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말고도 나의 울타리는 진짜 가능할까
나보다 조금 더 나이 많으신 여성 분들과 대화하다 보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결혼을 했다. 집에서 나오고 싶었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다른 걸 알았으면 결혼 안 했을 거야 라는 얘기도.
나는 45세이지만 결혼을 안 했다. 일단 32살부터 다양한 공동체 경험을 하면서 노느라 바빴고, 셰어하우스에 사는데 부부 단위보다 친구들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결혼은 옵션이지 간절하지 않았다.
내가 십 년을 함께 했던 공동체가 가족주의에 갑자기 꽂히면서 더 잘못되어 이상한 조선시대 스타일로 변해버렸을 때도 나는 오염된 우리가 있었을 뿐 공동체 그 자체에 대한 믿음은 금방 회복했더랬다.
지금 오늘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면서 재밌고 힘든 것은 환대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개개인으로서 서로 관계해야 한다는 자각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클리어하게.
가족도, 그 끈끈하다는 엄마 자식으로 묶이거나 부부로 묶지 않고 해체하려고 노력한다.
사회적 관계 특히, 소셜 다이닝에서 부부나 연인으로 테이블에 앉기 쉬운데 이곳은 자기 집에서 친밀하게 지내더라도 타인과 함께 하는 순간엔 오롯이 홀로 관계하기를 말한다. 부부는 오히려 떨어져 앉는다.
만약 내가 a를 만나서 a의 아내 얘기를 주로 한다면 a는 나와의 관계를 만들어 갈 생각이 없나? 내게 관심을 가져달라 서운하다고 하는 a의 마음 나눔을 오히려 듣게 된다.
처음 1년은 이게 좀 신기했고 특히나 남미새 성향이 있는 나는 공동체 안에서 새롭게 시작한 연애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자꾸 그와 함께 모임이나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해서 문제가 되었다. 나, 김윤희 개인으로 좀 더 깊이 있게 사람들과 관계 맺고 우정을 쌓아가길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 나눔을 들을 때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이 그렇게 안돼서 당황한 적이 정말 많았다. (연애가 다 그렇지! 남들도 이러는데 등등 방어적으로 기존 연애 스타일을 답습하고 그래야 사랑에 빠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우정, 환대, 가족이 아닌 관계가 정말 가족 이상으로 친밀해지려면 얼마나 많은 습관과 버릇이 해체되어야 하는 것인지 실전 경험은 때로는 아찔하고 또 생소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 맺기가 주는 기쁨을 점점 더 깊이 있게 맛보고 싶다. 아직도 부모가 경제적 실패를 겪으면 동반자살(살해다)로 맺음 하는 한국의 가족관계와 가족이 거의 유일한 사회 안전망으로 기능하는 구조를 생각하면 더욱더 관계를 확장하고 타인이, 이 관계망이 진정 나의 복지가 될 때까지 이러한 실험을 계속하고 싶다.
주거 공동체는 비대면보다 얼굴 보고 살 비비고 밥 먹는 빈도수가 높기에 갈등이 생길 여지도 많고 우정이 깊어지는 것도 가능하다.
이 우정의 공동체에서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를 돌보는 노년이 기대가 된다. 지속 가능한 미래. 타인이 지옥이 아니라 우정으로 다가오는 공동체.
함께 하는 사람이 더 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