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가 세지면 그 모임은 없앤다
처음 오늘공동체에 왔을 때는 우리동네사람들- 우동사의 폐쇄성과 친한 사람끼리의 나의 “우리”를 지켜야 해! 모드에 상처받아서 그런지 오늘공동체의 개방성이 유동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처음 온 사람을 초대하고 같이 어디 가자 그러고 여행도 가자 그러고 해서 오늘공동체 사람들은 다들 E성향이 강한가 봐…라고 생각했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지 않나. 처음 본 사람끼리 둘이 친구 해~ 한다던지 너는 어떻게 왔니? 이런 깊숙한 질문을 한다던지.
1년이 지나면서 느낀 것은 이것 역시 구조를 만든 것이지 사람들의 성향이 드러난 것이 아니었다. 축제도 많아서 나는 I성향이 강한 사람이 많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어떻게?
오늘공동체는 “우리”가 어떤 단위든 너무 친하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기에 위화감이 들거나 눈치가 보인다 싶으면 눈치 보는 사람에게 에이 별거 아닌데 왜 그래? 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 깊이 있는 관계로 뭉친 사이가 그 점도를 떨어트릴 것을 얘기한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 여지없이 눈치 보게 만드는 것, 기운을 살피게 만드는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공동체릉 처음 시작한 그룹이 있어 그 원조 그룹의 끈끈함이 심하다면 새로 온 사람은 배제나 소외감을 느낄 것이고 그 조그마한 마음 하나가 깊은 균열을 만든다고 굉장히 경계를 한다.
소외감, 배제는 오늘공동체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보는 테마다. 그것을 소심하게 또는 내가 괜히,라고 보지 않고 공동체의 유지를 위협하는 요소로 중대하게 파악한다.
내가 a와 귓속말하며 웃는다면 b가 얼마나 기분 나쁘겠냐며 오늘공동체의 근간인 내가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었나? 내가 타인과 함께 가고픈 사람으로 살고 있나를 점검하게 한다.
그래서 오늘공동체는 두 명 이상의 밥 먹기나 산책이나 모임은 단톡방에 오픈하도록 되어 있고 나처럼 처음 온 사람이 가도 되나, 껴도 되나 뻘쭘한데.. 를 안 느끼도록 배려하는 것도 권장한다. 모르는 과거 얘기를 한다면 그게 어떤 얘기인지 풀어 설명하고 고립감을 느끼지 않게 한다.
많은 공동체 아니 작은 소모임만 가도 끼리끼리나 원조그룹이나 친목이 생기는 것을 안다. 친목질로 많은 곳들의 흥망성쇠가 판가름 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것을 어떻게 방지하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모임을 열고 또는 일상을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진 않았었다.
이런 부분을 고민하고 깨져가고(공동체 학교 어느 기수다 너무 끈끈해서 기수 모임이 없어졌다고 했다) 경험하면서 오늘공동체 사람들은 모임이나 여행에 오는 사람들을 쓱 가볍게 받는 자세가 되어있다.
내가 처음 오늘공동체에 왔을 때 느꼈던 ‘여긴 다들 외향형인가 보네’가 노력이고 타인과 함께 시간을 나누려는 마음인 것을 알고 나니 처음에 뻘쭘했을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녀준 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오늘공동체에 한 걸음 더 스며들 수 있었다. 편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