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실천을 넘어 사소한 일상이 될 때 전환은 이루어진다
“아빠 우편물 왔어.”
“드디어 왔네!”
“뭔데?”
“아빠도 잘 몰라. 한번 열어보자.”
얼마 전 ‘더 나은 행동’이라는 특별한 우편물을 받았다. 아이와 함께 상자를 열어보니 “기후위기와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당신에게”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편지와 발포세라믹으로 만든 촛대 그리고 천연밀랍으로 만든 앙증맞은 ‘3600초’가 들어있다. 한 시간 동안 집 안의 모든 전등을 끄고 대신 초를 켜 놓는 실천을 위한 행동도구가 배달된 것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 가족과 함께 한 시간 동안 집안의 모든 전등을 껐다. 하지만 3600초는 켜지 않았다. 촛불이 없어도 주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들로 인해 촛불 없이 견딜 만했다. 아니, 견딘다기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인공적인 빛 속에 노출되어 있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찾아오니 눈은 편안하고 귀는 밝아졌다. 가족들과 함께 오붓한 대화가 이어졌다.
‘어스아워(Earth Hour)’ 행사가 2022년 3월 26일 오후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전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진행되었다. 어스아워(Earth Hour)는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제안한 글로벌 에너지 절약 캠페인으로 1년에 1시간 동안만이라도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전 세계가 함께 생각해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스아워에 참여한 날 한 시간 더 늦게 불을 끈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정기적으로 채식급식을 실시하는 학교가 조금씩 늘고 있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다른 날 더 많은 육류를 먹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 ‘어스아워’는 단순히 불을 끄는 시간이 아니다.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것이 어스아워 캠페인의 존재 이유다.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기준 세계 9위로 약 6.1억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으며 그중에서 절반 가량이 석탄화력발전소 등 석탄을 이용하는 사업장에서 발생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12개 부지에 총 60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운영 중이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량의 36%를 석탄화력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2020년 기준). 이처럼 화석연료 사용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기후위기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지만 "석탄은 온실가스의 주범이다"라고 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함께 에너지 자체를 적게 소비하는 삶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기 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담배 연기가 잘못이지 사람이 잘못이냐”라고 말하거나 “내가 2050년에는 꼭 금연할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는 인간과 인간이 만든 체제에 의해 초래되었다는 인식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의 실천이 병행되어야 한다.
전환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기는 쉽다. 그러나 나 역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체제(System)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기는 어렵다. 전환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백 가지의 불가능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러나 막상 전환이 이루어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의료보험제도, 토요휴무제도, 무상급식제도가 모두 그랬다.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를 듣는다. 너와 나의 ‘그때’가 보편적인 노래, 보편적인 날들,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애절한 노래다.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으며 잠시 다른 생각을 해본다. 생명의 존엄이 보편적인 노래가 되기를, 지구의 날이 보편적인 날이 되기를, 그리고 어스 아워가 보편적인 일이 되기를. 그래서 전환이 특별한 실천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되기를.
위 글은 단대신문 1488호(2022년 3월 29일 발행)에 개재된 글입니다.
http://dknews.dankoo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