 없이 흘러내려서였다. 여름은 여타 계절들과 달리 시달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한시도 긴장을 늦춰선 안 되는. 그러기에 무얼 더 먹어야만 하는 계절일지도 몰랐다.


"저는 뭐든지 먹을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먹지 않아요."


 대답을 듣곤 어찌나 벙 쪄 있었던지. 겉으론 별 반응을 보이진 않았지만, 그 말은 당시 내겐 조금 진지한 말이었다. 동시에, 그건 내가 지금 포기해버린 무엇과 관련되어 있는 말이기도 했다. 어떤 여지를 죗값처럼 치르려는 사람이. 나와 달리 한 세계와의 충돌을 기꺼이 몸으로 받아내려는 사람이 내 앞에 심문하듯 놓여 있었다. 정작, 지선씨는 말을 한껏 진지하게 내어놓곤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지만, 나는 지선씨에게 무어라 대답할 수 없었다. 제 삶을 이미 형벌처럼 여기는 이에게, 내 결백을 증명할 수는 없었다. 이런 내 기분과 상관없이 여름 오후의 볕은 부추기듯 더욱 맹렬하고 무덥게 내렸다. 몹시 원망스런 더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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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에세이와 소설을 씁니다.

E-mail : sks93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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