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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연두 Oct 15. 2024

내 이름이 붙은 자리

왜 안 가셨어요? 7

다시 돌아온 회사는 익숙했고 안온했다. 1년여 만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자리,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달았다. 물론 1년여의 공백이 안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각종 회사 시스템은 접근 권한이 사라져서 죄다 새로 결재를 올려서 권한을 받아야 했다. 휴직하는 동안에 추가된 회사 프로세스들도 익혀야 했다. 한쳔으로 그 사이 변한 시장트렌드도 따라잡아야 했다. 그래도 어차피 원래 하던 일이었고 십여년째 보고 있는 시장이었다. 한 달 정도 지나지 바뀐 환경에 익숙해졌고 곧 감을 되찾았다.

회사에 나가서 매일 출근하자, 어느새 유모차를 밀고 스톡홀름을 돌아다니던 일이 한여름밤의 꿈처럼 느껴졌다. 스웨덴에 가기 전처럼, 겨울은 아침이면 바쁘게 화장을 하고 출근했다. 화장을 안 한 맨얼굴 위에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아무렇지 않게 나갔던 건 언제였던가 싶었다. 점심이면 회사 밖으로 나가 점심을 먹었고 다 먹고 들어오는 길에 늘 카페를 들려 커피를 샀다. 앉아서 먹을 시간이 있던 없던 상관이 없었다. 쪼들리는 월급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을 시켜볼 엄두를 못 냈던 겨울은 더 이상 없었다. 첫째를 등원시키고 난 뒤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몇 시간이고 식료품점들을 돌며 할인 상품만 골라 쇼핑하던 겨울도 더 이상 없었다. 그때는 시간을 들여 돈을 아껴 썼다면, 복직한 후에는 돈을 버느라 줄어든 시간을 아껴 써야 했다. 대신 자신이 번 돈으로 매일 커피는 사 먹을 수 있었고 후배 밥은 사줄 수 있었다. 그게 한편으로는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버는 돈.

경제적으로 누군가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느낌.

나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작지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

외국인 노동자의 아내가 아니라,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겨울 그 자신으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쓸모를 보여주며
일자리를 구걸할 필요 없다는 것.



 모든 게 스웨덴에서 돌아와 복직한 뒤 크게 다가왔다. 왜 스웨덴에 안 갔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돌아옴으로써 다시 되찾은 모든 것들을 떠올렸다. 다시 가게 되면 잃어버리게 될 모든 것들을 생각하며, 그래서 안 갔지..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문제는 선우가 함께 올 수 없었다는 것. 새로 이직한 회사는 선우가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답답해했던 많은 것들을 해소시켜 줬다. 소프트웨어 포커스된 회사 분위기, 업계 최고인 만큼 제일 최신의 기술을 이용한다는 것 그리고 위에서 내려오는 거지 같은 일들 마구 헤쳐나가는 대신, 목표를 이루기 위한 아이디어를 실무진급에서 아이디어 내고 검증해서 적용하는 것 모두 다 좋아 보였다. 예전에는 왜 이런 의미 없는 일을, 그것도 매번 하라고 하는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제는 더 잘 해내지 못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겨울이 볼 때는 너무 심각한 수준만 아니라면 선우를 성장시킬 수 있는 긍정적인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겨울은 선우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그 답답한 환경에 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몇 년 후라면 생각이 바뀔 수 있겠지만 선우가 이직한 지는 고작 1년밖에 안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잘 해냈으면 싶은 생각에 선우는 좀 더 이직한 회사에 있는 게 나아 보였다.

하지만, 둘이서도 힘들었던 맞벌이 육아가 아닌가. 남편이 없다면 겨울은 혼자서 일도 하고 아이들도 챙겨야 했다. 마치 고난도의 맞벌이육아가 싱글맘 육아 마냥 초고난이도 레벨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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