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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Oct 11. 2024

그래도 밀가루보단 쌀이지

왜 안 가셨어요? 5

매일 아침, 겨울은 두 아이를 깨워 등원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맵지 않은 대부분을 먹기 시작한 첫째와 이제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둘째. 인스타에 매일 아이 식판을 올리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부지런한 걸까? 식단표를 짜서 매 끼니 이유식을 만드는 사람은 또 얼마나 더 부지런한 걸까? 겨울은 늘 아침에 밥을 줄 때마다 생각했다.

그나마 이유식은 미리 만들어두니 좀 나았다. 겨울은 2-3주에 밥통 한가득 밥을 짓고 고기, 생선, 버섯, 각종 야채까지 모두 갈았다. 밥을 셋으로 나눠 고기 베이스, 생선 베이스, 그리고 버섯 베이스를 만들고 간 야채를 넣어 밥이 뭉그러져 죽이 될 때까지 끓였다. 그렇게 세 종류를 만들어놓으면 하루에 세끼 다른 맛으로 줄 수 있었다. 팔팔 끓은 이유식은 한소끔 식혀, 조그만 이유식 통에 나눠 담았다. 숙소에 있는 냉장고는 위는 냉장실 아래는 냉동실로 되어 있는 크지 않은 냉장고였다. 냉동실이 고작 서랍 세 칸 밖에 안 되어서 늘 자리가 부족했지만, 이리저리 재료를 옮겨가며 꽉 차도록 이유식통들을 넣어놨다. 몇 시간씩 걸리는 작업이었지만, 이렇게 해놓으면 한동안 마음이 든든했다. 한국에서는 끼니마다 다른 메뉴를 아침마다 배달해 주는 이유식 서비스도 있고, 가격이 부담되는 사람은 본죽에서 간을 좀 약하게 한 죽을 소분 해서 먹이기도 한다는데, 여기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마트에 가면 유리병에 넣어진 이유식을 팔았다. 무조건 흰쌀 미음으로 이유식을 시작하는 한국과 달리 여기에서는 삶은 감자, 삶은 당근, 삶은 고구마로 이유식을 시작했다. 그리고 돌이 지나면, 간을 약하게 한 볼로네제 파스타 같은 음식이 아이들의 이유식이었다. 그냥 어른들 요리할 때 빼서 간을 조금 약하게 해서 주면 되는 셈이었다. 겨울이 하듯 모든 재료를 다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북유럽의 육아는 한국보다 난이도가 쉬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겨울은 여전히 쌀로 만드는 이유식을 포기하지 못했다. 왜인지는 그녀도 잘  몰랐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었을까? 훨씬 만들기 쉽다 해도 이유식 대신 당근 삶은 걸 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삶은 당근은 간식이라면 모를까 밥이 아니었다.

첫째의 식사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점심때 파스타를 주긴 했지만, 대부분은 밥에 미역국, 계란밥처럼 한국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어린이집에 가면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거나 파스타를 먹을 터였다. 집에서라도 밀가루 대신 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이 겨울의 머릿속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밀가루보단 쌀이 당연히 훨씬 낫지.


사실 여기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쌀보다 밀가루를 더 많이 먹고도 건강하게 잘 사는데도 겨울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두 아이와 함께 아침에 밥을 해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옷을 입혀 나가면 정신없이 바빴다. 9시까지는 등원시키라고 했지만, 그 9시를 맞추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챙겨야 하는 게 많아졌다. 옷을 다 입고 나면 바닥에 오버올을 펼친 뒤 지퍼를 열어주면 아이가 우주복을 입듯 몸을 쏙 집어넣다. 지퍼를 올리고 난 뒤 모자에 목도리에 장갑, 발목 위로 올라오는 방한부츠까지 입고 나면 아이가 옷을 입은 건지, 옷이 아이를 입은 건지 헷갈렸다. 스웨덴에서는 야외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여기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와도 야외활동을 했다. 그래서 늘 방수가 되는 옷이 필수였다. 날이 춥지 않을 때에는 위아래 방수되는 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방수 장갑에 방수모자를 쓴 채 밖으로 나갔고, 겨울에는 위아래가 붙어있는 방수 오버롤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아이들은 뛰어놀아야지, 요즘 애들은 맨날 안에만 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봤다면 박수를 치며 응원할 일이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에서 올려준 볼이 빨갛게 된 채 차디찬 공기를 맞으며 소풍을 나가 놀고 있는 사진을 보면 괜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이나 스웨덴이나 아이들이 모인 곳에서 감기가 도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한국은 감기에 걸리면 병원 가서 약이라도 받았지, 여기에서는 감기에 걸려서 병원에 가도 아무런 조치를 취해주지 않았다. 겨우 예약을 하고 며칠을 기다려 병원에 갔는데, 그저 신선한 공기를 쐬고 푹 쉬라는 말 뿐이었다. 그런데도 이 추운 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야외활동을 하다니, 겨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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