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연두 Oct 16. 2024

한여름밤의 꿈

버티는 게 진짜 이기는 걸까? 1

여름이 되자 선우는 한국으로 휴가를 왔다. 길면 길고 짧은 3주간의 만남. 오랜만에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겨울은 선우만큼 길게 휴가를 낼 수 없었다. 해외여행을 잡아놓은 1주를 빼고 나머지 2주는 평소처럼 지냈다.


겨울이 출근하려고 나올 때면 선우가 배웅을 했다. 출근하는 겨울을 현관문 앞에서 꼭 안아준 뒤 가볍게 뽀뽀하는 것은 신혼 때부터 출근 루틴이었다. 오랜만이었지만 마치 어제도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남편이 오니, 아이들 케어도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었다. 하준이의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내는 것도 하린의 등원도 모두 선우의 몫이었다. 그렇게 애들을 보내고 난 뒤, 선우는 스웨덴에서 묵혀놨던 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치과부터 시작해서 병원을 한 바퀴 돌아야 했고, 미용실도 가야 했다. 중간에는  예전 회사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점심을 먹으러 갔다. 그래도 아이들 돌아올 시간이면 집 근처로 돌아왔다. 하린을 픽업해서 집에 들어올 때쯤이면 하준이가 태권도 버스에서 내렸다.


선우 덕분에, 매일 총알처럼 퇴근해야 했던 겨울도 여유가 생겼다. 오랜만에 남편이 왔는데 빨리 가서 오붓한 네 가족의 시간을 보내는 게 맞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겨울에게는 그 2주가 애들 걱정 없이 저녁시간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기간처럼 느껴졌다. 맨날 신데렐라처럼 5시 땡! 하고 출발할 때마다 미처 못 끝낸 일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그 기간 동안은 좀 늦더라도 마무리 짓고 갈 수 있었다. 야근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니 어찌보면 아이러니했지만, 마음 편히 야근할 수 있는 상황마저 겨울에게는 그리운 것이었다.


그리고 늘 애들 봐줄 사람 없어서 미뤄놨던 지인들과 저녁 약속도 잡았다. 선우가 없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으리라. 애들 봐줄 사람이 없다는 말은 사실 반은 맞고 반이 틀린 이야기였다. 올 초 하린이가 열이 나서 조퇴했을 때처럼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야근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친정엄마 찬스를 쓰기 그랬다. 본인 놀자고 늙으신 어머니 고생하시게 만드는 느낌이니 말이다.


나 오늘 약속 있어서 늦어


엄마에겐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선우에게 이 말을 하는 게 전혀 미안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선우가 스웨덴에서 육아 걱정 없이 맘껏 저녁시간을 쓰는 동안, 겨울은 퇴근후에 아이들을 챙기지 않았는가? 그거에 비하면 고작 며칠 밤에 혼자서 애들 보기는 비교할 수도 없이 작은 일이라는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