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 달은 너무 좋았다. 겨울이 도착했을 때는 6월.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 차있었다. 3시도 안 되어서 동이 트기 시작해서 12시가 넘어서도 하늘이 푸른 빛이 나는 건 좀 익숙지 않았지만, 선선하면서도 해가 가득한 여름은 아름다웠다. 비가 올 때면 꽤 추워 가을점퍼를 꺼내 입긴 했지만, 후덥지근하다 못해 땀이 줄줄 나는 한국의 여름 날씨를 생각하면 쾌적한 여름이었다.
스톡홀름이라는 도시도 아름다웠다. 북유럽의 베네치아라는 말처럼 여러 개의 섬들로 이뤄진 도시인만큼 많은 관광명소들이 물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북유럽 최대 도시인데도 불구하고 조금만 둘러보면 자연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저기에 있는 공원뿐 아니라, 도시 곳곳에 수영할 만한 작은 해변들이 있었고, 조금만 가도 원시림 같은 숲이 펼쳐졌다.
도시 중심부인 외스테르말름에는 으리으리한 유럽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겨울은 새삼 내가 유럽에 살고 있다는 걸 느꼈다. 스칸센에 갔을 때는 스웨덴만의 독특함도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독일 옥토버 페스트 의상이랑도 비슷한 느낌이 나는 스웨덴 전통 의상에 모자까지 쓴 직원들과 각지에서 공수해 온 시대별 북유럽 특유의 나무집들을 보면 스웨덴 버전 용인 민속촌을 온 듯한 느낌이 났다.
마치 여행을 온 것처럼 설레고 들뜬 기분은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되면서 끝났다. 7월이 시작되자, 많은 사람들이 여름휴가를 떠나서 도시가 빈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대중교통의 배차간격이 넓어진 거나 아예 노선이 없어져 대체 수단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병원이나 공공기관도 절반정도의 인원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예약하기가 힘들어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나 외국인 등록 번호 같은 PN(Personnummer:개인번호)을 받는 것도 그랬다. 원래도 3-4주나 걸린다는데, 여름휴가기간이 끼니, 그 기간이 늘어났다. 그게 있어야 계좌도 트고 아이들 어린이집도 신청할텐데, 기다림이 길어지니 겨울은 조금씩 힘이 들기 시작했다.
초반 몇주는 집 정리도 할 겸 적응도 할겸 선우도 회사를 안 가고 함께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선우가 회사를 가고 나면 겨울이 혼자 3살, 1살짜리 아이 둘을 데리고 있어야 했다. 1월에 둘째를 낳았으니, 몸 풀고 6개월도 안 되어서 외국에 온 셈이었다. 오기 전에는 한국 짐을 정리하고 이삿짐을 싸고 오고 나서는 짐을 정리하느라 무리한 탓일까. 출산 후 약해진 손목이 말썽이었다. 하루에도 최소 열몇 번은 둘째를 안을 때마다 손목과 팔꿈치에 싸르르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한참 에너지 넘치는 아이를 데리고 장난감 몇 개뿐인 조그만 집에 있는 게 더 괴로웠다. 열심히 정보를 찾아서 ‘열린 유치원’( öppna förskolan)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시에서 유치원처럼 장난감 있는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하는 것인데, 시간대마다 월령과 인원수 제한이 있어서 원한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 가면 다양한 장난감과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집에 있을 때보다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겨울은 급하게 마련한 2인용 유모차에 아이들 짐과 이유식, 간식을 잔뜩 넣어서 아이들을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마땅히 갈 만한. 열린 유치원이 없으면 도서관이라도 갔다. 대부분의 도서관에는 한쪽 구석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아이들이 앉아 있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거기서 퍼즐을 맞추거나 책을 골라 읽어줬다.
차가 있다면 둘을 태우고 훨씬 편하게 다닐 텐데, 선우의 월급으로는 집세 내고 생활비 쓰는 것도 빠듯했다. 최소 35%부터 시작하는 살인적인 북유럽 세금은 월급이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어도 받을 땐 3분의 2에서 절반까지 작게 만드는 마법을 선사해 줬다. 집세도 그랬다. 엄청나게 대단한 좋은 집에 사는 것도 아닌데, 방한 칸짜리 집도 한국돈으로 백만 원은 줘야 했다. 아이 둘을 키우려면 그래도 방 두 칸은 있어야 했다. 그런 집을 구하려니 한 달에 최소 이백만 원을 줘야 했다. 외곽으로 나가면 좀 더 싸다고는 했지만, 지리도 익숙지 않은 낯선 도시에서 교통도 불편하고 편의시설도 거의 없는 외곽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웨덴의 대중교통은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 편리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버스는 저상버스였고, 버스에는 유모차 구역이 있어서 거기에 유모차를 세우면 됐다. 심지어 이미 그 자리에 사람들이 잔뜩 서있다고 해도 사람들도 유모차가 오면 자리를 비켜줬다. 거리에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고, 대중교통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모차를 가지고 버스에 타려면 버스에 올라탈 때부터 쌩쑈를 해야 하는 한국과는 달랐다. 한국에서 탄 뒤에도 힘들었다. 마땅히 유모차를 세울 데가 없어서 처치곤란이었고 버스에 사람들이 늘어나면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유모차는 사람들과 똑같이 권리를 가진 승객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겨울이 뚜벅이로 아이들 둘을 데리고 다닐 만했다.
그래도 겨울이 좀 숨을 쉬고 살려면, 스웨덴 어린이집은 돌 이후에 받아주기 때문에 아직 대상이 아닌 둘째는 둘째 치고, 첫째는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다행히 감감 무소식인 PN이 없어도 PN이 나오기 전에 쓰는 임시번호를 가지고 어린이집 지원할 수 있다는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해준 열린 유치원에서 일하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평점이 괜찮아 보이는 주변 어린이집들에 대기를 넣었다.. 어떻게 했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스웨덴어로 쓰인 사이트에서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이렇게 저렇게 하고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등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