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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May 06. 2024

끝없는 목표와의 싸움

9월부터 1월까지 계속되었던 내년도 목표

여러 해 동안 회사를 다녀도 내년도 목표를 세우는 과정은 참 이상합니다.


맨 처음 회사를 들어갔을 때,

선배들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얼마큼 할 수 있냐고 목표를 물어서 쥐어 내서 100만큼 하겠다고 목표를 올려 보내면 위로 보고하러 올라가면서 점점 커져서 130이 되어서 내려온다고 말이죠. 그렇게 내려온 목표를 해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월화수목금금금 코피를 쏟으면서 일했죠.



대학원 졸업 후에 들어간 두 번째 회사에서 목표는

그냥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미세 조정은 있었지만 크게 변경은 되지 않았고, 그저 주어진 목표를 그냥 어떻게 달성할 건지만 고민하면 되었습니다. 특히 여러 개의 다양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회사의 특성상 전체적인 방향성에 따라 제가 속한 브랜드의 앞날로 좌지우지되었는데요. 전년도까지만 해도 과거 영광의 되찾기 위한 "재도약 성장목표"를 세웠던 브랜드는 사업적 판단에 따라 브랜드를 정리해 가는 목표를 받기도 했었죠. 순식간에 관련 인원도 다 빼가고 목표가 전년 대비 -50% 줄어들기도 했었습니다.


 요즘 핫한 민희진 님 기자회견 보면 왜 그녀가 화났는지 이해가 갑니다. 하루아침에 윗선의 결정에 의해, 포트폴리오 관리를 위해 몇 개월, 몇 년씩 키워온 걸 다 바뀌게 되면, 도대체 나는 뭘 위해 그 시간들을 힘들어했나 싶어 화가 나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따라야 하는 허탈 하거든요.


아무튼, 목표라는 게 말입니다, 참 묘합니다.


나는 그런 숫자를 알았다고 한 적이 없는데, 그냥 내려오면 받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받고 나면 그다음부터 왜 못 해냈냐고 쪼이기 시작하죠.




제가 회사에 들어온 뒤 2-3주 정도 되었었을 때, 유럽본부로부터 처음으로 내년도 목표를 받았습니다. 이미 법인장님이 보여줬던 목표가 있었기에 대충 알고는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피셜 하게 넘어왔나 보더라고요. 그걸 받아서 월별로 제품군별로 나눠서 목표를 세팅하라네요. 그때 저는 인수인계도 없이 한참 어리바리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기에 법인장님이 여전에 보여줬던 숫자와 제품팀 주재원들의 인풋을 넣어 월별로 제품군별로 목표를 나눠서 법인장님 컴펌을 받아 제출을 했습니다. 그걸 취합해서 다시 한국본사로 넘긴다고 하더라고 그러면 조금 조정해서 다시 받을 거라면서요.


그러고 나서
끊임없는 목표 수정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도 여러 번이어서 순서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총매출액이 변경되었고, 어떨 때는 제품군별 비율이 변경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목표'와 '최대 성취가능 목표' 이렇게 두 개로 숫자가 왔고 중간에는 하나로 단일화되었고 그다음에는 다시 두 개로 바뀌었습니다.  지역본부에서 전년 대비해서 숫자를 보냈다가 나중에 본사에서 사업부별로 자신의 제품군별 목표를 세팅해서 보내고 다시 그걸 조정하는 등의 다양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누가 탑다운이면
결정이 빠르다고 했을까요?


이게 진짜 최종!이라고 했던 게 아마도 11월 말이었나 봅니다. 이미 내년도 목표가 확정되어야 있어할 시점이죠. 그래야 내년도 활동 계획도 세우고 예산도 분배하고 1월 활동도 준비해서 진행하니까요. 그런데 한국본사에 조직개편이 시작되었네요. 새로운 수장이 해당 업무를 잡으시면서 모든 법인의 법인장을 다 소환하고 기존에 잡혀 있던 계획을 더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1월 다시 새로운 목표가 도착했습니다!

와우! 이미 해가 시작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한국 본사에서 너무 큰 그림을 봐서였을까요? 전체적으로는 목표 매출이 예전과 크게 차이 나지 않은 2배 수준이긴 한데 월별 숫자가 엉망입니다. 연 토털로 2배 매출을 해야 하는데 1월부터 5월까지는 오히려 전년보다 매출목표가 작더라고요. 아마 본사가 얻어야 하는 월별 목표 숫자를 법인별로 쪼갰나 보더라고요. 근데 그렇게 해놓으니 어떤 달에는 특별한 이벤트도 없는데 전년 대비 3-4배를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월별 목표를
다시 조정을 해달라고 말했죠.


그대로면 1-5월까지 목표매출은 달성하기 쉬운 계획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지금처럼 이라면 1-5월에는 매출 달성한다고 해도 분명 챌린지를 받을 거다.

둘째, 초반에 매출을 더 많이 해놔서 전체 합을 맞추더라도 특정 달에는 왜 목표를 못 했냐고 챌린지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심할 만도 했던 게,

이미 전 목표를 넘어선 매출을 해내라는 챌린지를 받고 있었거든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1월에는 40퍼센트 성장이 목표였습니다. 1년 전체적으로는 2배 매출이 목표였지만, 계획에 적어놨던 성장 동력들은 2분기, 3분기부터 적용가능했거든요. 그러니 초반에는 전년 대비 40~50퍼센트 정도로 가볍게 가다가 더 좋은 시스템을 갖춘 뒤 매출을 끌어올리려고 했던 거죠. 이러한 월별 비중은 9월부터 줄곧 동일했었습니다. 매번 숫자를 유럽본부에 제출할 때마다 법인장님에게 확인받았었고요.


그런데, 막상 연말부터 법인장님이 저한테 1월 매출을 목표랑 상관없이 2배 해낼 수 있냐고 계속 묻는 겁니다. "연 매출 2배를 해야 하는데 지금 매출을 하반기로 다 몰아놓지 않았냐, 지금 목표달성했다고 누구도 잘했다고 안 한다"면서

 무조건 2배


를 해야 한답니다.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월별로 쪼갤 때 그냥 전년 대비 2배로 숫자 넣으라고 하던가. 왜 이제 와서 그러나 싶었습니다.


연 2배 성장도 쉬운 일은 아니라 다른 회사사람들은 모두 혀를 내둘렀지만, 저는 시스템을 개선 추가하면서 매출을 끌어올린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고 그 계획하에 월별로 목표를 나눈 건데 말이죠.


그렇게 근거도 없니 매출을 푸시할 거면, 나는 도대체 왜 목표 숫자 만들 때마다 매번 데이터 확인해 가며 목표를 세팅했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연말에는 그 월별 목표를 근거로 마케팅 예산이랑 판매 수량을 주차별로 계획 세워오라 해서, 거의 몇 날며칠을 세가며 1주부터 52주 차까지 판매 수량과 판매액, 마케팅 예산을 제품군별로 쪼개서 만들어왔는데 말이죠. 어차피 지키지도 않을 계획을 더 자세히 더 꼼꼼히 세우라고 그렇게 들들 볶은 건가 싶어서 가슴이 답답해졌죠.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새로운 목표라니, 심지어 1월 목표가 작년보다 적다니.. 초반에는 윗분들 마음속 목표 기준으로 챌린지 받고, 나중에는 써져 있는 목표로 챌린지 받을게 눈에 뻔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1-5월 목표를 올리겠다고 했던 거죠.




그런데 말입니다. 변경하고 싶으면 오늘까지 빨리 수정본 보내라던 유럽본부에서 다시 연락이 왔네요. 어차피 유럽본부장님께서는

"목표랑 상관없이"
1분기에 전체 목표에 4분의 1을 하라


고 했다고 하셔서, 월별로 바꾸는 거 큰 의미가 없을 거 같다고요. 앞서 말했듯이 이 온라인몰 매출은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에 크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들어간 첫해와 그 전해 모두 절반이상의 매출이 11월과 12월에 나왔던 거죠. 그래서 1분기에 연목표의 25프로를 하려면 무려 전년 대비 4배를 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12월 말까지 마케팅 예산도 확정해주지 않아서 1월에는 광고도 하나 돌리지 못하는 스케줄인데 4배 신장이라... 매출이 급한 윗분들의 사정이야 알겠지만, 성장을 시키려면 지원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왜 돈은 안 주고 당장 목표에 상관없이 더 높은 성장을 하길 기대하는 걸까요? 그 와중에 본인이 원하는 숫자가 제 입에서 나올 때까지, 계속 이번 달 몇 퍼센트 성장할 거 같은지 계속 물어보는 건 뭘까요. 2배를 해야한다면서, 아무리 제가 답을 해도 다시 또 묻고 또 묻네요.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2배가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받아서

"네가 한다고 했잖아, 왜 못 했어, "

라고 다그치려고 그러겠죠..




그 와중에 23년 말부터 손익이 화두에 오르면서, 손익도 같이 챙기기 시작하시네요. 나름 신사업인데 성장은 성장대로 시키면서 손익은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죠. 심지어 마이너스 손익이 나는 가장 큰 원인인 시스템 유지보수 비용이었는데, 그건 한국 본사에서 일괄로 계약한 업체에서 쓴 비용을 비율로 때려서 주는 터라 법인에서는 아예 손도 못 대는 비용이었는데 말이죠.


리소스는 너무 부족하고, 목표는 높은데 그것보다 더 해내길 바라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게 많은 손익까지 챙기기 시작하니 진짜 죽을 맛이었습니다. 좀 더 나은 생활을 찾자고 온 스웨덴인데,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많으니 한국보다 오히려 더 일하게 되니 애들은 자꾸 방치되고, 한국보다 돈을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니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후통첩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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