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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련 이다겸 Jul 28. 2022

이열치열以熱治熱        

’ 혹서기 마라톤’

     

                                   

  연일 ‘예년에 없는 폭염’이라는 기상대 특보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란 생각으로 ‘태종대 혹서기 마라톤’ 참가 신청을 했다. 이 기회에 태종대 정취情趣를 온몸으로 느껴볼 욕심도 가져 본다.

 태종대는 신라 태종 무열 왕이 활쏘기를 즐겼던 곳이라 해서 태종대라는 지명이 탄생했다. 해식절벽海蝕絶壁이 주는 장엄한 풍경, 울창한 숲과 바다의 어우러짐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명승지다. 짙은 운무가 깔린 새벽 바다와 산을 바라보며 이 순간 화가이고 싶다. 바다와 숲이 우거진 거대한 화폭畵幅에 나도 한 점이 된다. 

  마라톤 회원 중 한 사람이 태종대 모자 상 앞에서 일요일 새벽 5시 ‘국토종단 537km’를 출발한다. 동호인들이 모여 무사 완주와 건강을 기원하고, 2주 후 열릴 ‘혹서기 마라톤’ 대비 훈련을 한다. 동호회 회원 15명은 태종대 공원을 세 바퀴 오르막 내리막길을 달렸다. 평지길이 아니라 오르막을 오를 때는 숨이 차고 다리가 무거웠다. 연습이 부족하다고 몸이 말하고 있다. 남은 시간 박차를 가해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팀들도 연습을 하고 있었다. 바쁜 일정 탓으로 한 달 남짓 운동을 게을리하고 무리해서 달렸더니 달린 후 몸살이 찾아왔다. 몸은 정직해서 며칠 스트레칭을 하지 않아도 몸에 유연성이 떨어짐을 느낀다.     

  혹서기 마라톤 날이다. 아침이 태종대 공원에 안긴다. 뜨거운 지열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경사진 길을 달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달림 이들이 속속 몰려든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마라톤을 사랑하는 사람들, 마라톤에 신들린 사람들일까’ 그렇지 않고서는 이 여름 폭염暴炎에 달림 할 생각을 할까, 나도 컨디션 조절과 에너지 보충을 위해 좋아하지 않는 고기와 찰밥도 해서 먹고 단백질, 수분 섭취도 하면서 2주 동안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연습을 했다.

  오늘 달림 길은 공원을 왕복 순환하는 힘든 코스다. 폭염暴炎 속에서 오르막 내리막길, 곡선, 직선로를 반복으로 달려야 한다. 힘도 들겠지만 울창한 숲과 시원한 해안을 바라보며 힐링할 수 있는 코스다.     

  준비운동을 마쳤다. “3.2.1.”탕 총소리와 동시 출발이다. 달리기 전은 누구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우렁찬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치고 달린다. 바다 향기와 흙 내음, 숲 속 음이온이 어우러진 신선한 공기를 폐 깊숙이 흡입해 본다. 도심에서는 맛볼 수 없는 향긋한 공기다.

  ’ 즐기며 달리자.‘ 목표로 정했다. 오늘은 페이스메이커도 없다. 힘들 때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서 달리는 페이스메이커 풍선을 중심으로 앞으로, 뒤로 함께 달리면서 힘을 얻는다.

  롤 모델을 정했다. 첫 랩을 돌고 반환점에서 내 실력과 비슷해 보이는 달림 이를 찾았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다. 달리면서 지켜보니 일정한 속도로 오르막길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내리막길도 흔들림이 없는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오르막길이면 반대편 달림이 들은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린다. 서로 힘을 주는 응원 주먹을 불끈 쥐어 힘, 파이팅도 외쳐 준다. 중간중간 거치대에 마련된 물로 입을 적시고, 떡과 바나나 등을 한 조각 머금고 달린다. 탁 트인 바다가 주는 시원함과 응원에 힘입어 짙푸른 태종대 수채화를 음미하며 마음껏 즐겼다. 

  오르락내리락 반복이다. 오르막길은 걷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고 가벼운 뛰기를 한다. 내리막길은 혹시 넘어질세라 한 발, 한 발에 신경 쓰며 달린다. 속도를 생각하면 여유가 없어진다.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한, 두 발자국 뒤에서 달린다. 오르막 오를 때는 끈이라도 있으면 허리를 묶어서 달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페이스 조절하며 주변 풍광도 즐기며 달린다.     

  팔 없는 달림 이를 만났다. “힘내세요.” 하니 ‘네’하며 웃음으로 화답한다.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니 에티오피아의 마라토너 ‘아베베 비킬라’가 생각난다. ‘맨발 영웅은 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마라톤 2연패를 달성한 선수다. 그 이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렇지만 1970년 노르웨이에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에 출전하여 장애를 딛고 금메달을 획득해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아베베는 “나는 남과 경쟁해서 이긴다는 것보다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는 것을 언제나 우선으로 생각한다. 고통과 괴로움 에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달렸을 때 그것이 승리로 연결되었다.” 고 했다. 정직한 결과를 안겨 주는 마라톤이다. 태종대 공원 둘레길 한 바퀴가 약 3.5km, 왕복 두 바퀴 14km를 완주했다. 팔이 없는 마라토너는 계속 레이스 중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상처만 보고 마음의 상처와 흉터는 보지 못한다. 고통과 고난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운 무늬다. 인내와 마음을 다스리는 마라톤 ’ 힘내라 ‘고 응원해 본다. 

  하늘을 보며 바다와 숲을 친구 삼아 달렸다. 마지막 바퀴에서 내가 정했던 롤 모델한테 “오늘 롤 모델로 정해서 열심히 따라 달랐다”라고 인사하니 “다음 대회에서 또 만나자.” 고 하며 좋아한다. 오늘 롤 모델은 마라톤 경력 6년 차 회사 팀 동호회에서 왔다고 했다.    

  마라톤은 심신 수양 스포츠다. 달리면서 가끔씩 이렇게 힘든 달림을 왜 할까, 하는 생각도 한다. 도전과 인내, 온전히 혼자 달려야 하는 고독한 자신과 싸움이 힘들다. 나 자신과 대화를 할 수 있어 좋다. 짧은 시간에 온 몸을 흠뻑 땀으로 채울 수 있음도 매력적이다. 오늘도 해내었다는 성취감에 몸과 마음이 상큼하다. 

  완주 후 기록을 보니 혹서기 달림이었지만 평소 기록과 차이가 없다. 

’ 혹서기 마라톤‘ 신청한다고 했을 때 남편은 “정신이 있느냐, 아무리 달리는 걸 좋아하지만 이 폭염에 쓰러지겠다.” 고 만류했다. 대회 당일은 잘 달리고 오라고 응원도 하고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라고 당부를 했다. 마라톤 완주 증과 메달을 보더니 해 낼 줄 알았다고 하면서 환하게 웃는다. 자신이 정한 목표를 이루었을 때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무언가에 심취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정旅程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나만의 레이스를 즐기며 시원한 가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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