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이가 다닐 곳은 사실 ’어린이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유치원이라고 불러야 할지 애매했다. 한국에서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구분이 되어있지만, 스웨덴에서는 돌이 지난 아이부터 초등학교 입학 전인 만 5~6세 아동을 봐주는 기관은 단 하나 förskolan만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육보다는 보육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기 때문에 겨울은 어린이집이라고 말하는 쪽을 선택했다.
맞벌이가 당연해서일까? 스톡홀름시에서는 어린이집에 대기를 넣으면 3개월 뒤에 무조건 자리를 보장해 준다. 언제 자리가 날지 몰라서 무작정 기다리거나,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야 하는 한국이랑은 사뭇 달랐다. 다만, 자리가 나는 곳으로 배정해주기 때문에 대부분은 신청한 어린이집이 아닐 뿐이다. 하준이가 배정받은 어린이집도 그랬다. 집에서 1.2km 정도 떨어진 어린이집은 언덕을 두 번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으면 16분, 대중교통 타도 걷는 시간 포함 총 16분이 걸리는 애매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어린이집 평점은 나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 어린이집을 안 가겠다고 한다면 신청한 어린이집들 중 하나라도 자리가 날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려야 했다.
하준이는 이제 3살. 의사표현도 잘하고 숫자도 제법 읽는 편이라 어린이집에서 똘똘한 축에 속했다. 처음 어린이집에 갔을 땐 계속 아파서 걱정이 많았지만, 커가면서 그 횟수가 많이 줄었다. 하원 후에 가끔 데리러 가면 늘 기분 좋은 얼굴을 하며 겨울에게 와 안겼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불분명한 발음이지만 어린이집 생활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를 해줬다. 가끔 누군가에게 맞고 오거나, 아주 가끔 다른 아이를 밀쳤다는 연락을 받을 때가 있었지만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서 다투는 과정에서 생긴 경미한 신체접촉이거나 아직 자신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공격적인 아이에게 당한 일이었을 뿐이었다. 하준이는 대부분 자신을 잘 다스렸고 큰 일없이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며 생활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하준이를 한국에서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은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스웨덴어로 말하는 스웨덴 어린이집으로 다니는 것이었다. 스웨덴어를 한마디도 못 하는 하준이가 잘 적응을 할 수는 있을는지 겨울과 선우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낯선 얼굴을 한 아이들과 선생님, 거기에 낯선 언어를 하는 통에 말도 하나도 안 통할텐데.. 혹시 속상한 일을 당하더라도 아무 말도 못 한채 당하고만 있으면 어쩌지? 하지만, 겨울은 이미 4달 가까이 아이 둘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전전했던 터였다. 설상가상으로 10월로 접어드니 날도 춥고 비도 자주 와서 어디를 데려가기도 힘들었다. 그런데 어린이집은 비용도 별로 안 해서, 한 달에 십만 원 안팎의 돈만 내면 되었다. 베이비시터 한 시간만 불러도 이만원이 넘는데 십만 원 좀 넘는 돈으로 하루종일 한 달 동안 봐준다고 하니, 사실 “ Why not?”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조금 멀고 걱정도 되긴 했지만, 일단 보내보고 생각하기로 했다.
힘들어하면 좀 일찍 데려오던지 하지 뭐..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첫 1주는 한국처럼 적응기간을 거쳐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기간도 어린이집마다 달라서 다른 집은 한 달 동안이나 적응기간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이 어린이집은 좀 짧은 편이었다. 먼저 첫날은 한 시간 정도 어린이집에 있으면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인사를 했다. 하린이도 아기 띠에 안긴 채 함께였다. 둘째 날은 점심까지 먹고 왔다. 신기하게도 점심시간은 11시였다. 동그란 빵, 햄, 오이, 파프리카, 그리고 버터. 이게 3살 난 아이들의 점심이었다. 동그란 테이블에 각각이 담긴 접시를 세팅하고 아이들 자리에 앞접시 한 개씩을 줬다. 그리고 빵 하나씩을 준 뒤 나머지 재료는 스스로 가져가도록 했다. 당연히 아이들은 손으로 가져갔다. 손은 씻게 했던가.. 잘 기억이 안 났다. 하긴 나중에 들어보니 어떤 어린이집은 테이블을 행주로 닦고 앞접시도 없이 그냥 테이블 위에 빵을 줬다고 하긴 했으니 그것이 비하면 좀 위생적인 건가. 다 먹고 난 뒤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남은 음식은 잔반통에 넣고, 접시와 수저, 포크, 컵은 각각 분류해서 통에 넣게 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나.. 그래도 다행인 건 아무 말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준이는 옆 친구들을 보며 그 모든 것을 따라 했다는 것이었다. 저 정도 눈치라면 스웨덴어를 못 알아들어도 생활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