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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May 14. 2024

최후통첩

이렇게는 더 이상 못 해 먹겠다

12월 8일.
법인장님에게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인수인계 따위 없이 정치싸움의 한복판에서 시작된 대혼란의 업무도, 나 홀로 나머지 공부와 야특근으로 어느 정도 안정되었고,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던 블랙프라이데이도 성공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완벽하게는 아니었지만 관련된 여러 시스템들을 어느정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법인뿐 아니라 한국에 있는 유관부서들과 협력업체들과도 이제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이들 등교하는 것도 못 보고 최적의 환승루트를 타기 위해 7시 25분에 떠나는 지하철을 타러 뛰어갔고 환승을 위해 또 한 번 뛰어간 뒤, 버스를 타서 8시 10분쯤 도착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할 일은 많은데 시스템은 여러 개고 다들 늘려서,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시스템 로그인을 하고 필요한 모든 데이터들을 다운로드하도록 걸어놨습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모든 데이터를 열어서 어제까지의 매출과 트래픽을 분석해서 내부에 공유하고 필요한 것을 요청했습니다. 메일을 보며 온갖 부서의 요청사항에 피드백을 하다가 각종 미팅에 불려 갔다 오면 어느새 저녁이었지만, 할 일은 아직도 쌓여있었습니다. 빨리 하고 퇴근하고 싶어서 점심을 스킵하는 일이 늘어났고 먹더라도 회사식당에서 최대한 빠르게 먹고 일어나는 일이 잦았습니다. 방과 후 일정이 있는 둘째를 픽업하려고 무리해서 나가는 수요일 목요일을 빼면 나머지는 저녁도 못 먹은 채 야근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어느 순간, 애들은 아침에 남편이 데리고 출근해서 대부분 남편이 데리고 집으로 왔습니다. 남편이 집에 와서 못다 한 업무와 미팅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tv를 보고 있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멀어서, 8시 출근 5시 퇴근을 한데도 집에 오면 6시인데, 자꾸 야근을 하니 애들이 잘 시간이 다 되어 도착하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사실 누구도 저한테
야근하라고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뺏기는 미팅시간이 많았고, 요청사항은 저의 케파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온방향에서 쏟아졌고, 저는 잘 해내고 싶었죠. 그래서 조금 더 조금더 하려다 보니 자꾸 늦어졌죠. 남편도 시간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면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의 한국어가 어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말을 할 때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지 '엄.. 엄..'이라고 하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저의 컨디션도 점점 나빠졌습니다. 물리적으로 제가 해낼 수 있는 것 이상의 요구사항이 계속 오기 시작했고 저에게는 아직 숙련되지 않은 0.5명의 신입사원밖에 없었습니다. 일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유관 부서와의 갈등으로 정신적으로도 쉽지 않았습니다. 당면한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끝없이 고민하다 잠이 들고 아침에는 좀비처럼 일어나서 회사를 갔습니다.


워라벨이 좋다던 북유럽에서
오히려 한국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법인의 대부분의 직원들보다는 훨씬 많이 일했고, 한국보다 훨씬 힘들게 일한다는 주재원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준주재원급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도 차도 자녀 교육비 지원도 받는 주재원에 비해서 저의 월급은 소박했습니다. 스웨덴 평균임금 수준이 대기업이라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들어서 현지 수준이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 회사의 제 직급에서는 제일 적다는 걸 전해 들었습니다.

 법인의 대부분의 직원들보다는 훨씬 많이 일했고, 한국보다 훨씬 힘들게 일한다주재원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준주재원급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도 차도 자녀 교육비 지원도 받는 주재원에 비해서 저의 월급은 소박했습니다. 스웨덴 평균임금 수준이 대기업이라도 그렇게 높지 않다고 들어서 현지 수준이겠거니 하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 회사의 제 직급에서는 제일 적다는 걸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마다 법인장님이 주최해서 하는 매니저급 전체회의가 점점 괴로워졌습니다. 처음 입사할 때는 법인장님이 합리적이며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고 가는 분이라고 믿어서 잘 맞춰가며 배우면 되겠다 싶었는데, 점점 아니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방법을 논의하고 방향성을 주기보단, 무슨 일이 있어도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챌린지만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챌린지는 구성원을 움직이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또한, 저희한테는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면 팀원들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며, 짧고 명확한 의사소통을 강조했지만, 막상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내용을 저희에게 얘기할 때는 길고 장황했습니다. 다들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마냥 언제 끝나냐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모른 채  "집중하라" "잘 따라오라"는 말을 덧붙이며 끝없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그렇게 길게 이야기한 결론은 '변명하지 말고 열심히 해라' 또는 '미리미리 주차별 계획 열심히 세워서 준비하지만 생각한 데로 안 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라' 였기에 반감이 커져갔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되도록 만들어주는 게 리더의 역할인 거 같은데 "있는 데서 어떻게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펑크 내지 말고 하라"라고 푸시만 하는 게 진짜 맞나 싶기도 하고요.


이게 맞나? 이러려고 한국에서 회사 그만두고 여기까지 왔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담당하던 온라인 쇼핑몰은 결제를 결제대행업체가 해줬는데요. 쇼핑몰에서 고객이 물건 구매 버튼을 누르면 결제 대행업체의 결제창을 통해 금액이 청구됩니다. 그렇게 받은 돈을 결제 대행업체가 나중에 그 금액을 수수료를 뗀 뒤 일괄로 저희에게 돌려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 계산할 때 쓰는 각자 시스템이 달라서 매번 Reconciliation을 해줘야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스웨덴에는 다른 유럽에는 없는 화학세라는 세금이 붙는데, 이 결제 업체는 스웨덴 회사가 아니다 보니 시스템에는 화학세가 안 들어가져 있었습니다. 거기에 결제수단에 따라 수수료율이 다른데 저희 시스템에는 그 부분이 반영이 안 되어있어서 한 달에 한번 일일이 진짜로 떼어갈 수수료가 잘 계산이 되었는지,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 때문에 생겼는지 확인을 해줘야 했습니다. 그걸 저희 팀 신입사원이 하고 있었는데요, 파이낸스팀에서 계속 빠꾸를 놓는 겁니다. 바쁜 와중에 Reconciliation 하라고 하루종일 미팅 빼주고 거기에만 집중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차액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니 자신도 모르겠다며 힘들어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입사원이 결제업체와 우리 시스템 값 간의 차이를 만드는 새로운 원인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스템에서 시스템 오류로 고객에게 선주문을 받은 품목에서 부가가치세 25%를 부가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결제업체랑 우리 시스템의 계산이 차이가 나는 거라네요. 그래서 저는 그렇구나 했죠. 사실 결제 금액과 관련된  문제가 있으면 우리 쪽에서는 최소 세 개의 시스템을 열어서 비교해봐야 하는데요, 시스템이 거지 같아서 자세한 내용을 보려면 일일이 주문 건별로 열어서 주문서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따로 확인은 안 한 채 알겠다고만 했죠.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파이낸스 팀장님과 CFO하시는 주재원 나오신 책임님이 난리가 난 겁니다. 이미 퇴근시간이 한 시간도 더 지나서 회사 앞 버스정류장에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거 어떻게 된 건지 다시 확인 좀 해봐 달라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휴대폰으로 대충만 확인해 드렸는데, 계속 찜찜하네요. 결국 집에 가서 애들 재워놓고 새벽 4시까지 시스템들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팀 신입사원이 부가가치세 누락의 문제가 있다고 했던 10개 정도의 케이스를 각 케이스별로 시스템마다 다 열어서 숫자를 비교해 본 결과, 부가가치세 누락은 맞지만 그 원인이 선주문과는 상관이 없다는 걸 찾아냈습니다. 특정 시기에 특정 품목에서 이유도 있어 부가가치세가 붙지 않은 채 결제가 되었더라고요. 내용을 정리해서 메일로 보내고 힘들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습니다.


3시간 남짓 자고 출근 한 뒤 오전 회의를 마치고 파이낸스팀장님과 CFO님과 잠깐 그 건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였습니다. 전 솔직히 제가 새벽까지 해서 원인 규명했으면 수고했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지 않은 채 판매되었는데 왜 모르고 있었냐, 이제야 공유하면 어떻게 하냐고 막 뭐라고 하시는 겁니다. 하지만, 저희가 일일이 주문 건마다 클릭하지 않으면 부가가치세가 부과되었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워낙 쇼핑몰과 관련된 시스템들이 불안정해서 가격이 이상하게 올라가는 일이 심심찮게 있었기에 그런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거죠. 사실 그 당시에는 가격이 이상하다고만 생각했고, 가격이 낮게 올라간 걸 확인하고 가격을 다시 등록함으로써 그걸 해결했던 터였습니다.


그런데 왜 가격을 모니터링하지 않냐부터 시작해서  그러면 저 누락된 부가가치세는 어떻게 할 거냐, 법인장님은 아시냐, 제품팀 주재원은 아냐 등등 공격이 들어오기 시작하니까 저도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법인장님과 주재원은 이미 가격이 낮게 올라갔던 사실을 알고 있긴 했습니다. 그게 부가가치세 때문이란 걸 몰랐지만. 그런데 마치 중대한 업무 과실이라도 한 것처럼 몰아세우니 화가 났던 거죠. 심지어 저희에게는 가격 권한이 하나도 없었는데 그걸로 뭐라고 하니까 더 열이 받았죠.  저희 팀 신입사원은 그저 제품팀에서 준 가격 받아서 세금만 제외한 채로 SAP에 등록하면 그걸 다시 제품팀에서 결재하면 시스템에 반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재를 언제 할지도 모르고, 결재를 해도 중간 연결시스템들이 있어서 실시간으로 온라인몰에 반영되지도 않았습니다. 저희 팀 신입사원이 가격 변경하고 나면 몇 번씩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항상 잘 올라갔는지 체크를 하는데 그때는 주말이 껴있어서 그렇지 문제 확인하고 월요일 바로 변경했던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뭐라고 하니 "그러면 가격 권한이나 주고 얘기를 해라, 나는 가격 변경 결재 올라가도 그 결재가 올라갔는지조차 볼 수 있는 권한이 없는데 왜 나한테 이러느냐, 우리가 가격 올라간 거 확인을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이 거 말고도 관련해서 할 일이 수십 가지다" 라며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더라고요.


사실, 이건 단순히 제품 판매가 잘못 나온 게 아니라  "세금"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그분들이 예민했던 거였습니다. 잘못하면 탈세처럼 법에 저촉될 수 있는 민감한 문제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미 업무가 찰 데로 차있는 상황에서 왜 그것도 못 챙기냐는 챌린지는 꽉 찬 물병에 물 한 방울 붓는 것과 같았습니다.


도대체 나한테 뭘 얼마나 더 하라는 거지?
새벽 4시까지 붙들고 있던 사람에게?


(결국 부가가치세 문제는 유지보수업체 측의 잘못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시스템 코드를 잘 못 넣어서 일부 품목에 랜덤 하게 부가가치세가 들어가지 않은 채 온라인몰에 반영인 된 것으로 스웨덴 빼고도 몇 개 국가가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고 확인된 후 코드를 다시 수정했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누락된 부가가치세는 업체 쪽에서 부담하기로 하고 일단락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즈음에 있던 두 가지 더 사건. 하나는 유럽본부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 바로 다음날 미팅을 소집하더니 밑도 끝도 없이 "법인 전체에서 고객 경험 관련하여 내년도 개선과제 후보" 5개를 각 파워포인트 1장으로 만들어서 다음 주까지 내랍니다. 아니, 갑자기 왜 이걸 나한테? 이렇게 급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혀 맥락도 모르고 현재 법인 상황도 모르는데 심지어 나는 온라인몰 담당자인데 말이죠. 또 그게 법인 KPI에 20%나 들어갈 거랍니다. 즉, 이 과제의 성공여부가 법인 전체 고과의 5분의 1을 담당하는 거죠.


그런데 저희 팀은 저 빼고 0.5명이잖아요. 8명씩 있는 큰 법인들이랑 상황이 다른데 왜 후보는 똑같이 5개씩 내라고 하나 싶었습니다. 저거 만들려면 최소 2-3일 꼬박 투자해야 하는데, 이미 저는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넣어도 업무가 넘쳐나고 있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법인장님이 기획팀 통해서 시킨 업무입니다. 앞으로는 매주 6개월치 판매 수량과 금액을 제품군별로 예측해서 공유하랍니다. 아니, 온라인몰에서 당장 내일 매출도 예측할 수가 없는데 6개월치라니요. 트렌드를 읽을 만큼의 판매데이터도 없는 상태라 완전 페이퍼워크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녁과 주말을 희생해서 그나마 요구사항을 맞추고 있는 건데 왜 법인장님까지 나서서 저런 쓸데없는 업무까지 더해주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부가가치세 문제까지 터지니까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마음처럼 안 움직이는 광고대행사랑 아직 챙겨줘야 하는 신입사원 0.5 데리고 일하는 것도 녹록지 않는데, 왜 갈수록 상황은 더 나아지지 않고 해내라는 것만 늘어나나,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싶었죠.



그래서 최후통첩을 날렸습니다


법인장님을 찾아가서 얘기했습니다.

 

지금 완벽히는 아니지만 한 팔구십 퍼센트는 업무에 익숙해졌고 이제 솔직히 이 업무에 대해서는 이 법인에서 누구보다는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전년도 두 배라는 목표가 쉽지는 않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는 힘들 것 같다. 솔직히 야근도 많이 하고 집에 가서도 새벽까지 일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집에서 일하지 않은 주말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제까지는 내가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라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지금 상황에서 봤을 때 그건 아닌 거 같다.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다음 세 가지가 들어지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요.


1. 우리 팀의 예산을 달라

이제까지 광고예산이고 팀 회식 예산이고 아무것도 받은 게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채로 다른 부서랑 일하려니 말발이 안 서더라고요. 매출은 전년도 두 배 해야 하는 데 광고를 돌릴래도 다른 팀한테 빌려야 하니 주도권 갖기가 힘들더라고요. 이만큼 돈이 있으니까 이거 저거 해줘라고 말할 수 있게 예산을 달라고 했습니다.


2. 사람을 달라

적어도 저희 팀 팀원은 100프로로 전념할 수 있게 다른 업무를 빼주고 계열사인 광고대행사 직원이 하는 웹마스터 일을 우리 팀에서 할 수 있게 내 밑에 사람을 뽑아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어차피 그 직원은 홈페이지 관리밖에 안 하는데, 다른 회사 소속이다 보니 컨트롤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기본적인 것도 계속 놓쳐서 실수가 일어나는데 그걸 그쪽 팀장인 제 전임자가 챙기지도 않고. 결국 제가 다 챙기는데 제 팀원은 아니니까 붙잡아놓고 가르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차라리 나한테 권한이 있어서 제가 수정하면 오히려 더 빠르고 깔끔하게 될 거 같은데, 그걸 일일이 스크린숏 떠서 이게 아직 변경 안 되었었어라고 하나하나 체크해서 메일로 보내고 잘 되었는지 확인하고 있으니 시간이 두세 배로 걸렸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저희 팀에 사람을 뽑아서 같이 배우고 가르쳐가며 바로바로 일을 시키는 게 훨씬 효율적이겠다 싶었습니다.


3. 연봉을 올려달라

지금 솔직히 내가 주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준주재원급으로 일하길 기대하시는 것 같고 나도 그런 마음으로 일하고 있긴 한데, 이 월급으로는 이렇게 더 이상 못 하겠다. 주재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 ** 정도는 받아야겠다. 참고로 지금 연봉 수준은 사실 4년 차 파트장급으로 제안받았던 연봉이다. (일해보니 10년차 이상 팀장급 업무였음)



힘들다면 그리고 어차피 6개월까지는 수습기간이니 한 달 기간 두고 나가겠다. 그 사이에 사람 뽑히면 인수인계는 잘해주고 가겠다.


그리고 덧붙였죠.


솔직히 너무 힘들다. 일도 너무 많고 리소스도 없고 구조도 일하기 너무 힘들어서 회사에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랬더니 법인장님이 그러시더군요.


미안하다. 그렇게 야근하고 주말에 일하는지 몰랐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안 되면 펑크를 내라. 먼저 예산은 주겠다. 둘째 사람은 노력은 해보지만 한계는 있다. 0.5짜리 신입사원은 1로 늘려주려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 업무를 줄 사람을 아직 못 찾아서 시간이 좀 필요하다. 웹마스터는 솔직히 우리 조직 내에 데리고 있기엔 손익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도 원한다면 그 담당자 대신 다른 사람을 뽑아달라고 얘기할 수는 있다. 마지막으로 월급은 좀 힘들지만 노력은 해보겠다


그리고 이런 얘기도 하시더라고요


솔직히 네가 일하는 건 마음에 든다. 근데 솔직히 리더로서는 모르겠다.(읭? 밑에 0.5명 있는데?) 나도 여기저기서 들은 게 있는데 네가 지금 업무가 힘들다고 하면 그냥 실무를 하는 건 어떠냐.


그럼 리더는 누가 하나고 물으니 새로 뽑든지 해야 한다며. 아니, 웹마스터는 우리 팀에 뽑을 수가 없는데 리더는 새로 뽑겠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요.. 저희 팀 신입사원 다른데 보내고 그 친구가 하던 잡일까지 다 제가 맡아서 하고 큰 그림 짜는 일만 새로운 사람에게 시켜주겠다는 소리인가 싶어 황당했습니다. 저한테는 실무형 리더라는 이상한 칭호를 붙이면서 실무도 하고 리딩도 하라더니, 열과 성을 다해 일하면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어느 정도 굴러가게 해 놨더니 위에 새로운 사람을 뽑겠다니요. 그래서 싫다고 했습니다. 2006년에 회사 처음 입사해서 지금 십 몇 년을 일했는데 커리어를 쌓아가야지 그렇게는 싫다고 얘기했죠. 솔직히 내 팀이고 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던 거지 아니면 그렇게까지 책임감 가지고 일할 필요도 없었죠. 그리고 전 제 실무를 가져가줄 사람이 필요한 거지, 저한테 일을 줄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아무튼 그날 이후 광고대행사인 계열사 지점장 불러서 업무 관련해서 한번, CFO분이랑 한번 더 미팅을 하면서 저의 이야기에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내용은 거의 비슷했죠. 예산은 주겠다, 사람은 원하는 데로는 힘들지만 0.5를 1로 늘리는 거랑 인턴을 뽑아서 좀 단순 업무들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리고 월급은 원하는 정도는 좀 힘들긴 하지만 내년부터는 세일즈팀으로 분류되면서 성과에  따라 인센티브도 있을 거고, 크지는 않지만 3월에 연봉협상시즌에 법인 전체적으로 연봉인상할 때 좀 오를 수 있다라고요.


그리고 예산을 제외한 나머지 개선안이 하나도 진행이 안 된 상태로 관련건 언급되지 않은 채 한 달여의 시간이 더 흘렀습니다. 그 사이 매주, 매출 목표 및 업무 챌린지만 더 심해졌죠.


시간은 흘러 흘러 어느새 회사 들어온 지 만 5개월 차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6개월의 수습기간이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연장을 확실히 이야기해야만 하는 시간이 왔습니다. 만약 최소 한 달의 유예기간을 줘야 하기에 수습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늦어도 5개월 될 때는 얘기해 주는 게 통례였습니다.


모두 다 즐겁게 주말을 즐길 준비를 하며 조금 일찍 퇴근 준비를 하는 금요일.


1월 26일 즐거운 금요일 4시에 새로운 사건이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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