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비밀을 털어 놓았다.
"나 사실 외동이 아니야."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사실, 나도 형제가 있어. 형이랑 누나."
친구는 예고 없이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니가 알고 있는 우리 엄마, 아빠 있지? 사실 친부모님이 아니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부모님이 아니면 누군데?"
"날 입양했어. 엄마 아빠가."
여름 방학을 맞아 잠시 동두천 본가에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 한 학기를 마치고 군입대 때문에 휴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처음 뵈었던 부모님은 그 친구를 우리 아들, 우리 아들 부르면서 되게 많이 예뻐했다.
그리고 아들의 친구가 놀러 왔다고 내게 푸짐한 음식을 대접해 주었고 나를 잘 챙겨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 친구가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부모님 두 분이 다 키가 작은 편이었다.
생김새는 엄마보다는 아버지 쪽을 닮아 있었다.
당연히 그분들이 부모님이 아닐 거라고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
"고아라고.... 니가?"
"고아는 아니고,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도저히 날 키울 형편이 안되어 자식이 없었던 큰 집으로 나를 보냈대."
"큰 집이면, 큰아버지?"
친구는 큰아버지댁에 양자로 들어간 것이었다. 호적상에도 큰아버지 아들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럼 형과 누나는 친부모님과 같이 사는 거고?"
"응 그렇지."
"친부모님 하고 형제와 왕래는 하는 거야?"
"아니."
"왜? 그래도 부모님인데 자주 찾아뵙지 좀."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얼굴 보는 게 좀 어색해."
그날 친구 앞에서 친구가 너무 안쓰러운 나머지 그만 난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것은 나와 알고 지낸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난 건 하숙집에서 하숙생으로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한살 위였지만, 그 친구는 첫인사자리에서 '한 살 차이인데 그냥 편하게 말 놓고 지내자'라는 제안에 그날부터 말 놓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다가 4개월 후 내가 군 입대를 위해 휴학을 하면서 그 친구와 헤어졌다.
그 친구는 시력이 좋지 않아 군면제를 받았다.
일명'신의 아들'이었기에 내가 군복무 하는 동안에 학교를 졸업했다.
그래서 다시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전화 연락을 해보니 뜻밖에도 그 친구는 졸업을 하고서 계속 그지역에 살고 있었다.
곧 나도 학교를 복하해야하니 주거비용을 아낄 겸 해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3년 만에 그 친구와 다시 만나 함께 살게 되었다.
그때 함께 살면서 좀 더 가까운 친구사이가 된 것이다.
분명 한 살 형이었지만 형 같지 않은 그냥 편한 친구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나와 그 친구는 서로 오랜 시간을 두고 지켜봐 왔다.
그리고 서로 간의 두터운 신뢰가 쌓였을 어느 시점에선가 각자 깊숙한 곳에 꽁꽁 감춰 두었던 서로 간의 가족사 중 꺼내기 힘든 비밀을 꺼내 보여준 사이기도 하다.
현재 지금까지도 그 친구와 꾸준히 연락하고 지내고 있다.
"정말 속을 알 수 없는 놈이야"
좀처럼 속에 있는 얘기를 잘하지 않는 나에게 몇 년을 알고 지내던 친구가 던진 말이다.
난 누군가와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는 말수가 없는 편이다.
말수가 적다 보니 당연하게도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편이다.
어느 정도 안면을 튼 사이라 해도 정말 가까워지기 전 까지는 웬만해서는 개인사를 쉽게 털어놓지 않는다.
상대방이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먼저 얘기하지 않으며, 나 역시 물어보지 않는다.
설사 물어본다 한들 적당한 선에서 멈추고 깊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앞서 내 속을 알 수 없다던 친구를 포함해 내 개인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정도로 난 포커페이스 유형의 사람이다.
반면, 첫 만남 자리에서 개인사를 다 털어놓는 사람도 있다.
그런 유형은 게임으로 예를 든다면, 상대방에게 자기 패를 다 보여주고 게임하는 사람과 같다.
그 게임 결과는 보나 마나 백전백패, 백전백승이 되고 만다.
물론 상대로부터 '진솔하고 솔직한 사람이다'라는 평을 들을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쉬운 사람이다'라는 평을 들을 수도 있다.
운이 나쁘면 사기꾼의 타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개인사에 대해 적정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개인사를 풀어놓되 반드시 상대방에게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카드 하나쯤은 남겨두어야 한다.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회심의 카드정도는 들고 있어야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모든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있다.
이야기의 절정(전)에는 반드시 주인공을 흔드는 강력한 비밀이 배치되어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그런 비밀 하나쯤은 깊이 감춰둔 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그 비밀을 털어놓을 절정의 시점은 서로 간의 신뢰가 두텁게 쌓였을 때(절정-전)이다.
그 절정의 시점을 모르고 아무에게나 비밀을 발설했다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 구설수에 휘말릴 수 있다.
우리는 각자 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자 작가인 셈이다.
'기', '승'을 무시하고 초장부터 절정을 배치하는 실수를 범하는 작가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